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말그미 May 10. 2022

개발의 아픔

5월 텃밭일기 2

4월엔 그나마 자주 내려주던 비가

5월부터는 뚝 그치는 바람에

이틀에 한 번꼴로 텃밭에 다니며 물을 주는 중이다.

시금치씨앗에서 나온 싹이 무럭무럭 자라

상추씨도 이제야 조금씩 싹이 올라오는 중이다.

작년엔 올해보다 조금 일찍 뿌린 덕에 이맘때는 수확해도 될 정도로 쑥쑥 자랐는데 올해는 늦게 뿌려서인지, 땅이 별로 안 좋아서 그런지 자라는 게 더디다.

작년 이맘때

비어있는 밭에 깻잎이 스스로 싹을 틔워 자라고 있길래, 깻잎 모종 있는 쪽으로 옮겨심었는데 잘 클지 모르겠다.

땅이 더 딱딱해지기 전에 고구마 심을 이랑을 감자이랑 뒤쪽과 옆으로 만들어 두었다. 아직 비어있는 땅에는 조만간 자랄 상추를 옮겨심었다가 다 자라면 고구마 심을 땅으로 만들 계획이다.

쌈채들이 쑥쑥 자라서

5월 들어 두 번의 수확을 했다.

깻잎도 아직 키가 작긴 하지만

제법 잎이 많이 달려서 깻잎도 따고,

치커리인 줄 알았던 게 실은 겨자채였음도 알았다.

텃밭에 자주 가니

텃밭이웃들과도 만나서 인사를 나누는 일이 잦아졌다. 덕분에 같이 밭을 하면서 작년엔 한 번도 못봤던 구성원을 만나는 기쁨도 있었다. 4월 해거름에 갔다가 만나서 쌈채와 파를 나눠주신 분과도 또 만나서 밭일 끝내고 함께 집으로 돌아오며 저녁하늘에 뜬 초승달을 보면서 탄성을 지르기도 했다.

이렇게 좋은 일도 많지만

안타까운 일도 있었다.

텃밭에는 새벽에 갈 때도 있고,

일이 끝난 저녁에 갈 때도 있고,

어딘가를 다녀오면서 들를 때도 있다.

텃밭 오가는 길은 여러 갈래가 있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사랑했던 길이

올해 처참하게 사라져버렸다.

작년까지 구청임대를 해주던 땅의 주인이 바뀌고, 새 주인이 밭의 용도를 바꾸는 작업을 진행하면서 텃밭 주변에 둘러서있던 소나무, 오디나무, 참나무들을 몽땅 다 베어내버린 것이다.

새벽에는 물 주고 오면서

동편에서 떠오르는 눈부신 태양을

소나무 사이로 바라보는 맛이 있었고,

저녁엔 오솔길 사이로 보이는 달과 별이 아름다웠고,

초여름엔 검게 익은 오디로 텃밭농부들의 눈과 입을 즐겁게 해주고, 한여름엔 시원한 그늘을 제공해주던 은혜로운 나무들을 그렇게 순식간에 베어내다니...

아직도 베어낸 자국이 선연한 나무둥치들을 보면서 이 길을 걷자면 마음이 아프다. 마지막 기록차원에서 잘려나간 나무들의 모습을 담아본다.

그나마 텃밭을 둘러싼 주변 산의 나무들은 여전히 자리를 지킨 채 올 5월에도 하이얀 아카시꽃을 피워내어 향기로운 향으로 마음을 위로해주니 감사할 따름이다. 주변이 점차 개발되면서 이 산의 나무들도 언젠가 베어질지 모른다고 생각하니, 지금 이 모습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진다.

* 5월 텃밭 풍경들

 

아래는 텃밭 오가는 길에

매거진의 이전글 우리의 저물어가는 생을 축복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