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말그미 Jun 04. 2022

강진의 보물 월남사지 삼층석탑과 진각국사비

강진 가면 오랫만에 백운동 정원을 가봐야지~ 하고 벼르던 차에, 백운동 정원 가는 길에 우연히 발견한 보물이 월남사지 삼층석탑과 진각국사탑비이다.


월남사지는 전라남도 기념물 제125호로 '월남사'라는 절이 있던 터이다. 월출산 남쪽 아래에 자리잡고 있던 월남사는 500년 전에 완전히 사라지고 터만 남은 자리 보물 제298호인 '강진 월남사지 삼층석탑'과 보물 제313호인 '강진 월남사지 진각국사비'가 남아 있다.  우리가 방문한 5월 28일의 월남사는 오래 전에 사라진 월남사의 맥을 이은 절로 현재 문화재청과 강진군에서 대웅전 복원불사를 진행 중이다.


주소 : 전라남도 강진군 성전면 월남길 108-1

입장료, 주차료 무료



월남사 삼층석탑 앞에 마련된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왼쪽에 난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석탑을 자세히 살필 수 있으며 뒤로 넓게 펼쳐진 월남사지 발굴현장을 돌아볼 수 있다. 진국국사탑비는 석탑에서 왼쪽 사선방향으로 100여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데, 탑비 앞에도 입구가 있으니 그 앞에 차를 대고 구경할 수도 있다.

조선 시대 문헌인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월남사는 고려 시대에 진각 국사 혜심 (1178~1234)이 세웠다고 한다. 하지만 월남사지에서 백제 시대 기와 조각이 나온 것으로 보아서 백제 시대에도 절이 있었던 것으로 추측한다. 이곳에서 고려 시대 건물지와 기와 조각, 고려 청자 조각들이 많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서, 진각 국사 혜심이 살았던 고려 중기에 절이 크게 융성했던 것으로 추정한다.

월남사지 발굴 조사 결과, 절의 중심 건물로 예불을 드리는 금당건물지와 이론을 강의하는 강당 건물지가 일직선으로 배치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월남사지는 발굴 조사 후에 발굴지를 전체적으로 복토하였다. 건물이 있던 곳으로 추정하는 부분은 흙을 더 높게 쌓았고, 기둥이 있던 자리에는 초석과 적심석을 놓아 건물의 형태를 알아보기 쉽게 표시해 두어서 설명판과 함께 살펴보기 좋다.

월남사지 삼층석탑은

보물 제298로, 고려 시대에 세운 탑이다. 양식은 백제 석탑을 따르고 있는데 이는 이 지역이 백제의 옛 땅이기 때문이다. 이 탑의 지붕돌은 얇은 부재를 사용하여 계단식으로 층단을 만들었다. 1층의 지붕돌은 목탑에서처럼 기단보다 넓게 만들었다. 탑의 기단 폭에 비해 높이가 높은 편으로 국보 제9호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과 양식이 유사하며 백제 석탑 양식을 이어받은 대표적인 고려 시대의 백제계 석탑이다. 2017년 석탑을 보수하기 위해 해체 작업을 하면서 석탑 3층 몸돌 하부에서 청동병을 발견하였다. 청동병 안에 볍씨와 작은 동물 뼈들이 있었는데 '유기물 방사선 탄소 연대 측정 결과 고려 말에서 조선 초의 것으로 밝혀졌다.

월남사지 발굴 조사에서 현재의 석탑 서편에서 탑의 기초 시설 일부를, 북쪽에서 금당지를 발굴하여 절의 중심 법당인 금당을 중심으로 두 탑을 나란히 배치하는 쌍탑 배치 형식임을 확인하였다. 이런 배치 형식은 전라도 지역에서는 통일 신라 후기에 만든 경우가 대부분인데, 월남사지의 쌍탑은 고려 시대에 만든 것이라서 특이하다. 학술적 가치가 매우 높으며, 세련되고 격조 높은 기품을 풍기는 아름다운 석탑으로 평가한다.

월남사지 진각국사비 (月南寺址 寘轝國師碑)는

보물 제313호로 월남사를 창건한 진각국사(1178~1234)를 추모하기 위해 고려 고종 37년(1250년)에 세워졌다. 진각국사의 속세의 성은 최씨이고, 법명은 혜심이다. 보조국사 지눌의 문하에서 선학을 닦았고, 송광사 16국사 중 제2조인 고승이다.

비의 몸돌 전면은 떨어져 나간 상태이지만, 후면에는 기록이 상당 부분 남아 있다. 한편, 전면에 떨어져 나간 비석 일부가 1972년에 비 주변에서 발견되어 현재 국립광주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전면의 비문은 이규보가 지었고, 글씨는 김효인이 썼다. 후면의 비문은 최자가 지었고, 글씨는 탁연이 썼다.

머릿돌과 몸돌 대부분이 없어졌지만, 받침돌은 남아 있다. 특히 거북 받침돌은 역동적이면서도 사실적으로 표현되었는데, 고려 후기 미술사적 특징을 알려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여의주를 문 용의 머리에 거북이 몸이 아주 웅장한데, 뒤의 살짝 옆으로 돌린 꼬리가 제법 귀여운 모양새라 웃음을 짓게 하는 받침돌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영암의 숨은 비경 덕진차밭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