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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그미 Aug 24. 2022

멋지다 그 이름 순례!

순례주택 집중분석 1

거북역 3번 출구에서 도보로 5분 거리, 거북로 12길 19에 있는 대지 면적 72.5평의 필로티 구조 4층 건물, 14평짜리 세 집, 25평짜리 세 집, 1층엔 12평짜리 상가와 주차장이 있고, 주민 공동공간으로 쓰이는 전망 좋은 옥탑방과 옥탑정원이 있는 순례주택.


이곳에 들어오기 위해 사람들은 대기표를 뽑고 몇 년째 기다린다. 장기전세 붙는 것보다 들어가기 어렵다는 순례주택의 인기 요인은 뭘까?

순례주택은 주변 시세보다 임대료가 싸다. 시세에 따라 정하는 게 아니라, 집주인 김순례씨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만큼만 받기 때문이다. 심지어 형편이 어려운 입주자에겐 보증금도 받지 않거나, 형편이 나아질 때까지 납기일을 미뤄준다. 세신사로 때를 밀어서 번 돈으로 산 집이라 '때탑'이라고도 부르는 그 집이 살 때보다 가격이 배로 뛰자, 보통사람들은 쾌재를 부를 상황에 순례씨는 마음이 불편했다. 땀 흘리지 않고 돈을 버는 것은 순례씨 스타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순례씨가 임대료를 적게 받으니, 주변사람들은 순례씨가 건물부자라 어디 또 다른 건물이 있어서 큰돈 들어오는 데가 있으니 인심을 쓰는 게 아니냐며 오해하지만, 실은 순례주택 한 채와 입주자 보증금을 모아놓은 정기예금, 999만 9999원 이하의 현금이 있는 입출금통장이 순례씨의 전재산이다. 이 책의 주인공이자 순례씨의 최측근 오수림만이 아는 사실이다. (친손녀도 아닌, 순례씨의 사별한 전남친의 외손녀 오수림은 자신을 낳아준 친부모와 사는 집은 행정상 거주지이고, 자신을 아기 때부터 키워준 순례씨가 있는 순례주택이 진짜 자기집이라고 여긴다.)


이 외에도 순례주택 입주자는 와이파이, 옥탑방, 옥상정원을 공유할 수 있고, 입주민 규칙만 잘 지킨다면 자신이 살고 싶을 때까지 살 수 있다. 그래서 빈 집이 나올 때까지 4년을 넘게 기다리는 대기자도 있다.


순례주택 입주자 가운데 홍길동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순례씨의 전직장 동료가 는데, 이 길동씨를 통해 순례씨가 개명한 사실이 밝혀진다. 개명은 개명인데 이름은 같다, 뜻이 달라졌을 뿐. '순하고 예의바르다'의 순례에서 '지구별을 여행하는 순례자'의 마음으로 살고 싶어서 '순례자'의 순례로 바꿨단다. 이런 발상의 전환이라니~!


순례씨가 좋아하는 유명한 말이 있다.

'관광객은 요구하고, 순례자는 감사한다.'

그래서 순례씨는 범사에 감사하다. 심지어 쫄딱 망한 수림의 1군 가족들이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사시던 순례주택 201호에 보증금도 없이 싼 월세에 입주하도록 해주면서도, 내줄 공간이 있어서 감사하다고 하는 사람이다. 정말 멋지다고밖에 표현할 방법이 없는 순례씨다.


그런데 작가후기를 보니,

'순례'라는 이름은 작가 유은실이 오랫동안 아껴온 가장 아끼는 이름이라고 한다. 작가는 이 이름이 가진 자유가 좋다고 한다. 삶에서 닥치는 어려움을 실패보다 경험으로 여길 수 있는, 부와 명예를 위해 발버둥치지 않아도 될 것 같은, '괴롬과 죄가 있는 곳'에서도 '빛나고 높은 저곳'을 바라볼 수 있는 아름다운 이름, 순례. 이 이름의 어원이 된 '순례자'는 신선 선에 임금 군을 쓰시는 작가의 할머니 이름 '선군'과도 잘 어울렸다. 세상 욕심 훌훌 털어버린, 초월적인 세계를 꿈꾸는 존재, 순례자.


유은실 작가는 최애이름 '순례'를 첫 책을 낸 이후 16년간 쓰지 않고 아껴두다가, 2020년에야 꺼내어 썼다. 기성세대가 망가트린 지구별에서 어려움을 겪는 어린 순례자들에게 순례주택이 산티아고 순례길 어느 작은 마을의 지친 몸과 마음을 녹여주는 '알베르게' 같은 곳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작가의 바람을 넘어,

이 책 '순례주택'은 어린 순례자들 뿐만 아니라 아직도 크는 중인 어른 순례자들에게도 알베르게 같은 곳이 되어주었다. 그래서 이 책의 분류는 비록 '청소년소설'이지만 그 파장은 어른들에게까지 미친다. 재밌게 읽히고 오래 남는다.


- 1편은 순례주택의 집주인 '김순례'씨를 집중탐구했습니다. 2편은 순례씨의 최측근 '오수림'과 주변 인물들을 집중탐구해보겠습니다^^


장수 토옥동계곡에서 하루만에 완독한 순례주택


* 순례주택은 토옥동계곡이 너무 좋아서 이 여행기 쓰고나서 두 번째 방문하던 날 들고 가서 읽었어요. 장수 토옥동계곡이 어떤 곳이냐면요...

https://brunch.co.kr/@malgmi73/4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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