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말그미 Nov 01. 2020

다 내 죄이옵니다~

남편 잘못은 내 탓?

일주일간 영암 이모님네 다녀오시느라

집을 비우셨던 어머님께서 드뎌 오셨다!


할머니랑 방을 같이 쓰는 둘째의 좋은 날은 다 갔다. 혼자서 침대 쓰고 맘껏 뒹굴거리던 녀석이 이제 침대 아래 본래 제 자리로 돌아갔다.


지금 누나가 쓰는 방이 원래는 자기방이었다가 누나가 기숙사 학교를 그만두고 집 근처 학교로 전학을 오면서 자기방을 빼앗긴 둘째는 할머니랑 한 방을 쓰게 되었을 때 큰 거부감 없이 받아들였을 만큼 착한 녀석이다.


나도 어릴 때 할머니랑 한 방을 썼고, 그래서 좋았기 때문에(잠이 들기 전이나 새벽에 할머니랑 이불속에서 도란도란 나누던 이야기들이 참 좋았다. 그래서 엄마는 좀 서운해하셨겠지만 엄마보다 할머니를 더 좋아했다, 할머니 돌아가시기 전까지)

돌 무렵부터 할머니랑 한 집에서 같이 지낸 둘째도 크게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으리라 예상은 했다. 다만 둘째가 딸이 아닌 아들이란 점이 좀 거시기하달까.


창고처럼 쓰는 방 하나를 정리해서 둘째 방을 만들어줘야는데, 이일 저일 바빠서 계속 미루고 있다. 스몰스텝 정리방에 들어가면 그래도 자극받아서 얼른 하려니 했건만, 자극만 받고 실천에는 못 옮기고 있다. 으이그~~~


정리에 일가견이 있는 어머님 눈에는 참으로 한심하기 이를 데 없는 며느리의 모습이건만 한 번도 뭐라고 하신 적은 없다. 다만 오늘 아침 운동 다녀오셔서 늦은 아침을 드신 뒤 내가 설거지하는 동안 남편의 컴책상을 치우시며 하는 말씀이 결국은 나 들으라고 하시는 소리인 듯해 찔끔할 뿐.


"우리집 남자는 어째 책상이 맨날 이런다니?

어릴 땐 안 그러더니 어째 나이를 먹을수록

정리를 안 해~ 전에는 필통에 연필이나 볼펜도

얼마나 가지런하게 정리해놓고, 책상도 늘 깨끗했는데..."


주섬주섬 책상을 치우시며 하는 말씀이

설거지하는 내 등 뒤로 와서 콕콕 박힌다.

매번 묵묵히 듣다가 오늘은 뭐라도 한 마디 해 드려야 속상한 마음이 좀 가시지 않을까 하여


"그러게요~ 다 제가 잘못 키워서 그래요~

어머님이 28년 잘 키워서 저 주셨는데

제가 데리고 살면서 다 버려놨네요~^^;;"


그랬더니 아무 말씀 없으시다.

속으로 그러시겠지.


'니 죄를 니가 잘 아는구나~'


아, 진짜~~~!

자기가 맨날 쓰는 책상 정리 하나 못해서

내가 이렇게 스스로 디스를 해야 하다니!!

우리집 이 남자를 어이할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