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말그미 Nov 01. 2020

몰래 뭔 짓을 해서

제삿밥 얻어먹은 내력

작년 추석 지나고 있었던 일이다.


어머님은 육 남매 중 셋째시다.

딸 넷  아들 둘, 네 자매 중에선 둘째.

남자 형제들은 자주 못 보시지만

자매들끼린 연중 몇 차례 모여서 같이 노시는데

9월 말 즈음이 그 해 두 번째 만남이셨다.


자매들 중 가장 어린 막내 이모님 댁에 모이시는데

추석 지났으니 부모님 묘소에도 가보고

명절 뒤풀이 겸 노신다고 가셔서 일주일을 지내다 오셨다.


지난 화요일의 일이다.

어머님 어깨가 안 좋으셔서 1년 전 수술을 받으신 뒤

정기검진 받으러 다니는 병원에 모시고 가는 길이었다.

운전하다 문득 생각나서 뭐하고 노셨나 여쭤보았다.


"이모님들이랑은 재밌게 노셨어요?"


"놀긴 뭐 노냐. 큰이모는 자리에 가만~ 앉아서 꼼짝을 안 하고, 막내는 일하느라 바쁘고, 영광이모랑 나랑 밥순이 돼서 밥 차려내기 바빴니라. 그래서 우리가 그랬다.

너랑 나랑은 세트로 다녀야지, 혼자 다니면 못 쓰겄다, 안 그냐? 함시롱~ "


"큰이모님 연세가 많으시니 움직이기 싫으신가 보죠~"


"아니여~ 그 이모는 원래 젊어서부텀  움직이는 걸 싫어했어야.  큰이모랑 영광이모는 가만 앉아서 뽀시락뽀시락 대는 것을 좋아하고, 나랑 막내이모는 어디 다니기 좋아하고 손이 빨라서 일을 잘 하니까 늘 일이 많았지."


"하긴 일 잘하는 사람한테 일이 몰리니까요.

그럼 네 분이 모여서 산소 갔다 오신 거 말곤 아무것도 안 하신 거예요? 산소 바로 위에 무위사 있던데, 거기라도 다녀오시지~"


"무위사야 우리 어릴 때 학교 댕기면서

뻑하면 소풍 갔던 곳이라 뭐 볼 게 있간디?

안 가~"


가끔 해남 가는 길에 시외할머님 계시는 산소에

들렀다가, 차로 2분쯤 거리에 있는 무위사에

핑~하니 다녀오길 즐기는 나로선 안타까울 따름.


"그래두 간만에 모이셨는데 재밌는 일 없으셨어요?"


"니가 물어봉께 생각난다. 큰이모가 신혼시절에

홀시어머니랑 방을 나란히 같이 썼는데,

시어머니방이랑 부부방 사이를 나누는 벽에

작은 문이 하나 달렸더란다. 밤에 잘 땐 당연히

그 문을 닫고 잘 것 아니냐?

그런데 문을 닫았더니, 시어머니가 문을 벌컥

열어 제끼면서 '너희들끼리 나 몰래 뭔 짓을 할라고

이렇게 문을 딱 닫고 자냐, 잉?' 그러셨더란다.ㅎㅎ"


"아니, 아들 부부가 밤에 뭔 짓을 하든 말든

장가보내셨으니 냅두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

뭔 짓 하라고 결혼시키시는 거잖아요~"


"내 말이~~ 그렇게 강짜를 놀라믄 평생 아들

데리고 살든가 하시지 결혼은 왜 시켜?

'며느리가 내 아들 채갔다' 그리 생각하시는 거지.

자고로 며느리를 들이면 내 아들은 내 아들이 아니고

며느리 남편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살아야지!


그란디 말이다~

몇 년 전부터 큰이모 아들이 집안 제사를 다 가져가서,

시어머니 제사도 아들네 가서 치르는데,

그 집 며느리가 참 정성스럽게 음식을 잘 만들어서

푸짐하게 제사상을 차리더란다.

이모가 그걸 보고 속으로

'그때 내가 어머님 몰래 뭔 짓을 한 덕분에

이렇게 떡 벌어지게 제삿밥 얻어 드시누만요~

그러셨다더라~ ㅎㅎㅎ"


작가의 이전글 다 내 죄이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