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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그미 Nov 01. 2020

힘들다 vs 편하다  

시어머니와 함께살이에 대해

내가 홀시어머님을 모시고 산다 하면

크게 두 가지 반응이 나온다.


"어머~ 안 힘드세요?"나

"이야~ 어머님이 다 해주셔서 편하겠네!"


첫 번째 반응은 대체로 시어머님과의 관계가 불편한 며느리들이 보이는 반응이고,

두 번째 반응은 시어머님들이 잘 해주시는 집안 며느리들의 반응이다.

나는 이 두 반응에 대해 이렇게 답한다.


"그렇게 힘들지도, 그렇게 편한 것도 아니에요~"


우리 어머님은 삼시 세끼 따뜻한 밥에 꼭 국이 있어야 하며

매끼 새롭게 만든 반찬을 요구하는 까다로운 분이 아니기에 그렇게 힘들지 않은 거고,

그렇다고 워킹맘 며느리 혹은 딸을 모시고 사는 어느 어머님처럼 온갖 집안일을 다 해주시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 시아버님께서 살아계시고, 내가 두 분을 모시고 살아야 했다면 좀 힘들었을 것 같다.

우리 결혼 2년 전에 돌아가신 시아버님은 어마무시하게 까다로우신 분이라

꼭 매끼 따스한 밥과 새로 끓인 국이 있어야 했고, 김치를 어찌나 좋아하셨는지,

고기나 생선이나 별나고 좋은 다른 반찬 다 있어도 김치가 없으면 반찬 없다고 안 드셨단다.

그래서 딸랑 세 식구일 때도 한아름이나 되는 큰 김장배추를 오십 포기씩 담그셔야 했다고.

재밌는 건 이렇게 담궈 놓으면 집에서 드시는 것보다 퍼주는 게 더 많으셨단다.


어느 집 홀애비 한 바게쓰~ 또 어느 집 홀애비도 한 바게쓰~

이런 식으로 아버님이 김치를 바게쓰채 퍼다가 남 주길 좋아하셔서,

누군 혼자 뼈빠지게 김치 담궈놓으면 누군 혼자서 인심 쓴다며

이 동네엔 왜 그리 홀애비가 많은지 모르겠네~

어머님 속으로만 그렇게 궁시렁대셨다능~^^


김치도 꼭 익은 김치여야 해서, 생김치는 싫어하셨고, 부위는 반드시 하얀 대 부분만 드셨단다.

어머님께선 이파리 부분을 좋아하셔서 부부가 유일하게 궁합맞는 게

배추김치 좋아하는 부위가 달라서 안 싸우고 드신 거라고.

아버님은 배추뿐만 아니라 무도 아래 하얀 부분만 좋아하시고, 무청 부분은 절대 안 드셨단다.


한 번은 어머님이 일 다녀오시니, 아버님이 옆집에서 알타리무를 주길래 다듬어놨으니

알타리김치 좀 담그라고 하시더란다.


"왠일로 무를 다듬어놓고 예쁜 짓 했네~!"

칭찬하시며 부엌에 들어가보니...


알타리무 이파리는 싹 다 사라지고, 작은 새끼 이파리 몇 개만 앙증맞게 달라붙어 있는 게 아닌가!

이미 칭찬은 했는데 또 뭐라고 하기도 그렇고 해서 속으로만

 '참내 알타리무 진짜 이쁘게도 다듬어놨네. 이파리까지 같이 담궈야 맛있는데~' 하구선

조용히~ 알타리김치를 담그신 적도 있다고 하신다.


이야기가 옆으로 샜다.

암튼 우리 어머님은 그렇게 까다로우신 분이 아니어서, 큰 어려움없이 모시고 사는 편이다.

그리고 아이들 어릴 땐, 특히나 둘째 애기 때는 엄마가 눈에 안 보이면

하도 꺼이꺼이 울며 방방을 기어다니면서 엄마를 찾아다니는 통에

(둘째가 돌이 되기 전에 어머님과 합가를 하면서, 우리끼리만 살던 아담한 집이 아니라

미로같이 복잡한 꽤 큰 집에 살게 돼 나를 찾으려면 한참을 찾아다녀야 했다),


"집안일 하느라 애 울리기보다, 차라리 내가 일을 할 테니 니가 애를 보거라~"


말씀하시곤 식사준비도 많이 도와주시고, 청소나 집안정리도 수시로 해주시곤 했다.

그러나 애들이 점점 크고 둘째가 서서히 엄마가 안 보여도 당장 하늘이 무너지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한 뒤부터는 많은 일들이 내 손을 거치게 되었다.


가랑비에 옷 젖듯 조금씩조금씩 시나브로 집안일 이관이 이뤄져서

어느날 보니 대부분의 집안일은 내가 다 하고 있었다.

어머님은 어쩌다 내가 부탁할 때만 어머님만의 레시피가 가미된 음식을 해주신다거나,

내가 바쁠 때 설거지를 해주시는 정도만 담당하시게 됐다.

어머님께서 참 현명하시게도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집안일을 내게 맡기신 결과였다.


그래서 남들이 보기엔 '저 일을 언제 다 하지?' 싶은 일들을 나도 모르게 해내고 사는 거다^^

하지만 몇 접씩 되는 마늘까기나 매년 봄마다 담그는 매실청, 늙은호박으로 만드는 호박죽,

오늘 점심에 먹은 서리태콩국수 같은 건 어머님이 안 계시면 내힘만으로는 절대 할 수 없는 것들이다.


시골에서 보내주신 쌀이나 부식거리들을 안 버리고 잘 먹게된 것도 어머님과 합가해 살면서부터다.

전에 우리끼리만 살 땐 쌀에 벌레가 생겨서 밥으론 못 해먹고 떡 해먹은 때가 한두 번이 아니고,

김치고 뭐고 다 못 먹고 도로 해남에 가져가거나 썩혀서 버려야 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시골에서 힘들게 농사지어 보내주신 것들을 그리 버릴 땐 너무도 죄송했지만 어쩔 수 없는 부분들이 있었다.


그런데 어머님과 함께 살면서는 그런 적이 거의 없다. 그 사이에 애들이 커서 잘 먹기도 하겠거니와,

어머님께서 수시로 먹을 때를 놓치는 음식이 없는지 잘 살펴주시는 덕분이다.

효율적인 가정경제에 어머님께서 기여하시는 바가 참으로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난 그렇게 힘들게 시모살이를 하는 것도 아니고,

어머님께 기대어 만판 편하게 사는 것도 아닌, 보통의 여느집처럼 그렇게 살림하고 산다.

피붙이는 아니지만, 내가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남자를 낳아주신 분과 함께 가족의 이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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