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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그미 Jun 08. 2023

망종 지난 6월의 까망빨강 열매들

6월은 24절기 중 아홉 번째에 해당하는 절기인 망종이 있는 달이다. 음력으로는 5월, 양력으로는 6월 6일 무렵이라 올해는 마침 현충일과 겹쳤다.


망종은 벼처럼 수염이 있는 까끄라기 곡식의 종자를 뿌려야 할 시기라는 뜻이다. 이 시기는 모내기와 보리베기에 알맞은 때이다. 그러므로 망종 무렵엔 보리를 베고 논에 모를 심는다. “보리는 망종 전에 베라.”는 속담이 있다. 망종까지 보리를 모두 베어야 논에 벼도 심고 밭갈이도 하게 된다는 뜻이다.


모내기와 보리베기가 겹치는 이 무렵에는 보리농사가 많은 남쪽일수록 더욱 바쁘다. 이때는 “발등에 오줌 싼다.”라고 할 만큼 일년 중 제일 바쁜 시기이다. 그래서 망종 무렵 농가에선 빨갛게 익는 앵두를  따먹을 시간도 없이 바빴던 것이다.


망종에는 ‘망종보기’라 해서 망종이 일찍 들고 늦게 듦에 따라 그해 농사의 풍흉을 점친다. 음력 4월에 망종이 들면 보리농사가 잘 되어 빨리 거두어 들일 수 있으나, 5월에 들면 그해 보리농사가 늦게 되어 망종 내에 보리농사를 할 수 없게 된다. 그래서 망종이 일찍 들고 늦게 듦에 따라 그해의 보리수확이 늦고 빠름을 판단하는 것이다.


“망종이 4월에 들면 보리의 서를 먹게 되고 5월에 들면 서를 못 먹는다.”고 하는 속담이 있다.

보리의 서를 먹는다는 말은, 그해 풋보리를 처음으로 먹기 시작한다는 뜻이다. 예전에는 양식이 부족해서 보리 익을 때를 기다리지 못하고 풋보리를 베어다 먹었다고 한다.


 "보리는 아직 덜 여물었는디 먹을 꺼시 없응께 익도 않은 풋보리를 비어다가 보리껍질째로 볶았지야. 껍질이 잘 안 벗겨징께 그라고 해야 껍다구가 홀랑 벗겨진단마다. 그걸 치에 넣고 까불라서 밥해묵었재."


어머님의 산증언이다. 보리고개 넘던 시절이라 먹을 거라면 무엇이든 귀했던 때인데도 망종 시기가 지나면 밭보리가 그 이상 익지를 않으므로 더 기다릴 필요 없이 무조건 보리를 베어야 해서, 보리 베고 모내기할 무렵엔 고양이손이라도 빌릴 만큼 바빠진단다.


그러니 달콤한 앵두를 따먹을 시간이 없어 나무 아래 소복이 떨어지도록 손을 못댔다는 망종 무렵. 이때 주변을 살피면 앵두뿐만이 아니라 보리수 열매도 빨갛게 익어가고, 오디와 버찌는 까맣게 익어 땅에 떨어지고, 땅에는 빨갛게 익은 산딸기 뱀딸기가 지천으로 널려있다.


하지만 예전엔 일하느라 바빠서 못 먹고, 지금은 다른 먹을거리들이 많아서 외면당한 채 밟히고 시들어가는 망종 무렵 6월의 열매들을 보니 무척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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