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말그미 Nov 01. 2020

떡메와 콩고물밥

별 게 다 유전이야

내 상태가 안 좋은 때는 서너 가지 정도가 고작이지만

상태가 괜찮으면 우리 집 식탁에 놓이는 반찬의 가짓수는 보통 열 개 안팎이다.


오늘 아침만 해도 배추김치, 갓김치, 무채지, 새우파프리카볶음, 물만두, 김, 굴비구이, 찰고구마떡구이, 무말랭이오징어무침, 어묵볶음에다 김치찌개와 시래깃국에 사과까지 놓였다.


그런데 한 달쯤 전부터 반찬이 많든 적든

어머님께서는 꼭 밥에 콩고물을 비벼서 드시곤 했다.

식탁 한쪽 영양제랑 비타민, 정장제 등이 놓인 자리 옆에 아예 콩고물통을 놓아두시고.


하루는 어릴 때 콩고물에 밥 비벼먹던 생각이 나서 여쭈었다.


"저희 친정에선 콩고물에다 설탕도 넣어서 비벼먹었는데 어머님은 그냥 드시네요?"


"설탕 안 넣어도 얼마나 꼬순데? 이거 영광이모가 지난번에 새로 빻았다고 보내준 건데 맛나다.

너도 먹지 그러냐?"


"어머님 드시는 거 보면 먹고 싶은데 다른 반찬 먹다 보면 잊어버리네요. 명절 때 콩가루 막 빻아와서 갓 쪄낸 찹쌀 떡메로 쳐서 인절미 만들고, 남은 콩고물은 밥이랑 설탕이랑 비벼먹으면 진짜 맛났는데~"


"우리 땐 박바가지에다 비벼먹었니라. 옛날엔 그릇도 귀해서 가을에 지붕 위에 열린 박 따다가 속은 파내고 말렸다가 그릇 대신 많이 썼지~. 바가지에 한가득 비벼서 온 식구 둘러앉아 먹으믄 꿀맛이지야. "


"할머니가 그렇게 해서 주신 적도 있었던 것 같아요. 보통은 스뎅 그릇 큰 거에다가 했구요. 콩고물이 명절이나 제사에 쓸 인절미 만들 때나 빻아오곤 해서 그리 자주 먹진 못했어요."


"그랬지~ 집에서 떡 만들 때나 해서 놓응께. 전라도는 특히나 명절에 쑥떡 안 해먹으믄 큰일 나는 줄 알고 꼭 만들어 먹었지야. 근디  우리 집은 아버지가 떡메를 안 쳐주시니까 내가 절구공이로 떡을 쳤단다."


"예에? 진짜요? 떡메는 당연히 남자들이 치는 거 아니에요? 우리 집은 작은아빠랑 삼촌들이 많으니까 돌아가면서 떡메질을 했는데."


"우리 아버지는 떡 하는 날은 어디서 노시다가  밤이나 돼서야 들어오시니까 그때까지 지달릴 수가 없어서 내가 했단다."


"큰외삼촌도 계시잖아요?"


"큰외삼촌은 내가 열한 살 때 중학교 마치고 목포 작은아빠 밑에서 일한다고 갔다가, 도저히 공부를 포기할 수 없어서 광주로 가셔서 학교 다니느라 쭉 집을 떠나 있어서 집안에 나 아니면 일할 사람이 없었지야."


"그래도 혼자서 절구공이로 쳐서 떡 만드시는 거는

좀 심했네요. 힘드셨을 텐데~"


"그때부터 내 어깨가 슬슬 나갔을 거여. 결혼해선 늬 시아버지가 어디서 녹이 택택 슨 무쇠 프라이팬을 가져와서 닦아 쓰라고 하는 바람에 한 달 내내 철수세미로 닦고 닦고 또 닦아서 쓰니라 또 어깨 나가고. 그러니 어깨빙신이지~"


울 어머니는 작년 봄에 오른쪽 어깨가 아예 들어 올려지지도, 뒤로 돌아가지도 않아서 어깨 수술을 크게 받으셨고  올해엔 왼쪽 어깨도 말썽이어서 가을부터 계속 병원을 다니시는 중이다.


"남자들이 명절에 떡메 치고, 닭 잡고, 밤 치는 거 말고 더 할 것도 없는데... 좀 해주시지 너무 하셨다~"


"떡메 치다 사람 죽은 일도 있었단다. 우리 옆 동네 어디에서 떡메를 내리치다 잘못해서 떡 반죽 손으로 만지던 아줌씨 어깨를 쳤는데, 어찌케 하다봉께 죽었다고 하더라."


"어머 진짜요? 그게 좀 위험하긴 해요. 생각해 보면 남자 어른들이 떡메 치고, 엄마나 작은엄마가 떡을 뒤집고 옹글씨고 하면서 반죽을 만지는데 떡메가 들린 사이에 후딱 해야잖아요. 잘못해서 떡메 내려올 때 손을 못 빼면 큰일 나겠더라구요."


"그라지야~ 그랑께 그렇게 죽기도 했재. 영 재수가 없을라니 사람이 그렇게도 죽드랑께..."


"참 사람 일이 알 수가 없어요. 명절 앞두고 떡 치다 초상나고..."


옆에서 듣던 남편이 한 마디 거든다.


"그래서 내가 밤을 안 친다니까~"


밤 치는 것이 떡메 치는 거랑 뭔 상관?

밤 치는 건 당연히 남자가 하는 일로 알고 있던 난, 시집와서 보니 남편이란 사람이 하두 밤 치는 걸 싫어해서 놀래버렸다. 그게 뭐 그리 힘든 일도 아니고 다른 일을 도와주는 것도 아닌데 저렇게 하기 싫을까?


그래서 투닥투닥 몇 번 하다가 이젠 아예 껍질 까진 밤을 사다 쓰거나, 아니면 어머님이 명절이나 제사 전에 미리미리 밤을 깎아두시곤 했다. 그러다 이번 아버님 기일 며칠 앞두고는 새로 사둔 밤칼로 껍질을 벗기시다 어머님 손가락을 크게 베이셔서 난리가 나기도...


암튼 이게 다 알고 보니 외할아버지 유전이었네 그랴~

뭐 그런 거를 다 물려받고 말이야.

내가 이래서 김해 김씨 여자는 훌륭해도 김해 김씨 남자는 훌륭하단 말을 못 한다. 으휴~~~



작가의 이전글 매의 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