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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그미 Feb 09. 2024

어느 멋진 날

설연휴 읽기 좋은 책

갑진년 설연휴를 맞아

읽기 좋은 책들 추천해봅니다.


5년 전부터 출판계가 할머니들로 들썩이기 시작했어요. 늦은 나이에 한글공부를 하신 할머니들의 글이 책으로 묶여나오며 입소문이 나기 시작해 잔잔하지만 널리 퍼지는 인기를 얻게 됐기 때문이죠.


여자라서, 가난해서, 글을 배우지 못했던 스무 분의 순천 할머니들이 순천시립그림책도서관에서 진행한 수업을 통해 배운 한글과 그림으로 엮어낸 할머니들의 그림 일기가 큰 사랑을 받았지요.


그래서 생애 첫 전시를 열었는데 이 전시가 SNS와 각종 매체로 널리 알려지면서 큰 화제를 모으게 됩니다. 이렇게 해서 작가로 데뷔한 순천 할머니들의 그림 일기를 모아 책으로 선보인 게 "우리가 글을 몰랐지 인생을 몰랐나"입니다.(2019년 2월)



한글 학교에 다니는 51분의 충청도 할머니들이 손 글씨로 쓴 요리법을 책으로 엮은 "요리는 감이여"도 있어요. 감으로 익혀 한평생 밥상에 올린 음식들의 요리법이 할머니의 손글씨로 또박또박 쓰여 있답니다. (2019년 8월)



앞선 두 책에 이어 2020년 11월 책숲놀이터에서 나온 "어느 멋진 날"은 문해교육지원사업을 통해 글을 배운 67분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2015년부터 쓴 시들 중 일부를 가려내 묶은 것이에요.



각 시에는 자연을 닮은 아름다운 그림으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초록담쟁이의 일러스트가 함께 했어요. 자신을 다독이며 쓴 시편들이 희로애락 네 개의 장으로 나뉘어있는데, 시 한 편에 그림 한 편씩이랍니다. 초록담쟁이님 그림이 시와 참 잘 어울려서 그림에 한참 눈길이 머무는 책이에요. ​​



설연휴에 가족들이 모두 모여서 지내기도 하고, 사정상 가족모임을 못하시는 분도 있을 거예요. 그 모든 가족의 기원이 된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시와 그림으로 만나보세요. 따스하면서도 울컥한 장면들이 여러분을 사로잡을 거예요.


맛보기로 음미해보시라고,
기억에 남는 시 몇 편을 옮겨봅니다.



< 처음 적은 글 > - 서두임




여태껏


글 모르는 나를 대신해 


모든 글은 우리 영감이 적어주며 살았다 


"우유 너치 마시오"



작년에


우리 영감 가고 난 뒤


처음 적은 글


5년 넘게 한글 교실에서


배워 둔 글로


세상과 글을 주고받았다






< 80살 가시나의 가족 > - 오정이


자음 ‘ㄱ’과 모음 ‘ㅏ’를 공부했다

선생님이 ‘가’ 글자로 낱말을

만들어 보라고 했다

나는 공책에 ‘가시나’ 썼다

선생님이 보며 ‘가시나’ 불렀다

내 나이 80살에 ‘가시나’로 불러 주어

소녀가 된 것 같다

총각 ‘ㄱ’이 처녀 ‘ㅏ’를 만나 옥동자 ‘가’를 낳는다는

문해교실 선생님!

힘들게 공부할수록 태어나는 아이들

한글은

혼자 사는 80살 가시나의 가족이 되었다.





< 숨바꼭질 > - 정을순


오만데

한글이 다 숨었는 걸 

팔십 넘어 알았다 

낫, 호미, 괭이 속에

ㄱㄱㄱ 

부침개 접시에 

ㅇㅇㅇ 

달아 놓은 곶감엔 

ㅎㅎㅎ 

제아무리 숨어봐라 

인자는 다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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