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머님은 젊으실 적부터 이가 안 좋으셨다고 한다. 아이를 임신할 때마다 이가 그렇게 아프시곤 했는데, 아이를 낳고 나면 아무렇지 않으셨다고.
나중에 생각해보니, 아무래도 뱃속의 아기에게 몸에 있는 칼슘이 가다 보니 이가 그렇게 아팠던 것 같다고 하신다.
아이 셋을 낳고 나신 뒤로는 이가 힘없이 바슬바슬해져서 밥 먹다가도 뭐가 씹혀서 뱉어보면 어머님의 이 한쪽이셨다고 한다. 그렇게 20~30대에 이가 하나 둘 빠지기 시작하셨으니, 30대에 벌써 틀니 할 적금을 붓기 시작하셨다고 한다.
아이 셋 키우시며, 집안일은 다 도맡아하시느라, 늘 뜀박질로 뛰어다니셔야 했던 직장을 다니시며 버신 돈의 일부를 꼬박꼬박 적금을 부으셨는데 얼추 돈 이백을 맞췄을 때 그 돈의 존재를 훤히 꿰뚫고 계셨던 시아버지가 급한 일에 쓸 돈이라며 빌려가시고는 그걸로 끝이셨단다.
하나 하나 사라지는 이를 보며 틀니하실 생각으로 어머님이 모아온 돈이었건만 아버님은 단 한 푼도 갚지 않으시곤 시치미를 뚝 떼셨는데, 달라는 말씀도 못 하시고 그냥 떼이셨다고...
어머님께서 다시 돈을 모아서 틀니를 하시기까진 긴 세월이 또 걸리셨다. 언제 처음 틀니를 하셨는지 여쭈니 잘 기억나지 않는다고 하신다. 별로 말씀하고 싶지 않으셔서 그리 답하신 것도 같지만,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아주 오래 전 일이셔서 그런가 싶기도 하다.
어머님이 틀니를 하고 계시단 사실을 남편에게 들어선 알고 있었지만, 워낙 깔끔하고 조용히 관리를 하셔서 틀니를 하신 줄도 모른 채 오랜 세월을 살았다.
그러다 틀니의 존재를 확인한 건 어머님께서 쓰러지셔서 응급실에 이송되신 뒤 MRI를 찍으러 가실 때였다. 몸에 쇠붙이는 다 떼고 가셔야 해서, 그때 어머님의 틀니를 처음 보게 되었다.
친정집에 아무도 틀니를 하신 분이 없다 보니, 틀니를 직접 본 건 그때가 처음이어서 무척 생경했다. 어머님의 틀니를 잘 세척하고 말려서 간수하고 있다가 어머님이 틀니를 달라고 하셔서 드리기까지 며칠이 걸렸더랬다.
이 좋은 건 내림이라고, 내가 삼겹살 속에 든 오돌뼈를 오독오독 씹어먹는 걸 보시고는 부러워하셨던 어머님, 이가 아무리 좋아도 자꾸 딱딱한 거 씹으면 상한다며 조심하라며 이르시던 어머님, 너는 참 먹는 것도 맛있게 잘 먹는다며 칭찬하시던 어머님.
안 좋은 이를 타고나신데다 온갖 고생을 다 하시느라 틀니를 일찍 하셔야 했던 어머님은 며느리의 건치가 얼마나 부러우셨을까... 뒤늦게 든 생각이었다.
10여 년 전 어금니 한 쪽에 충치가 생겨서 치료 후 어느 땐가부터 그쪽으로는 음식을 잘 안 씹게 되었더니, 이젠 그쪽으로 씹으면 잘 씹히지 않고 이가 아픈 느낌이어서 그쪽으로는 더 안 씹게 되었다. 그런데 이렇게 계속 안 씹고 두면 잇몸에도 안 좋을 것 같고 하여 요즘엔 그쪽으로 씹으려고 의식적으로 노력 중이다.
이 한쪽이 이렇게 불편해도 식생활을 즐기기가 어려운데, 온갖 이가 다 안 좋아서 틀니에 의존하셔야 하는 어머님은 오죽하실까. 같은 곳을 아파봐야 그 아픔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처럼 내 이가 아프니, 어머님의 고통에 더욱 신경을 쓰게 된다.
아픔은 타인에 대한 공감도를 높여준다. 속 좁고 생각 많은 내가 종종 어머님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을 때면 나는 이 아픔을 떠올리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