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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그미 Nov 18. 2020

나물 타령

나물 어디까지 먹어봤니?

어릴 땐 나물이 별로였는데 커가면서 나물이 맛있다. 른이 돼야 나물맛을 안다더니 내가 어른이 되긴  된 모양이다. 영양도 풍부하고, 소화도 잘 되고, 변비 예방에 탁월하니 거의 모든 끼니에 나물 한두 가지는 빠지지 않고 밥상에 올리는 편이다.

시금치, 콩나물, 숙주나물, 취나물, 돈나물, 유채(하루나)나물, 배추나물, 비름나물, 무나물, 도라지나물, 고사리나물, 시래기나물, 세발나물, 씀바귀나물, 냉이나물, 달래나물, 머위나물, 고구마순나물, 고춧잎나물, 참나물, 방풍나물, 삼(눈개승마)나물, 호박고지나물, 토란대나물, 애호박나물, 미나리나물, 죽순나물, 쪽파나물...

머릿속을 휘~익 스쳐 지나가는 나물 이름만도 이렇게 많다. 이 중에 돈나물은 서울 올라와서 처음 먹는 것인 줄 알았다. 시골 천지에 깔린 게 돈(돌)나물이고, 나물이란 이름이 붙었지만 왜 먹지도 않는 잡초에 나물 이름이 붙었을까? 생각만 했다. 고향에선 안 먹던 나물인데 서울 와서 슈퍼에 장 보러 갔다가 이걸 봉지에 조그맣게 담아서 천 원씩 파는 거 보고 기함을 했다.

'뭔 풀떼기를 돈 받고 판대? 서울은 별 걸 다 파네~'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고 지나쳐갔는데
이젠 가끔 슈퍼에 나오면 사다가 나물을 해 먹는다. 사실 돈나물은 잘 씻은 다음 삶는 대신 생으로 초장을 찍어 먹거나 쓱쓱 비벼서 먹으니까 귀찮은 과정이 대폭 준 데다, 상큼한 맛이 사라진 입맛을 돋우기에도 좋다.

어머님도 나처럼 돈나물은 서울 가서 처음 드셨겠지? 싶어서 이렇게 여쭈었다.

"어머님도 강진 계실 땐 돈나물 안 드셨죠?"

"돈나물? 돈나물이야 먹었지~ 비듬나물을 안 먹었재. 시골 돼지막 옆에 보면 비듬나물이 번질번질하니 쫘악 깔렸어도 누가 먹을 생각했간? 그란디 서울 올라간께 사람들이 아주 환장을 하고 먹더라."

"비듬나물이면 저희 텃밭에도 많이 나는 통통하니 미끌미끌한 풀 아녜요?"

"아이~ 그건 쇠비름이지. 참 비듬나물을 비름나물이라고도 부르더라. 쇠비름은 전라도에서 나물 안 해먹었지. 무슨 의사 나오는 프로그램 본께는 쇠비름이 영양분이 풍부해서 뇌질환, 눈 건강, 항산화, 관절염, 심장질환 뭐 그런 거에 좋다고 하더라만. 나저나 너 몇 년 전에 텃밭에서 쇠비름 잔뜩 뜯어와설랑 효소 만든다고 병병이 담아뒀든만~ 그래놓고 싹 잊어부렀지야?"

"흐흐, 담아만 놓고 깜빡 잊고 있었네요."

"넌 그게 병이다. 만들어서 담아뒀으면 제때제때 찾아서 먹어야재. 뭣인디 여기에 이라고 자리 차지하고 있다냐? 하고 본께는 쇠비름이길래 효소는 다 걸러서 페트병에다 담아놓고 찌꺼기는 버렸니라~ 저기 주방 베란다 한쪽 박스 안에 뒀다. 애끼지 말고 얼른얼른 먹어라~ 애끼다 똥 된다."

"네~ 어머니~^^"

한 쿠사리 들어도 뭐 그러려니~ 하고
다음 이야기로 넘어간다.

"우리 어릴 땐 먹을 것이 없응께 산이고 들이고 나물거리 생기면 뜯어다가 반찬으로도 먹고 나물죽도 해 먹고 그랬재. 쌀이 귀할 때라 나물에다가 보리, 서숙, 싸래기 이런 거 넣어서 멀겋게 푹 끓여가지고 죽으로 먹고, 쑥은 쑥밥으로도 먹었지. 그라고봉께 또 생각난다. 논에다 키우는 자운영도 나물로 해 먹었네."

"그 보라색 꽃 예쁜 자운영이요?"

"잉, 그것이 꽃도 예쁘지만 자운영을 낫으로 베어다가 다듬어 삶아서 조선간장이랑 마늘이랑 깨랑 참기름이랑 넣고 조물조물 무쳐먹으면 무자게 맛있어야! 근디 자운영이 원래 논에 거름 되라고 키우는 거여. 꽃 피고 나서 쟁기로 갈아엎어놓으면 그대로 거름이 되거덩~.
그란 것을 봄에 사람들이 나물 한다고 싹 비어 가면 안 된께 못 비어 가게 머리카락을 자운영 깔린 논 여기저기다가 흐트러놓기도 했재."

"왜요? 머리카락 있다고 안 비어 가요?"

"그럼! 나물에 머리카락 들어갈까 봐 안 비어갔재. 나물에 멀카락 들어가믄 못 먹지야~"

옛사람들은 참 단순하기도 했지. 머리카락 들어있다고 그 맛있다는 자운영나물을 포기하다니~. 하긴 도깨비랑 귀신이 팥죽 무서워서 가까이 못 오고 도망가는 거나 도찐개찐이다.ㅎㅎㅎ


* 봄이 오려면 아직 멀었는데 ​어여쁜 자운영꽃이 논바닥에 가득한 풍경이 그립다. 나물 타령 끝에 뜬금없이 자운영꽃이 보고싶어져 오래전 영광 백수 해안도로 근처를 지나다 발견한 자운영꽃 사진 올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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