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릿속을 휘~익 스쳐 지나가는 나물 이름만도 이렇게 많다.이 중에 돈나물은 서울 올라와서 처음 먹는 것인 줄 알았다. 시골 천지에 깔린 게 돈(돌)나물이고, 나물이란 이름이 붙었지만 왜 먹지도 않는 잡초에 나물 이름이 붙었을까? 생각만 했다. 고향에선 안 먹던 나물인데 서울 와서 슈퍼에 장 보러 갔다가 이걸 봉지에 조그맣게 담아서 천 원씩 파는 거 보고 기함을 했다.
'뭔 풀떼기를 돈 받고 판대? 서울은 별 걸 다 파네~'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고 지나쳐갔는데 이젠 가끔 슈퍼에 나오면 사다가 나물을 해 먹는다.사실 돈나물은 잘 씻은 다음 삶는 대신 생으로 초장을 찍어 먹거나 쓱쓱 비벼서 먹으니까 귀찮은 과정이 대폭 준 데다, 상큼한 맛이 사라진 입맛을 돋우기에도 좋다.
어머님도 나처럼 돈나물은 서울 가서 처음 드셨겠지? 싶어서 이렇게 여쭈었다.
"어머님도 강진 계실 땐 돈나물 안 드셨죠?"
"돈나물? 돈나물이야 먹었지~ 비듬나물을 안 먹었재. 시골 돼지막 옆에 보면 비듬나물이 번질번질하니 쫘악 깔렸어도 누가 먹을 생각했간? 그란디 서울 올라간께 사람들이 아주 환장을 하고 먹더라."
"비듬나물이면 저희 텃밭에도 많이 나는 통통하니 미끌미끌한 풀 아녜요?"
"아이~ 그건 쇠비름이지. 참 비듬나물을 비름나물이라고도 부르더라. 쇠비름은 전라도에서 나물 안 해먹었지. 무슨 의사 나오는 프로그램 본께는 쇠비름이 영양분이 풍부해서 뇌질환, 눈 건강, 항산화, 관절염, 심장질환 뭐 그런 거에 좋다고 하더라만. 그나저나너 몇 년 전에 텃밭에서 쇠비름 잔뜩 뜯어와설랑 효소 만든다고 병병이 담아뒀든만~ 그래놓고 싹 잊어부렀지야?"
"흐흐, 담아만 놓고 깜빡 잊고 있었네요."
"넌 그게 병이다. 만들어서 담아뒀으면 제때제때 찾아서 먹어야재. 뭣인디 여기에 이라고 자리 차지하고 있다냐? 하고 본께는 쇠비름이길래 효소는 다 걸러서 페트병에다 담아놓고 찌꺼기는 버렸니라~ 저기 주방 베란다 한쪽 박스 안에 뒀다. 애끼지 말고 얼른얼른 먹어라~ 애끼다 똥 된다."
"네~ 어머니~^^"
한 쿠사리 들어도 뭐 그러려니~ 하고 다음 이야기로 넘어간다.
"우리 어릴 땐 먹을 것이 없응께 산이고 들이고 나물거리 생기면 뜯어다가 반찬으로도 먹고 나물죽도 해 먹고 그랬재. 쌀이 귀할 때라 나물에다가 보리, 서숙, 싸래기 이런 거 넣어서 멀겋게 푹 끓여가지고 죽으로 먹고, 쑥은 쑥밥으로도 먹었지. 그라고봉께 또 생각난다. 논에다 키우는 자운영도 나물로 해 먹었네."
"그 보라색 꽃 예쁜 자운영이요?"
"잉, 그것이 꽃도 예쁘지만 자운영을 낫으로 베어다가 다듬어 삶아서 조선간장이랑 마늘이랑 깨랑 참기름이랑 넣고 조물조물 무쳐먹으면 무자게 맛있어야! 근디 자운영이 원래 논에 거름 되라고 키우는 거여. 꽃 피고 나서 쟁기로 갈아엎어놓으면 그대로 거름이 되거덩~. 그란 것을 봄에 사람들이 나물 한다고 싹 비어 가면 안 된께 못 비어 가게 머리카락을 자운영 깔린 논 여기저기다가 흐트러놓기도 했재."
"왜요? 머리카락 있다고 안 비어 가요?"
"그럼! 나물에 머리카락 들어갈까 봐 안 비어갔재. 나물에 멀카락 들어가믄 못 먹지야~"
옛사람들은 참 단순하기도 했지. 머리카락 들어있다고 그 맛있다는 자운영나물을 포기하다니~. 하긴 도깨비랑 귀신이 팥죽 무서워서 가까이 못 오고 도망가는 거나 도찐개찐이다.ㅎㅎㅎ
* 봄이 오려면 아직 멀었는데 어여쁜 자운영꽃이 논바닥에 가득한 풍경이 그립다. 나물 타령 끝에 뜬금없이 자운영꽃이 보고싶어져 오래전 영광 백수 해안도로 근처를 지나다 발견한자운영꽃 사진 올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