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맑은돌 Mar 07. 2022

우리 각자의 루틴대로

시키는 대로만 하련다

베트남 공장에는 회사가 설립되었을 때부터 근무하고 있는 청소 아주머니가 있다. 30대부터 우리 회사에 다니기 시작해서 이제 50이 넘으셨으니까 거의 20년을 근무한 분이다. 직원들과도 사이가 좋고, 성실하게 사무실을 잘 정리해 주어서 오랫동안 별문제 없이 잘 다니고 있는 분인데, 아쉬운 점을 한 가지 꼽자면 딱 본인이 정해 둔 일만 한다는 점이다. 정확히는 시킨 만큼만 일을 하는 것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본인이 설정해 둔 루틴이 있어서 원래 매일 하는 사무실 바닥 청소, 책상 청소, 쓰레기통 정리는 잘해주시는데, 창틀이나 문에 뭔가 눈에 확 들어오는 새로운 얼룩이 생기더라고 정리해주지 않는다. 벽 모서리에 거미줄이 쳐 있어도 없애달라고 해야지 빗자루로 한번 쓸어주고, 크리스마스 장식도 치워달라고 말하지 않으면 다음 해 크리스마스 때까지 그대로 놔둘 것만 같다.


하지만 내가 베트남에 지내며 다녀본 베트남 사람들의 집을 보면서 어느 정도 이해가 될 것 같기도 했다. 보통 베트남 사람들의 집 1층에는 오토바이나 차량을 들여놓기도 하기 때문에 원래 집 바닥에 모래도 많고, 개미 같은 벌레도 많다 보니까 우리 회사의 사무실 정도와 같은 상태면 치울 필요가 없는 깨끗한 상태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회사에 있는 내 사무실은 특별히 더 깨끗하게 청소해 달라고 했다. 외부 손님들도 자주 방문하는 곳이기에 나도 항상 정리를 열심히 하는 편이고, 그런 이유로 다른 장소보다 더욱 신경 써달라고 청소 아주머니에게도 얘기해 두었다. 그런데 이렇게 청소를 자주 하고 열심히 해도 사람들이 워낙 많이 들락거리고, 또 원료의 샘플 테스트도 빈번하게 하는 곳이라서 공기가 좋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향기 나는 초를 사기로 했고, 향초를 전기 불빛으로 녹이는 워머를 함께 내 사무실에 가져다 놓았다. 또 공기청정기도 함께 들여놓았다.


향초와 워머


잠깐 초를 켜봤더니 금세 산뜻하고 깨끗한 향기가 내 사무실 가득 퍼진다. 그렇게 향기를 테스트하고 있는데, 청소 아주머니도 신기한 듯 내 방으로 들어와서 향기가 너무 좋다고 그런다. 나는 아주머니에게 내가 출근하기 전에 이 향초 워머의 전원을 켜달라고 했다. 그러고 나서 내가 출근한 뒤에 워머의 전원을 끄면 딱 적당한 시간 동안 향이 나올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공기청정기 전원 버튼도 한 번만 누르면 된다고 했다. 한 번만 눌러야지 1단으로 운전이 되기 때문에 조용했고, 2단부터는 조금 시끄러운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루는 출근했는데, 공기 청정기가 윙~하고 평소보다 조금 크게 돌아가길래 봤더니 2단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내가 전날 퇴근하면서 전원을 끄지 않았는데(그래서 계속 1단으로 돌아가고 있었는데), 청소 아주머니가 아침에 출근해서 평소대로 전원 버튼을 '한번' 눌렀기 때문에 1단에서 2단으로 올라간 것이었다. '전원이 켜있으면 또 켤 필요가 없는데, 이걸 왜 한번 더 눌렀지?' 하고 생각하다가도 '이 분은 원래 시킨 대로 하시는 분이니까......' 하면서 그냥 가볍게 넘겼다.


아무튼 향초를 켜 둔 이후에 사무실은 더 깨끗해지고 향기로워졌다. 하지만 매일 켜다 보니 향이 다 날아가버린 모양이다. 그렇게 한 3개월 이상 매일 켜다 보니 향이 많이 옅어지고 더 이상 진하지 않다. 그래서 퇴근 후에 새것을 사기로 하고, 워머 안에 들어있던 향초를 제거한 뒤에 퇴근했다.


집 근처의 쇼핑몰에 가니 향초 브랜드들이 여럿 있었는데, 최대한 은은한 섬유유연제 향으로 골라서 다음날 회사로 출근했다. 


그렇게 새로 산 향초를 종이 가방에 담아서 사무실로 들어갔는데, 내 사무실 안에 있는 워머에 전원이 들어와 있었다. 청소하는 아주머니는 워머 안에 향초가 없는데도 워머의 전원을 켜 놓은 것이다. 진짜 딱 시킨 건 정확하게 지켜서 하시는 분이다. 내가 아침마다 전원 버튼을 눌러달라고 했으니까, 그분은 내가 얘기한 대로 한 것뿐이다. 워머 안에 향초가 있던지 말던지는 상관이 없었다.


"이 안에 향초가 들어있을 때만 전원 켜주세요." 


그날, 청소 아주머니를 불러서 이렇게 다시 부탁했다.




이런 일들은 베트남에 지내면서 의외로 많이 경험할 수 있는 사례이다. 한국에선 당연히 구성원들 간 암묵적으로 합의되어 서로 눈치껏 알아서 하는 일들이 외국에선 아닐 수 있는 것이다.


한 번은 공장의 빈 땅에 풀이 너무 많이 자라서 풀을 제거하는 인부들을 불러다가 용역 계약서를 작성한 후에 풀을 자르는 업무를 맡겼는데, 그 사람들은 주말에 회사에 나와서 진짜 자르기만 하고 갔다. 무슨 말이냐면, 풀만 다 베어서 벤 자리 옆에 그대로 놓고 간 것이다. 그래서 베트남 총무 매니저를 불러서 일을 이렇게 해 놓는 경우가 어디 있냐고 치울 때까지 돈 주지 말라고 했더니, 총무 매니저는 오히려 나를 이상하게 보며 말한다. 


"우리는 풀을 베어달라고만 계약했잖아요. 처리까지 하라고 했으면 이 금액에 안됩니다."


난 처음에 총무 매니저가 장난치는 얘기인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진짜다.



이곳 베트남에선 정확하게 각각의 업무를 다 명시해주어야 한다. 가전제품이나 가구를 사더라도 설치까지 계약하게 되면 진짜 설치만 해주고, 기존 제품의 처리나 설치하면서 발생한 쓰레기들은 상관하지 않는 게 일반적이다. 그래서 어쩔 땐 이런 생각도 든다. '정말 베트남 인건비가 싼 게 맞기는 한 건가?' 물론 한국에 비해서 저렴하긴 하지만, 생각만큼 저렴하지 않을 수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베트남 귀신은 한국말을 모른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