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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은돌 May 17. 2022

베트남에서 상을 받았다

한쪽만 아는 사람에게 건네는 표

베트남의 코로나 상황이 본격적으로 완화된 올 초부터 그동안 밀렸던 회사의 업무를 한창 진행 중이라 바쁘다. 베트남의 관공서들도 이제 업무를 재개했고, 거래처도 다시 만나기 시작하면서 회사 제품 판매에도 신경을 쓰고 있다. 이와 함께 최근 몇 년간 방문하지 못했던 한국 방문을 준비하고 있던 중에 베트남의 한 시골 공안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코로나 기간 전에 회사가 접수했던 고소장이 이제 자기네 관할 지역에 도착했다고, 법인의 대표인 내가 조사를 받으러 지역 공안에 출석해야 한다는 연락이었다. 보통의 경우에는 위임장을 작성한 뒤에 베트남 직원이 조사를 받았는데, 이번에는 법인이나 외국인을 잘 상대해보지 않은 시골 지역 공안이라서 그런지 막무가내로 대리인이 아닌 회사의 대표가 출석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어쨌든 첫 조사는 내가 받고 다음의 조사부터는 회사 직원이 대리인 자격으로 출석하는 것을 합의한 뒤에 공안에 협조하기로 했다.


다음날이면 한국에 방문해야 하는 날이라서 새벽 일찍부터 출발했고, 공안과는 아침 8시에 만날 수 있었다. 작달막한 몸집의 중년 남성인 이 깐깐한 시골 공안은 처음부터 만만하지가 않다. 일단 미리 준비해 간 선물도 받지 않고, 자리에 앉자마자 통역 직원을 배제하고 베트남어로 대화해달라고 요청을 한다.


그렇게 조사받을만한 베트남어 실력이 되지 않는다고 설득한 뒤에 통역 직원이 함께 착석했는데, 나에 대한 신상을 조사하는데만 한참의 시간을 사용했다. 이름, 나이, 주소, 국적과 같은 간단한 것은 금방 조사가 끝났는데, 민족이 무엇이냐는 부분에서 대화가 통하질 않는다.


베트남은 85%가량이 하나의 민족(Kinh 족)이지만 이를 포함하여 54개의 민족으로 이루어진 다민족 국가이다. 그리고 주민등록증에는 민족을 기재하게 되어있는데, 그래서 그런지 나에게 국적과 구분되는 민족이 무엇인가를 계속 묻고 있다. 국적이 한국이고, 민족도 한국이라고 대답을 해도 이해하지 못한다. 한참을 실랑이한 끝에 마침 나의 가방에 들어있던 한국 주민등록증을 보여준 뒤에, 한국의 주민등록증에는 베트남처럼 민족을 기재하는 곳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국적과 민족이 같다는 것을 설득할 수 있었다. 


이 깐깐한 공안과는 오전 내내 조사를 받은 후에 내일 한국에 가야 한다는 항공 스케줄을 보여주고서 조사를 마칠 수 있었다. 


베트남의 공안


그 후, 오랜만의 짧은 한국 방문을 마치고 베트남에 들어오게 되었다. 오랜만에 외국과의 항공이 재개된 만큼 베트남의 입국장에서는 입국심사를 처리하는 시간이 이전보다 많이 길어진 것 같다. 40분 이상 입국심사를 위해 줄을 서있다가 내 차례가 되어 입국 심사관에게 여권을 제시하고 마스크를 벗었는데, 보딩패스를 보여달라고 한다.


나는 당연하게 스마트폰에 저장된 모바일 보딩패스를 입국 심사관에게 제시했는데, 입국 심사관은 이거 말고 보딩패스를 보여달라고 다시 요청을 한다. 나도 이게 보딩패스라고 다시 대답했다. 한국에서는 보딩패스를 스마트폰으로 받아서 이용한다고 얘기를 해도 심사관은 끝까지 막무가내로 보딩패스를 보여달라고 하는 중이다. 


결국, 입국 심사관은 다음부터 비행기에서 내리면 보딩패스 버리지 말고 꼭 가져와야 한다고 나에게 충고를 했다. 내가 모바일 보딩패스로 비행기를 탔다는 말은 끝까지 믿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나도 그냥 알겠다고 하며 입국 심사대를 벗어날 수 있었다.



그렇게 호치민 공항에서 집으로 가는 길에 바로 지난해였던 코로나 기간의 베트남이 생각났다. 길에는 아무런 차량도 운행하지 않았었고, 아무도 걸어 다닐 수가 없었다. 그렇게 코로나 기간 동안의 베트남은 강력한 봉쇄를 통해 모든 국민들을 집안에 격리시키는 정책을 펼쳤었다. 사업장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직원들이 퇴근하지 않고 사업장에서 숙식을 한 경우에만 가능한 정도였고, 모든 시장과 상점들이 문을 닫아야만 했었다. 심지어 나의 경우에는 이가 부러져도 치과에 가는 허락을 검문소로부터 받을 수가 없었다.


한국에 이러한 상황을 이해시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고, 한국도 마찬가지로 이를 이해하기 힘들어했다. 심지어 한국도 베트남과 마찬가지로 코로나가 있으니까 너무 코로나 상황에 매몰되지 말고 시장을 개척해보라는 한국 본사의 요청이 있기도 했었다. 이런 코로나 기간에 베트남에서 시간을 보낸 많은 주재원들은 현지의 상황을 설명시키느라 어려움을 겪었지만, 주재원들의 모회사인 한국 본사에서는 현지의 상황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그렇기에 코로나로 인한 베트남의 봉쇄 정책을 무시한 요청들이 전달되기도 했었다.


베트남의 공안과 입국 심사관이 한국의 상황을 잘 모르는 채 나에게 주문한 것과 비슷한 것이기도 하다. 결국 한국의 주민등록증을 확인한 베트남의 공안은 나를 믿어줬고, 종이로 인쇄된 보딩패스를 보지 못한 입국 심사관은 끝까지 본인이 맞다고 생각한 것과 비슷한 상황이다.


어쨌든 한국의 본사를 설득하기 위해서는 이곳 상황을 어떤 형태의 자료로든 증명해야 한다. 베트남의 뉴스, 통계와 같은 것으로 설득해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많은 자료를 한국에 보고하는 중에 베트남의 한 언론사로부터 연락이 왔다. 코로나 기간 중에 베트남에서 가장 매출 성장률이 높은 회사 중 하나로 우리 회사가 선정되었다는 연락이었다. 


2022년 4월에 베트남 국가 컨벤션 센터에서 개최된 고성장기업 시상식


시장을 비롯한 모든 경제 활동이 멈춰 서있던 베트남의 코로나 기간 중에 그나마 나은 실적을 보인 것이 우리 회사라는 믿을만한 증표를 받은 것 같은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베트남의 수도 하노이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상을 받았고, 언론사 인터뷰도 여러 개 진행을 했다. 또 베트남의 TV에 나온 우리 회사 소개 화면을 한국 본사에 보내 주기도 했다. 이제 한국에 있는 본사에서는 우리가 코로나 기간에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하며 지냈는지 알 수 있게 되었을까?




내가 알고 있는 것으로만 남을 판단하는 경우가 있다. 양쪽을 다 알고 있는 입장에서는 한쪽만 아는 상대방을 설득하는 것이 여간 힘든 게 아니다. 그때 이런 것이 필요하다. 한쪽만 아는 상대에게 보여줄 증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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