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립 불가 꼰대들
답답해서 속이 터질 것 같다.
할 일 없이 사무실에 앉아 있는 것도 정말 지옥이었다. 그래서 퇴근길에 날 채용한 사장님한테 장문의 카톡을 보냈다. 다음날, 출근 차량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차에서 부사장님이 내리더니 베트남어 책을 두 권 건네시며 카톡 내용을 사장님께 전달받았다고 하셨다. 아무것도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그 답답한 심경을 이해한다며 뭐부터 가르쳐야 될지 고민하고 있었다고 하셨다. 부사장님은 오늘은 퇴근 후 본가에 가니까 집에 태워줄 수가 없고 그랩 택시 타고 오기엔 걱정도 돼서 그냥 출근하지 말고 집에 있으라고 하셨다(오예). 월요일에 출근하면 엑셀 사용해서 지출 기안서, 생산보고서와 같은 서류들을 만들어보라고 하셨다. 내가 북부 공장으로 올라가면 공장 관리를 다 도맡아서 해야 되니까 총괄 책임자로서 내 스타일대로 서류를 만들어야 한다. 내가 만든 자료들을 다른 베트남 직원들이 다 써야 한다는 생각에 부담도 들었다. 그래도 할 일이 주어져서 너무 기뻤다. 내가 부사장님에게는 눈에 가시로 여겨지는 줄 알았는데 이렇게 챙겨주셔서 안도감도 들었다. 부사장님은 아침을 사주시고 날 집으로 데려다주셨다.
베트남에 다시 들어온 지 3주가 지날 무렵 비자를 받을 수 없다는 소식들 들었다. 워킹비자를 받아야 하지만 코로나 때문에 외국인에 대한 비자 발급이 모두 중단됐으며, 외국인 입국도 전면 중단됐다고 들었다. 베트남에 어떻게 다시 왔는데 비자를 못 받아서 한국으로 돌아가야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조바심이 났다. 아, 정말 베트남에서는 왜 항상 산 넘어 더 큰 산이 있는 건지, 인생이 원래 이런 건지, 잠시 안도해버리면 또다시 불행이 찾아왔다.
토요일 아침 사장님의 연락을 받았다. 아 참. 베트남은 토요일도 일하는 날이지. 주 6일은 정말 적응이 안 된단 말이야. 연락을 받고 출근 대신 사장님과 대면해야 했다. 코로나 때문에 대부분의 가게들이 영업을 하고 있지 않았지만, 푸미흥 한 바퀴를 돌아보니 오픈한 카페가 하나 있어서 들어갔다. 부담스러울 만큼 화려한 분위기의 카페에서 사장님과 단 둘이 카페에 앉아있기 어색했다.
나는 북부 공장에 있는 동기들의 안부를 물어봤고, 사장님은 회사에서 부사장을 통해 2주간 보고 받았던 나에 대해서 이야기해주셨다. 더불어 동기의 모자란 부분들을 하나하나 집어서 이야기해주시는데, 반면에 나에 대한 피드백은 너무 추상적이었다. 내 면전에 대놓고 잔소리할 수 없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구체적으로 행실 하나하나를 끄집어내서 말하기엔 애매한 부분들이라 그런 건지 잘 모르겠다. 잘못한 건 없지만 좀 더 잘할 수 있는 마음에 아쉬워서 하는 소리 같았다.
"밥 먹여달라고 입만 벌리고 있는 격이야. 집 잘 살아? 애가 똑똑하고 착하긴 한데, 귀하게 자라서 대접받길 원하는 거 같아. 집 잘 살면 여기서 일을 왜 해?"
부사장이 나에 대해서 사장한테 한 말이다. 순화되지 않은 말을 그대로 전해 들으니 불쾌하고 억울했다. 나 딴에는 적극적으로 배우려고 할 만큼 했는데 이런 식으로밖에 피드백이 돌아오지 않는다면 이 회사를 다니는 걸 다시 생각해봐야 했다. 내가 부족했던 것이 있었는지 자기 객관화를 하며 날 돌아보기도 하고 더불어 신입 혹은 막내의 역할에 대해서 생각도 해보았다.
사장님은 현재와 미래의 내 포지션이 어떻든 먼저 배우려고 다가가는 자세를 익히고 잊지 말라고 하셨다. "할 수 있는 게 없으니 일을 알려달라고 하지 말고, 모든 걸 하려고 해라" 이렇게 말하시는데, 맞는 말이지만 너무 추상적인 게 아닌가. 주변 친구들 중에서도 내가 가장 먼저 취업했기 때문에 누구에게 털어놓을 수도 조언을 구할 수도 없었다. 타지에 떨어져서 그야말로 낙동강 오리알이 된 기분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