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하고 착한 아이는 위험하다
어릴 때부터 착하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타고난 기질이 얌전하고 말썽을 잘 피우지 않으며 조용한 성격이라, 결국은 어른들 말을 잘 듣기 때문에 착하다는 뜻이었겠지만. 하여간 나는 크게 엄마 속을 썩이는 아이는 아니었다. 머리도 꽤 좋았고, 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도 맏딸 노릇을 착실히 하며 엄마를 도우려는 아이였으니까. 생활에 허덕이는 엄마는 늘 나에게 동생을 맡겼다.
엄마만 나에게 동생을 맡긴 건 아니다. 가까이에 사는 이모는 오빠와 언니가 있는데도 막내를 나에게 맡겼다. 이웃들도 아이들을 나에게 부탁했다. 동네에서 나보다 어린아이들은 거의 모두 자기 친언니 친누나보다도 나를 더 좋아하고 따랐다. 배려와 희생이 몸에 밴 나는 동생들에게 인기가 많았고, 나도 동생들이랑 노는 걸 좋아했다. 확실히 착한 아이이긴 했다. 마흔이 훌쩍 넘은 지금도 주변에 언니, 동갑내기보다는 몇 살씩 어린 친구가 많다.
아무리 아이가 착해도 그렇지 착하다는 칭찬을 많이 하는 게 아이에게 독이 된다는 사실을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안다. 그렇지만 그땐 달랐다. 그러니까 우리 엄마가 무슨 큰 잘못을 한 것도 아니다. 엄마는 나를 좋아해서 착하다고 한 것이니까. 그게 나를 망치는 일이라고 알았으면 절대 그러지 않았을 것이다.
하여간 나는 착하다는 소리를 듣고 싶어서 늘 양보했고, 배려했다. 동화책이나 위인전에 나오는 인물들의 행동을 따라 하려고 한 적이 많다. 싸움이 벌어지면 약자의 편에 서고, 내 것을 조금 잃더라도 정의를 바로 세우고, 누가 오른쪽 뺨을 때리면 왼쪽 뺨도 내민다든가 뭐 그런 것.
그러나 세상이 어디 그렇게 만만한가. 그렇게 해서 만만해진 건 나였다. 부모는 나에게 공격성을 가르쳐주지 않았다. 나는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껍질을 갖추지 못한 채 세상을 겪게 되었다. 국민학교 고학년으로 올라가면서부터는 만만한 아이로 찍혀 이리저리 휘둘리다가 찢기고 상처받는 일이 많았다.
어른이 된 지금 생각하면 그때 나의 부모도 꽤나 순진한 사람들이었다. 자기가 진실되면 하나님이 다 알아서 해 주실 것이라고 믿는 분들이었으니. 내가 그렇게 자라는 동안 부모도 똑같이 세상에 치이고 찢기고 매일 울었다. 우리 부모가 남들만큼 약았다면, 돈이 조금 모였을 때 헌금을 덜 하고 그 돈으로 집을 샀을 것이다. 부모는 그러지 않았고, 그 가난 속에서도 정말로 십일조를 하고, 건축헌금을 내고, 애써 모은 목돈을 감사헌금으로 냈다. 성경에서 재산을 땅에 쌓지 말고 하늘에 쌓으라고 하니까. 목사님이 그 말씀을 할 때 모두가 아멘, 하니까. 다들 그러는 줄 알았던 것이다. 순진하게도. 엄마 아빠는 집을 사는 대신에 사람들의 비웃음을 샀다. 그 교회를 그리 오래 다니고도 계속 가난한 건 우리 집뿐이었다.
4학년인가, 5학년 때 같은 반에 경계성 장애인인 친구가 있었다. 그때는 경계성이라는 말도 없었고, 그냥 좀 이상한 애, 모자란 애 취급을 받는 아이였다. 지금이라면 도움반이라고 할 것이다. 그때 반에서 거의 모두가 그 아이와 짝을 하기 싫어했고, 심한 경우 말을 섞기조차 꺼려했다. 나는 이런 이유들로 친구를 차별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했고, 그동안 감명 깊게 읽은 동화책의 주인공처럼 행동했다. 그 친구와 친하게 지내고, 공부도 도와주고, 아침에 만나서 함께 학교에 가고, 학교가 끝나면 그 친구의 집에 가서 같이 숙제도 하고 놀기도 했던 것이다.
그 친구네 집은 꽤 넉넉히 사는 편이었는데 그 부모님은 자기 딸과 잘 지내주는 내가 고마워서 방과 후에 놀러 가면 간식도 챙겨주고 예뻐해 주셨다. 특히 할머니가 나를 좋아했던 것이 기억난다. 친구는 말하는 게 어눌하고, 행동도 이상할 때가 많았다. 예를 들어 갑자기 손바닥에 침을 뱉고는 그걸 양손으로 비벼 문지르다가 바지에 슥슥 닦아버린다거나 하는 것이었는데, 이건 친하게 지내는 나조차도 비위가 상하고 역겨웠던 것이다. 나는 그 아이의 부모 혹은 선생님이 된 것처럼 어떤 행동은 해도 되고 어떤 행동은 하면 안 되는지를 옆에서 열심히 가르쳤다. 친구는 용돈이 넉넉한 편이라 우리는 학교 끝나고 집에 오는 길에 과자나 떡볶이를 사 먹곤 했다.
당연히, 반 아이들은 그 친구를 혐오했고, 그만큼 나를 싫어했다. 내가 가난하니 그 친구의 돈 때문에, 뭐라도 얻어먹으려고 붙어 다닌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착한 행동을 하는 사람을 보면 사람들은 불편감을 느끼고 어떻게든 비난과 분노를 쏟아낸다는 사실을 알기에는 내가 너무 어렸다. 그동안 읽은 이야기책 안에서 착한 행동은 항상 보상을 받았으니까.
내가 정말 먹을 것 얻어먹고 싶어서 그 아이와 붙어 다녔을까? 실제로 그 집에 드나들며 맛있는 간식을 얻어먹거나, 내 형편으로 살 수 없는 과자를 그 친구 돈으로 사서 나눠먹은 것도 사실이기에 부정할 수 없었다. 만약 내가 가난하지 않았다면 모두가 혐오하는 장애인 친구를 친구로 두었을까? 이건 내가 가난한 아이였기 때문에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만약 내가 가난하지 않았다면 돈 때문이라는 오해를 안 받을 수 있었을까? 아마 그랬을 것이다. 가난하지도 않은 애가 장애인 친구랑 논다면 순수하게 착하다는 말을 들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충격적인 것이다. 가난한 사람이 선행을 하면 의심을 사고, 부자가 선행하면 착한 사람이 된다. 석가모니가 원래 왕족이고 부자였다는 사실 때문에 그의 고행을 더 위대하게 받아들이는 것처럼. 만약에 내가 부잣집 아이인데 장애인 친구와 잘 지냈다면 평가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문제는 나조차도 내가 가난해서 그런 행동을 한 건지 착해서 그런 행동을 한 건지 헷갈렸다는 것이다. 아직도 헷갈린다. 이럴 때 공격성을 제대로 갖춘 인간이라면, 장애인 친구를 향해 혐오를 숨기지 않는 아이들에게 너희가 틀렸고 내가 옳다고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친구 집에서 간식 좀 먹고, 과자 좀 얻어먹었다고 해서 그게 뭐 어떠냐고 할 것이다. 나는 친구의 생활을 도와주고 숙제도 챙겨주고 그 친구는 나에게 과자를 준 게 뭐가 욕먹을 일인지 따져볼 것이다.
그렇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다. 가난이 주는 수치감은 꽤 큰 것이어서 내가 무슨 행동을 했든, 누가 나에게 넌 가난해서 그렇다.라고 말하면 나는 한 마디도 받아치지 못하고 속이 썩었다. 인간세상의 원리다. 없는 사람끼리 돕고, 있는 사람은 그걸 비웃는 게 세상이니까.
학년이 바뀌면서 그 친구와는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나중에 크게 아파 학교를 다 못 다녔다는 것만 알고 있다. 사실은 나도 점차 버거워지고 있긴 했다. 헤어질 때쯤에는 홀가분한 마음을 느꼈던 것 같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