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쥐는 팥쥐를 서서히 죽인다
스스로를 지켜내는 방법을 배우지 못한 채 착한 행동을 반복하는 것은 자살행위에 가깝다. 누군가가 타인을 위해 자신을 지나치게 희생한다면, 그 사람이 어디 아프진 않은가 살펴보아야 한다. 정신적으로 아플 가능성이 크다.
애니멀 호더는 동물을 거두어 키우느라 자기 집이 개집이나 고양이 우리가 되어도 좋다고 생각한다. 자기가 얼마나 연약한지 알고, 세상이 얼마나 공격적인지 알기 때문에 자기보다 약한 존재를 보면 그냥 지나치지를 못한다. 그게 병이 되면 오히려 거두어 키운 동물들에게도 지옥 같은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세상을 자기 기준대로 생각하다 보니 상대가 그런 호의를 원하는지 아닌지를 따져보기도 전에 '선행을 베푼다'.
결과는 참담하고 비참하다. 좋은 일 하고도 욕 얻어먹고 상처받고 버림받는다. 그런 일이 반복되어도 대체 무엇이 어디부터 잘못된 것인지 알기가 어렵다. 왜냐면, 선행이란 좋은 것이고, 어려운 사람은 도우라고 배웠고, 무엇보다도 세상에서 가장 말랑하고 약한 내가 고통을 겪을 때 아무도 관심이나 도움을 주지 않았다는 사실 때문에, 나는 기회가 된다면 어떤 식으로든 타인을 돕겠다고 철저하게 결심해 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은, 내가 힘들 때 아무도 돕지 않는 것처럼, 누군가 힘들 때 내가 돕는 걸 아무도 원하지 않는다. 각자 자기 인생을 사는 것이고, 돕는다는 것은 환상이다. 도움을 받는 것은 부담스럽고 불편한 일이기에 도움을 주고받는 관계가 일방적인 채로 한동안 지속되다 보면 양쪽 모두 서로에게 불만이 쌓이게 된다. 그럼에도 선행하고 싶고 희생하고 싶고 그로부터 만족감을 얻고 싶은 마음이 버려지질 않는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고, 훌륭한 인격이라는 소리를 듣고 싶다. 말하자면 타인의 평가에 지나치게 민감한 것이리라.
이렇게 평가에 민감한 사람이 되는 데는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나 같은 경우는 어릴 적 칭찬이 독이 된 것이다. 성격이 둥글고 말랑하고 공격성이 없을 때, 착하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나는 저항하지 않았고 대체로 순응했다. 말 잘 듣는 아이치고 숙제를 잘 안 하기는 했지만 그 대가로 맞아야 한다면 순순히 맞았다. 시스템에 적응하고, 부모님 말씀, 선생님 말씀, 목사님 말씀, 성경과 위인전과 동화책에 담긴 말씀을 모두 받아들였다. 조금 더 머리가 큰 후에는 비판적 사고를 요하는 텍스트도 순순히 받아들였다. 예를 들어 어릴 때 읽은 책에서 놀부가 나쁘고 흥부가 착하다고 하면 그걸 받아들였고, 조금 더 커서 놀부가 현실적이고 흥부가 멍청해서 자식을 많이 낳은 게 문제라고 하면 그것도 받아들였다. 비판적 사고를 스스로 한 게 아니고, 타인의 비판적 의견을 순순히 받아들인 것이다. 그래서 어릴 적 내 반항은 내 반항이 아니라, 타인의 반항을 모방한 것에 불과했다.
책을 전혀 읽지 않고, 어른들 말을 귀담아듣지도 않고, 멋대로 행동하고 그걸로 혼나면 반항하는 사람도 있다. 이런 사람의 반항은 오롯이 자기의 반항일 것이다. 연년생인 내 동생이 그랬다. 아직 말과 글을 배우기 전부터도 반항이 몸에 밴 아이였다. 엄마와 아빠는 우리에게 '세상에 너희 둘 뿐이니 싸우지 말아라'라고 했다. 우리가 싸우면 당신들이 피곤하니까 그런 거였겠지만, 형제가 여덟, 아홉씩 되는 본인들과 달리 우리는 정말 둘 뿐이었고 그때 어른들은 지금 사람들보다 우애를 중요하게 여겼으니 이런 말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게 돼 있는 것이었다.
어른들 말씀에는 순종하면 되는데, 제멋대로인 동생을 어떻게 해 볼 방법이 나에겐 없었다. 동생은 사사건건 시비를 걸어왔고, 나는 언니로서, 착한 맏딸로서 대부분은 참고 양보했지만 매번 그럴 수는 없었기에 종종 싸움이 났다. 싸우면 엄마에게 혼난다. 빗자루로 맞든 파리채로 맞든 두들겨 맞는 것이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싸운 것은 잘못이기에 -엄마가 싸우지 말라고 했으니까- 엄마가 화를 내면 나는 순순히 매를 맞고, 잘못을 빌었다.
좋게 말하면, 나는 책임지는 일에 익숙한 아이였다. 되도록 착하게 살되, 착하지 않은 것에 대해 혼나야 한다면 기꺼이 혼난다. 그것이 내 행동에 대한 책임이니까. 이렇게 나는 이중, 삼중으로 착함을 실천했다.
그러나 동생은 가만있지 않았다. 먼저 시비를 건 것도 본인이고, 언니에게 악을 쓰며 달려들고 제 분에 못 이기면 팔과 다리를 깨물고 머리채를 잡아 뜯은 것도 본인이면서 엄마가 매를 들고 달려오면 순순히 맞지 않고 대들다가 매를 벌었다. 당연히 엄마는 나보다 동생을 더 많이 때렸다. 그러면 동생은 자기가 반항해서 맞는다는 생각을 못하고 왜 공평하게 하지 않냐며 더 바락바락 소리를 질렀다. 어린아이들을 때리는 엄마가 기분이 좋았을 리 없다. 엄마가 속상해하면 나는 진심으로 반성했고, 동생은 씩씩거리며 억울해했다.
목이나 관자놀이에 핏대를 세우고 눈이 시뻘게지도록 울면서 까무러칠 정도로 분노에 휩싸이는 동생의 모습을 보면 덜컥 겁이 나기도 했다. 엄마와 동생은 똑같이 다혈질이어서 그 전투는 치열하고 격렬했다. 나와 동생의 싸움은 언제나 엄마와 동생의 기싸움으로 이어졌고, 나는 양쪽에서 쏘아대는 기에 눌려 쪼그라들었다. 엄마가 속상한 것이나 동생이 실신할 만큼 흥분해서 악을 쓰는 상황이 다 나 때문인 것 같아서, 또 반성은 내 몫이었다. 다음부터는 더 양보해야지.라고 결심하곤 했던 것이다.
내가 보기에 동생은 책임감이 부족한 아이였다. 자기가 원하는 건 무엇이든 해야 하고, 자기 걸 다 먹고 나면 내 그릇에 손을 뻗치는 게 당연했다. 그게 마음대로 되지 않으면 울고 떼를 쓰다가 두드려 맞고 울며 잠들었다. 동생은 마음에 억울함을 키우면서 자랐다.
나는 동생이 이해되지 않았다. 왜 이렇게 인생을 힘들게 사는 걸까? 사람들은 동생과 비교하여 나를 칭찬했고, 나는 그걸 당연하게 생각했다. 동생은 자기가 태생적으로 나쁜 아이라고 생각하며 자랐는데, 왜냐면 절대 이길 수 없이 착한 언니가 있었기 때문이다. 동생은 착한 언니를 마음껏 미워하지도 못하면서 한 편으로는 미워 죽겠는 상태로 컸던 것 같다. 나에 대한 동생의 양가감정을 이해하게 된 것은 서른이 훨씬 넘어 우리 둘 다 아이 엄마가 된 이후였다.
신데렐라나 콩쥐와 함께 사는 사람은 그게 누구든 못된 사람으로 취급받게 된다. 그저 자기 욕구에 충실하고, 거친 세상에서 자기를 지킬 힘을 키우고 있는 것뿐인데도, 언니가 콩쥐라서 자기는 팥쥐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동생은 사람들이 자기를 그렇게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스스로를 못된 아이라고 생각하며 자랐다. 그러니 내가 미웠을 것이다. 그러나 착한 언니를 미워할수록 본인이 더 못된 사람이 되기 때문에, 또 언니를 진심으로 좋아했을 것이다. 늘 양보하고, 배려하고, 챙겨주는 언니가 그렇게 미울 수는 없으니까.
반대로 나는 내가 착하다는 걸 당연하게 여기며 살았다. 착해서 나쁠 건 없었다. 우선 조금 참고 양보하면 당장 평화로웠다. 누군가 악을 쓰며 핏대 세우는 걸 보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조금 더 착하면, 다 괜찮은 것이다. 나는 싸움을 회피하고, 되도록 참고 견디는 쪽으로 행동을 발달시켰다. 누군가 뭐가 불편하다고 조금만 불평하면 얼른 그것을 해결해 주어 앞으로 일어날지도 문제를 방지하려고 하는 이상행동이 자리 잡았다. 성격이 더러운 사람이 곁에 있으면, 다혈질이거나 반항적이거나 제멋대로인 사람이 주변에 있으면, 나는 훨씬 더 예민해졌다. 그들의 기분을 맞추고, 문제해결사로 나서고, 나를 희생했던 것이다.
과거형으로 썼지만, 과거의 일만은 아니다. 요즘에서야 나에게 이런 문제가 있다는 걸 깨닫고 있는 중이다. 내 문제는 현재진행형이고, 나는 이게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이런 성격 때문에 그동안 얼마나 많은 고난을 겪은 것인지 하나하나 따져 올라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