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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회중년생 홍대리 Sep 20. 2021

불행한 1등보다 행복한 꼴찌가 좋아!

공부가 싫은 아이

수학 점수 20점. 

성호의 중학교 2학년 성적표를 떠올리면 지금도 가슴 한구석이 답답하다. 공부 안 했냐고 물으니 게임하느라 시간이 모자라 책도 문제집도 못 풀었다고 스스럼없이 말하던 성호. 중학교에 진학해서도 성호는 여전히 게임에 빠져 있었다. 초등학교 5학년부터 배우기 시작한 힙합 춤도 열심히 계속하고, 취미 생활로 그림도 열심히 그렸지만, 그렇다고 게임의 늪에서 빠져나온 것은 결코 아니었다. 게임하는 시간이 줄어들기는 했지만 여전히 성호의 일상은 게임이 주主였고, 춤과 그림은 부副, 공부는 찬밥도 아닌 쉰밥 신세였다.


성호가 수학 점수 20점을 받아온 날, 나는 성호를 다그치기보다는 다시 ‘믿음 신공’을 발휘했다.


“한 번도 공부 안 하고 수학 20점이나 받았다고? 우와, 너 천재인가 보다. 그러면 책 한 번만 보면 30점 나오겠네?”

“에이, 30점은 좀 그렇고 40점 정도 나오지 않을까?(이 놀라운 녀석!)”

“그러면 우리 아들 다음번에는 수학 책 한 번만 공부하면 안 될까?”

“음, 나도 그럴 생각이야. 이번에 우리 반에서 내가 꼴찌더라고. 자존심이 있지.”


꼴찌라고? 공부에 취미 없던 엄마도 못 해본, 학창 시절 공부 좀(?) 했던 아빠는 꿈도 못 꿔본 꼴찌를 금쪽같은 아들이 마침내 해내다니 진정 우리 집 역사의 한 페이지가 새로 채워지는 날이었다! 나는 찔끔 나오려는 눈물을 참고 성호 친구인 준석이의 성적을 넌지시 물었다.

“준석이는 이번에 몇 등 했대?”

우리가 살던 아파트 옆 동에는 늘 상위권을 놓치지 않는 준석이라는 친구가 살고 있었다. 공부 잘하는 친구를 보면서 성호가 조금이라도 분발했으면 하는 부모 속내를 조금이라도 알아줬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기대와 달리 성호는 별일 아니라는 듯 말했다.


“짜식, 이번에는 1등 먹었어.”

“성호는 준석이 부럽지 않아? 엄마는 솔직히 부러운데…….”

그러자 성호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하나도 안 부러워. 준석이네 집에 검도할 때 휘두르는 죽도 있는데 문제 하나씩 틀릴 때마다 아빠한테 한 대씩 맞는대. 준석이 아빠는 자기가 전교 1등 했다고 준석이도 무조건 1등 해야 한다고 그런데. 엄마는 그 말이 맞는 것 같아?”


끔찍한 듯 몸을 떠는 성호를 보며 또래보다 굉장히 어둡게 느껴지던 준석이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제야 툭하면 우리 집에 놀러 와 자기 집보다 편하다고 말하던 준석이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나는 성호를 바라보았다. 꼴찌를 한 얼굴이 어쩌면 저리 행복해 보일 수 있을까? 1등을 한 준석이, 그리고 꼴등을 한 성호…… 과연 누가 더 행복할까?


“준석이 이번에 1등이라면서요? 축하해요.”

며칠 뒤, 준석이 엄마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나는 성호 성적을 스스럼없이 꺼냈다. 준석이 엄마는 성호가 꼴찌를 했다는 말에 충격을 받은 눈치였다.

“보기에 좀 그렇죠?”

“아, 아니에요. 그, 그럴 수도 있죠.(그런데 목소리는 왜 그리 떨리누?)”

“싫은 애한테 백날 공부하라고 떠들어봤자 씨알이나 먹히겠어요? 저는 성호가 하고 싶은 걸 찾을 때까지 기다려주고 싶어요.”

“그래도 마냥 풀어놓으면 놀려고만 하는 게 아이들인데, 부모가 조금이라도 통제를 해야 하지 않을까요?”

준석이 엄마가 반문했다. 어디 준석이 엄마뿐이겠는가? 성호의 담임선생님까지 내게 심각하게 물은 적이 있었다.

“어머님, 성호 너무 늦추는 거 아닌지 걱정입니다. 이러다가는 인문계 고등학교도 못 갈 텐데…….”


선생님의 걱정처럼 계속 공부에 소홀하다가는 인문계 고등학교도 못 갈 실력이기는 했다. 그러나 당시 나는 성호가 학교생활에 끝내 적응 못하면 고등학교는 대안학교에 보낼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학구열이 높은 학교에 진학하면 공부할 가능성이 높은 것은 맞다. 서울 강남 아이들이 괜히 명문대에 많이 가겠는가? 하지만 역시 100퍼센트 정답은 아니다. 강남에서 성공한 많은 아이들 뒤에는 그렇지 못 한 아이들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간과한다. 나는 무엇보다 성호가 학교생활을 즐기기를 바랐다. 무엇보다 아이가 스스로 간절히 원하는 꿈을 찾을 때까지 참고 또 참고 기다렸다. 아이가 꿈을 정하면 그 꿈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할 준비를 했다.




에모토 마사루의 세계적 베스트셀러 『물은 답을 알고 있다1, 2』는 ‘긍정적 생각’이 발휘하는 놀라운 기적에 대해 이야기한다. 특히 다양한 물 결정 사진을 통해 물이란 단순히 무기질이 아니라 생명이고 에너지의 전달체이며 의식을 갖춘 존재라는 것을 보여준다. 무기물인 물 또한 ‘사랑한다’, ‘좋아한다’는 말과 아름다운 음악에 완벽한 결정을 맺고, ‘미워한다’, ‘증오한다’는 말과 소음에 결정이 흉하게 일그러지는데, 하물며 몸의 70퍼센트가 물로 이루어진 생명체인 인간은 어떻겠는가?


나는 엄마가 아이를 최고로 키우는 첫 번째 방법은 아이에 대한 믿음이라고 생각하고 지금껏 그렇게 키우고 있다. 그 믿음이 헛되지 않아 정말 복되다. 현실이 아무리 어렵고 힘들더라도 항상 밝고 긍정적인 사고를 하도록 노력하는 것이 아이를 바르게 키우는 최고의 지름길이다.


결과론적이지만 성호는 연세대 4년 전액 장학생이 되었다. 준석이는 지방대 토목과에 입학했다. 연세대에 입학한 것은 인생 성공이고, 지방대는 인생 실패라는 뜻이 아니다. 준석이는 학과가 적성에 맞지 않아 휴학하고 서울 홍대 부근에서 자신이 원하는 음악을 공부하며 틈틈이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나는 서울에 올라오면 일부러 시간을 내 준석이를 만난다.(오랜만에 홍대 분위기도 즐기고 ^^) 준석이는 예전보다 한결 밝은 얼굴이다. 몸은 힘들어도 좋아하는 음악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어 마음은 편하다고 한다. 하지만 준석이 엄마는 요즘에도 만날 때마다 하소연한다.

“우리 부부가 아이를 잘못 키운 것 같아요. 정말 어릴 때는 똑똑한 아이였는데…….”

그분들은 아직도 준석이를 믿지 못하는 것이다. 무조건 성적 좋은 게 아이의 미래를 위해 좋은 일이라고 막연하게 믿고 그렇게 행동했을 뿐이다.

“준석이 엄마, 그렇게 생각하지 마. 준석이 보니까 얼마나 행복해 보이던데. 준석이가 자기 길을 찾은 것 같아 나는 오히려 좋아 보이더라.”

내 말에 준석이 엄마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눈가가 촉촉이 젖어든다. 아직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탓이다.


많은 아이들이 좋은 성적에 따라 좋은 학교에 가고 좋은 직장에 취업해 안정된 생활을 하기를 원한다. 나쁜 게 아니다. 그러나 내 아이가, 내 삶과도 같은 사랑하는 내 아이가, 평범한 삶을 꿈꾸는 아이가 아니라면 어쩔 것인가. 아이가 자신의 미래를 고민하고 있다면, 성적이 아닌 그 무엇을 꿈꾸고 있다면 어쩌란 말인가. 준석이 역시 공부보다 음악을 꿈꾸던 아이였다. 음악에 재능도 있었다. 준석이 부모님이 조금만 아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이에게 네가 좋아하는 것을 찾으면 행복할 수 있다고, 좋아하는 것을 찾아 열심히 뛰라고, 우리는 용기를 준 적이 있던가? 그러지 못하는 이유는 단 하나, 아이를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혹시라도 내 아이가 잘못된 길에 들어설까, 길 잃은 발걸음이 낭떠러지를 향하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이를 믿을 때, 아이는 행복할 수 있는 길을 찾아 떠날 용기를 낸다. 부모의 믿음은 아이의 용기의 원천이다. 믿어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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