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익숙한 걸음을 옮겨 마트에 들어갔다. 이사를 온 이후로 몇 개의 마트가 생겼다 없어졌지만 유일하게 처음부터 지금까지 있는 곳이었다. 우리가 이사 오기 며칠 전에 문을 열었다던 곳. 그 말에 더 애착이 가서 항상 이곳을 이용했다. 어디에 어떤 물건이 있는지 훤히 알 정도였으니까.
마트의 자동문이 열리고 잠시 걸음을 멈췄다.
“여기 언제 이렇게 바뀌었지?”
나는 조용히 혼잣말을 했다. 마트 내부의 진열장이 바뀌어 있었다. 겉은 늘 보던 그대로 똑같은 모습이었지만 내부 공간을 새롭게 변형했다. 같은 공간에 놓인 상품들이었건만 확연히 달라져 있었다. 이쪽은 덜어내고, 저쪽은 채워낸 공간이 낯설었다. 마트에 마지막으로 다녀간 건 지난주 쯤. 언제 이런 변화가 생긴 걸까.
카트를 꺼내 엄마에게 전해주고, 나는 바구니를 들었다.
“엄마는 엄마 살 것 사와요. 나는 내가 필요한 것 사올게. 계산대 앞에서 만나요.”
“알았어. 귤은?”
“몇 개만.”
“그래. 다른 건?”
“괜찮아요.”
엄마는 오른쪽으로 가고, 나는 미리 적어둔 물건을 사기 위해 왼쪽으로 갔다. 익숙하게 걸어 다니던 동선이 조금씩 변했다. 나는 바뀐 공간에 적응해야 했다. 발걸음이 어색했다.
바지 주머니에 넣어둔 메모지를 꺼냈다. 옷을 챙기면서 목록의 반이 지워진 종이는, 처음보다 헤져 있었다. 펜을 꺼내려 주머니를 뒤적였지만 손에 잡히는 건 없었다. 펜을 놓고 오다니. 평소라면 일어나지 않을 실수였다.
어쩔 수 없이 목록의 첫 번째부터 차례대로 손으로 집어가기로 했다. 먼저 칫솔을 고르고 목록에 적힌 순서대로 자리를 이동하며, 필요한 물건을 장바구니에 담았다. 목록이 지워지지 않으니 장바구니에 물건을 채워 넣으면서도 불안했다.
장바구니에 든 물건과 목록에 적힌 글씨를 비교해서 다시 살폈다. 빠트린 건 없었다. 이제 간식만 고르면 됐기에 종이는 다시 주머니 안에 넣었다. 간식 목록은 적어두지 않았으니까. 정갈하게 진열된 과자를 둘러봤다. 봉지에 담긴 과자 하나가 눈에 띄어 바구니 안에 넣었다. 또 하나의 봉지 과자를 바구니에 담았다. 두 개의 과자가 부딪치며 나는 소리가 거슬렸다. 부스럭도 아니고, 바스락도 아닌 비틀리는 소리에 신경이 곤두섰다. 과자 두 개를 제자리에 올려놓고 상자에 담긴 과자 세 개를 새로 담았다. 여분의 가방에 넣을 수 있는 크기를 고려해 부피가 큰 것들은 제외했다.
반쯤 찬 바구니를 들고 계산대 방향으로 걸어갔다. 주머니 속에 넣어둔 핸드폰에서 진동이 울렸다.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5시 출발 맞지?’
희정이가 보낸 메시지였다.
메시지를 확인하느라 숙였던 고개를 들어 계산대를 봤다. 계산대는 3개. 각 계산대에는 두세 명 정도의 사람이 줄을 서 있었다. 길어야 10분 정도만 기다리면 될 것 같았다.
지금 시각은 오후 2시 42분. 서경 터미널까지 걸리는 시간을 대략 계산해봤다. 마트에서 지하철역까지 걸어가는 데는 10분. 한 번의 환승을 포함해 지하철에서 서경 터미널 역까지는 1시간 10분. 터미널에서 길을 찾는데 걸리는 시간은 10분. 여유시간 10분까지 더하면 영릉행 버스를 타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1시간 50분 정도였다. 시간은 충분했다.
‘응. 곧 집에서 출발하려고.’
나는 답장을 보냈다.
‘알았어. 삼촌한테 연락해 뒀어. 혹시 못 만나면 전화해.’
희정이에게서 바로 답변이 왔다.
‘고마워.’
희정이에게 답신을 보내고 엄마가 오기를 기다렸다. 카트를 끄는 엄마의 모습이 보이자 나는 계산대의 줄을 살폈다. 1번 계산대에는 세 사람이 서 있다. 2번 계산대에는 한 사람이 서 있지만 구매하는 물건의 양이 상당했다. 3번 계산대는 두 사람. 이쪽 줄이 제일 먼저 줄어들 것 같았다. 나는 3번 계산대의 줄에 서며 엄마에게 손을 들어 보였다. 엄마도 손을 흔들어 대답했다.
“오늘은 내가 살게요. 점심 맛있게 먹은 보답.”
내가 바구니를 카트 위에 걸쳐 놓으며 말했다.
“그럼 고맙지.”
민낯인 엄마의 얼굴에 막 세수하고 나왔을 때의 생기가 담겨 있었다. 나는 씩, 하고 웃어보였다.
카트 소리가 요란하게 울리더니, 우리 뒤로 50대 후반 정도 돼 보이는 아주머니가 줄을 섰다. 카트가 덜컹이며 내는 철골 자재의 부딪치는 소리가, 아까의 과자 봉지 소리만큼이나 소름끼쳤다. 나는 괜히 팔을 두어 번 두드렸다. 그 감각을 털어내고 싶었다.
아주머니는 우리 카트 뒤에 카트를 세우고서 나를 한 번 흘깃 봤다. 그 한 번의 흘깃댐에 눈이 마주친 나는 조금 어색하게 눈동자를 돌려 시선을 피했다. 아주머니는 이번에는 대놓고 내 얼굴을 바라보더니 불쑥 말을 건네 왔다.
“아니, 딸이 예쁜데 얼굴에 꽃이 펴서 어째?”
엄마에게 하는 말이었을까. 내게 하는 말이었을까. 엄마와 나, 모두에게 한 말이겠지.
아주머니의 목소리는 컸다. 계산을 하러 온 사람들의 시선이 목소리의 근원지를 따라, 아주머니를 한 번 보고, 엄마와 나를 번갈아 훑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엄마 옆으로 바짝 다가섰다. 내 나이가 몇인데. 나는 잠시 내 나이를 잊었었나.
3번 계산대의 줄이 더디게 줄고 있는 것 같았다. 분명 가장 빨리 줄어들 줄이었는데. 우리 앞 차례의 아주머니는 물건을 많이 사지도 않았다. 근데 왜 이렇게 계산이 오래 걸리는 걸까. 바코드가 찍히는 소리가 느렸다. 삑, 삑 찍혀야 할 바코드가 삐익, 한 박자 쉬고 다시 삐익, 찍히고 있는 것 같았다. 그에 반해 뒤에 선 아주머니의 말은 속사포처럼 빠르게 내뱉어지고 있었다.
“원래 가끔 그런 사람들이 있더라고. 내 조카 한 명도 얼굴에 꽃이 폈었는데 어찌나 보기가 흉하던지. 지금은 멀끔하게 나았는데 그때는 못 보겠더라고요. 내가 가슴이 아파서. 한창 예쁠 나이인데 얼마나 안쓰럽던지. 젊고 예뻐도 피부에 그렇게 꽃이 피면 안 예뻐 보이잖아요. 지켜보는 사람보다 본인이 더 힘들기는 하겠지만. 내 동생도, 그러니까 그 애 엄마 말이에요. 마음고생을 얼마나 심하게 했다고. 쯧쯧. 한창 예쁠 나이에. 그래도 언젠가 사라지니까 너무 마음 졸이지 말아요. 아가씨도, 엄마도.”
엄마는 한 두 번씩 고개를 끄덕였지만 예의상 보인 행동이었다. 나는 오른쪽 뺨이 화끈거리는 걸 느꼈다. 우리 차례가 돌아오고, 나는 서둘러 계산대에 물건을 올려두었다.
아주머니는 우리가 계산을 하는 동안에도 쉴 새 없이 떠들어댔다. 아주머니의 목소리에 삐익, 하고 느리게 찍히는 바코드 소리가 추임새를 넣었다.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라며 이런 저런 방법을 말씀해주셨지만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일부러 들으려 한 것도 아니었고, 듣지 않으려 안 들은 것도 아니었다.
정신이 몽롱했다.
삐익, 삐익. 계산이 끝난 내 물건들을 가방에 빠르게 쑤셔 넣었다. 엄마가 산 물건들은 계란을 빼고는 전부 배달용 상자에 넣었다. 나는 계산되어 나온 물건을 담는 기계적인 동작만 반복했다. 아주머니의 목소리가 뿌연 배경음악으로 흐르고, 내게는 바코드가 더디게 찍히며 삐익, 하는 소리만 뚜렷하게 들렸다.
아주머니의 말씀은 귀를 통해 흘러들었다. 뿌옇게 흘러든 그 말들이 내게 머물렀던가, 뱉어졌던가. 모르겠다. 다만 나처럼 얼굴에 꽃이 핀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는 것. 그것은 확실했으나, 그뿐이었다.
“신경 쓰여?”
마트를 나서며 엄마가 물었다.
“아니. 별로.”
나의 대답이었다.
내 안에서부터 몽롱한 어지러움이 차오르고 있었지만 적어도 겉으로는 멀쩡했다. 찬바람이 코끝에 머물렀다. 코가 시렸다. 바람 속에서 겨울 냄새가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