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릉터미널에 버스가 도착하기도 전에 사람들은 분주하게 짐을 챙겼다. 그 소리에 설핏 들었던 잠이 깼다.
터미널을 빠져나와 희정이가 일러준 장소로 향했다. 차들이 일렬로 쭉 늘어서 있는 곳. 가로등 불빛 아래서 익숙한 얼굴이 스쳤다. 희정이네 삼촌이었다. 삼촌은 나를 발견하고 손을 흔들며 반가운 인사를 건넸다. 삼촌이 영릉으로 집을 옮기시기 전에 몇 번 뵌 적이 있었다. 2년 전 쯤 마지막으로 뵀던가. 삼촌은 여전히 밝고 유쾌하셨다.
“안녕하세요. 잘 지내셨죠?”
운전석에 오른 삼촌을 따라 차에 오르며 인사를 건넸다. 나는 마스크로 가려진 입에서 나온 소리가 작게 들릴까 목소리를 더 키워서 인사했다. 예의가 아닌 걸 알지만 마스크를 벗을 수 없었다. 삼촌은 그저 웃음을 지어 보이셨다. 창밖에서 들어오는 조명 탓에 눈가에 자리한 주름이 더 짙게 보였다. 나는 삼촌의 마음과 함께 얹힌 세월의 조각이 왠지 포근했다.
삼촌이 따뜻한 음료를 건네주시고 차를 출발시켰다. 달리는 트럭 안에서 피아노 연주곡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생소한 곡이었다.
삼촌은 알고 계실지도 모르지만 운전 중에 물어볼 수는 없었다. 삼촌이 해주시는 답을 내가 알아들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내가 입 밖으로 낸 질문이 삼촌에게는 닿을 테지만 삼촌이 손짓으로 하신 대답은 내게 해석될 수 없는 암호문으로 다가올 테니. 두 사람 사이의 대화는 필담으로 이루어져야 온전했고, 그런 방식의 대화는 운전 중에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시내를 빠져나온 차는 한적한 길을 달리고 있었다. 바다 옆길을 쭉 따라 올라가는 길이었다. 바다 냄새가 닫힌 창문을 통과하지 못하고 밖에서 머물렀다. 창문이 열려 있었더라도 마스크에 가려 맡지 못했겠지만.
피아노 선율에 맞춰 발을 까닥였다. 바다 가까이에서 푸른빛 바다의 냄새를 상상했다. 공기에 섞인 짠내가 마스크 안에서 맴돌았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연주곡이 끝나고 DJ가 말을 이었다.
“푸른 달빛. 이 곡에는 안타까우면서도 아름다운 사연이 있죠. 사랑하는 연인을 갑자기 잃고, 홀로 남겨진 연인이…….”
그때 삼촌이 좌회전 깜빡이를 넣고, 핸들을 좌측으로 틀었다. 트럭을 따라 몸이 옆으로 기울었다. 포장된 좁은 길로 들어선 트럭이 부릉, 소리를 내며 언덕을 올랐다. 도로에 가로등이 드문드문 고장나있었고, 헤드라이트 빛이 어둔 길을 갈랐다. DJ의 목소리가 트럭 소리에 묻혀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스산한 겨울의 한 가운데, 주인 없이 비어있는 작업실이 트럭 불빛 안으로 들어왔다. 희정이와 함께 왔을 때는 이러지 않았던 것 같은데. 그때는 낮이었고, 지금은 밤. 그 때의 계절은 여름이었고, 지금은 겨울. 같은 공간의 느낌은 언제든 변할 수 있는 것이었다. 사람의 손길로 지어진 인공적인 것들일지언정 시간에 의해, 변하는 자연에 의해 모습을 달리하는 일. 그 자연스러움마저 낯설게 다가와 나는 마스크를 고쳐 썼다.
트럭에서 먼저 내린 삼촌이 마당에 놓인 평상을 지나쳐 걸어가셨다. 가방을 들고 따라 내린 나는 그 걸음을 좇았다. 삼촌이 기둥에 붙어 있는 스위치를 누르자 유럽 어느 거리에서 볼 법한 등이 켜졌다. 트럭 전조등의 불빛에 가려지기는 했지만.
삼촌에게 열쇠를 건네받았다. 나는 감사하다는 수화를 전했다. 손에 익지 않은 수화를 오랜만에 하려니 어색했다. 삼촌은 눈가의 주름을 한껏 접어보이고 트럭에 올랐다. 시동이 걸린 채 멈춰있던 트럭이 드릉, 소리를 내고 출발했다.
내게도 저런 웃음이 있었나. 삼촌을 배웅하며 생각했다. 왠지 웃음을 잃어버린 기분이었다.
마당을 환하게 밝혔던 트럭 불빛이 사라졌다. 강한 불빛이 사라진 작업실 마당에 희정이가 설치해둔 정원등의 불빛이 옅게 퍼지고 있었다. 허리께쯤 오는 높이의 정원등이 사물들을 흐리게 비췄다. 어렴풋한 불빛에 길을 더듬으며 걸었다. 아무래도 밝기보다는 분위기를 낼 목적의 정원등인가 보다, 하고 생각했다.
멀리서 들려오던 희미한 트럭의 소리마저 지워졌다. 작업실 주변은 적막했다. 풀벌레 한 마리 울지 않았고, 개 한 마리조차 짖지 않았다. 고요함. 나는 마스크를 내렸다. 눈을 감고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엷은 바다 냄새를 맡았다. 폐 깊은 안쪽까지 찬 공기를 들이마셨다. 코끝이 점점 얼얼해지고 있었다.
쪽마루에 두었던 가방을 들고 열쇠를 바로 쥐었다. 달칵, 하고 자물쇠가 열리는 소리가 났다. 쇠와 쇠가 맞물려 돌아갈 때의 감각. 오랜만이었다. 삑삑 눌러대는 전자음이 아닌 쇠붙이끼리의 마찰. 금속의 차가움. 문을 여니 비어있던 공간의 냉기가 얼굴을 확 덮쳐왔다. 얼굴에 닿은 냉기에 붉게 핀 꽃의 열기가 도드라졌다.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열감을 느꼈던 적이 있었나, 하며 마스크를 벗어내 외투 주머니에 넣었다.
작업실 안의 불을 켜고, 희정이가 일러준 대로 보일러를 틀었다. 시린 발을 웅크려가며 주방 겸 거실 한 칸, 방 한 칸, 화장실 한 칸으로 이루어진 작업실을 살펴봤다.
지난번에 왔을 때와 실내 인테리어가 많이 달라져 있었다. 이것저것 많이 놓여 있던 잡동사니들이 전부 사라지고 꼭 필요한 몇 가지 물건들만 남아 있었다. 그때보다 훨씬 정돈된 분위기였다. 창마다 암막커튼이 드리워져 있었다. 아침이 되도 빛 한 줄기 들어오지 않을 것 같았다. 손가락으로 커튼을 살짝 젖혀 밖을 내다봤지만 깜깜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커튼의 끝과 끝을 다시 잘 맞물려 놓았다.
점점 따뜻해지는 집 안에서 희정이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잘 도착했어. 며칠간 감사히 머물게.’
‘그래. 며칠 푹 쉬어.’
금세 희정이의 답장이 도착했다. 곧바로 엄마에게도 메시지를 남겼다.
‘조금 전에 도착했어요. 잘 쉬다가 갈게. 출발하는 날 연락할게요. 걱정하지 말고 계세요.’
핸드폰을 옆에 두고, 방 한 켠에 놓여 있던 이불을 펼쳤다. 가방 안에서 귤을 꺼내 주방으로 가서 냉장고에 넣어두며, 2L짜리 물 두 병과 맥주 다섯 캔, 청포도맛 음료가 들어있는 걸 확인하고 찬장을 열었다. 희정이가 미리 사다둔 음식들로 찬장 안이 가득 차있었다. 아무래도 나 혼자 며칠 동안 먹을 양은 아니었다. 내겐 늘 고마운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