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눈물로 엉망이 된 얼굴을 정돈하려 손으로 얼굴 이곳저곳을 닦아냈다. 문득 손에 닿는 낯선 촉감에 손길을 멈췄다. 아주 오래 전에 알던 익숙한 느낌이었다. 당연한 것을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언젠가의 낯익은 감촉.
피부에 닿아있는 손을 살며시 움직였다. 오른쪽 뺨이 더 이상 뜨겁지 않았다. 몸이 차츰 따뜻해지고 있었다. 얼굴 한 면을 가득 채우고 있던 열기가 혈관을 타고 온몸으로 퍼졌다.
나는 나다.
나는 나로 나다.
나는 나대로 나다.
나는 나로 다다.
눈을 감았다. 햇빛에 내포된 여러 빛깔이 아른거렸다. 우주의 근본적인 움직임이 수많은 빛으로 혹은 수많은 색채들로 발현되어 춤을 추고 있는 것만 같았다. 어둡고 밝은 움직임이 섞여 파도가 일렁이는 모습과 닮아 있었다.
인간이 지닌 삶의 굴레. 어쩌면 계속 반복될 아픔과 상심들. 우리가 찾아 헤매는 건 나 자신과 삶의 의미가 아닐까. 내가 그렇게 그리워하던 누군가는 나 자신이 아니었을까.
폭풍처럼 몰아친 며칠의 시간동안, 인생의 의미를 깨달았다거나, 거창한 무언가가 되겠다는 다짐을 한 건 아니다.
다만 나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만났다.
앞으로도 흔들림은 계속될 테고, 어긋난 틈으로 많은 비틀림이 몰려올 것이다. 그럼에도 비틀림만 몰려오지는 않겠지. 나 자신과의 만남. 아직 삶의 의미는 모르겠지만 이 삶을 살아내 보는 것. 나는 간절했다. 삶에서 멀어지지 않기 위해.
잘 버텨냈던, 잘 버텨내지 못했던, 버텨낸 나에게 감사를 보냈다. 잘 버텨냈던, 잘 버텨내지 못했던, 버티도록 도와준 주변 사람들에게도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숨을 깊게 들이 쉬었고, 다시 깊은 숨을 토해냈다. 하얀 생명이 길게 늘어지며 흩어졌다. 흩어지는 것이 두렵지 않았다. 어차피 끝은 있는 것이고, 나라는 존재는 언젠가 사라지게 되는 것. 유한한 그 안에서 나는 나를 살아내야 한다. 무섭지 않았다. 나는 나를 살아낼 나를 만났으니까.
여전히 삶의 의미는 불명확하고, 내 남은 생들은 불확실하다. 급하게 찾아 헤맨 삶의 의미. 헛헛하거나 허무하지 않기 위해. 왜 살아야하는지 그 이유를 찾기 위해. 많은 일들에 의미를 부여하는 건 나일 테니, 의미 있는 일들을 의미 있어 하길. 어제보다 좀 더 나이 들었고, 내일보다 아직 어린 나는, 오늘을 살아보려고 한다.
손에 쥐고 있던 마스크를 주머니에 구겨 넣었다. 감았던 눈을 천천히 뜨고 걸어온 길을 돌아서 발걸음을 옮겼다. 나를 낯설게 하는 모든 것 위를 내 발걸음으로 거닌다. 그저 나의 모습으로.
바다는 여전히 고요했다.
고요한 그대로.
나는 더 이상 바다의 고요함이 두렵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