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촌 숙경이는 딸 부잣집 막내 작은아버지의 셋째 딸로, 나보다 한 살 더 많았지만 같은 학년이어서 친구처럼 쌍둥이처럼 더 각별하게 지냈다.
나처럼 키가 작고 생김새도 비슷해 공통점이 많았고 노는 수준도 고만고만해 죽이 참 잘 맞았다.
특히 방학 내내 우리 집에 죽치고 살았던 사촌 중에 사촌이었으니 숙경이와의 추억은 차고도 넘친다.
여자애들이 할 만한 놀이는 다 하고도 남자애들이 하는 짓까지 흉내 내며 천방지축 놀았던 나는 숙경이와의 만남을 매번 기다리고 기대했다.
"숙경아~ 언제 오냐?~ 이번엔 뭐 하면서 놀까?"
숙경이는 글씨도 예쁘게 쓰고 영특해서 공부를 곧잘 했고, 눈치가 빠르고 센스가 넘쳐 어디에서든 빛이 났다.
친척 어른들이나 우리 언니들에게 칭찬을 도맡아 받았고 종종 감탄을 불러일으키는 말과 행동을 해서 주변사람들의 인기까지 독차지했다.
"숙경이는 못하는 것이 없네. 참 실해~,애고 막둥아, 너도 숙경이 반만이라도 좀 따라가 봐라"
그럴 때마다 엄마는 나와 숙경이를 비교하며 내 많지 않은 자존심을 건드리셨다.
나는 그 소리가 죽기보다 싫었지만 딱히 반박할 건더기가 없어 매번 참고 또 참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 별것도 아닌 일에 숙경이에게 말도 안 되게 폭발해 버려 영문도 모르는 숙경이를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자전거도 함께 배우면 나는 지금도 못 타는 자전거를 숙경이는 너무 쉽게 타버려 사실 할 말도 없었다.
이처럼 뭐든지 나보다 잘 해내는 숙경이가 그때 나의 유일한 친구이자 라이벌이었다.
숙경이가 이사해 도시로 학교를 다니며 전해준 그녀의 도시생활은 마치 신세계 같았다.
남학생들과 어울려 롤러스케이트장까지 갔다는 얘기는 너무 부러워, 나는 마치 내 경험인양 상상의 날개를 펴며 듣는 것으로 대리만족해야 했다.
"야~ 있냐잉.. 내가 남학생이랑 oo제과점에서 빵을 먹었는데,, 엄청 맛있더라~ 기가 막혀 부러"
나는 그 애가 맛있는 빵을 먹었다는 것보다 남학생이랑 단둘이 알콩달콩 속닥거렸다는 것이 너무 부러워 미칠 것만 같았다.
그렇지만 나는 숙경이의 도시 얘기를 나보다 더 촌뜨기인 내 친구들에게 전해주는 것으로 내 허한 맘을 달랠 수밖에 없었다
그때 내 친구들도 나처럼 그녀들만의 상상의 날개를 펴며 들었으리라~
막내 작은아버지는 아버지 자식 중 유일하게 학벌 좋으시고 사회적으로 성공한 분이셨다.
인물도 훤칠하시고 고위직 공무원이어서 그 위세가 대단하고 멋져 항상 우러러보였다.
그러나 막내 작은아버지에게도 큰 고민거리가 하나 있었는데, 아들 하나 없이 내리 7명의 딸을 둔 것이었다.
막내 작은아버지는 술만 드시면 아들타령으로 작은엄마 속을 썩이셨고 그런 남편을 견뎌야 했던 작은엄마는 언제나 히스테릭하셨다.
몸이 유난히 약했던 작은엄마는 줄줄이 자식을 낳으며 어린 자식들을 혼자 키우다시피 했으니 얼마나 힘이 드셨을까?
지금도 작은엄마를 생각하면 세련된 외모에 예쁜 얼굴과 달리 항상 화내고 짜증 내고 소리 지르는 것만 떠오른다.
삶이 힘들고 자식 건사가 버거우신 작은엄마는 방학 때가 되면 그 집 딸내미들을 의레 우리 집으로 보내셨고, 무던하신 엄마는 그러려니 그 애들을 맞았다.
그래서 변변치 않는 우리 집에는 항상 친척 아이들로 복작댔고 그 덕에 난 여러 사촌들과 친가족처럼 수많은 추억과 정을 쌓을 수 있었다.
나도 가끔 작은집에 놀러 가곤 했는데, 웬만하면 그 집에 가고 싶진 않았다.
작은엄마의 귀찮은 내색이 너무 노골적이었고, 객식구를 보듬는 마음의 여유가 전혀 없어 보였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우리 주변에 유일하게 미닫이 텔레비전이 안방에 있는 집이었기에 우리는 토요일 저녁이 되면 ‘타잔’이 너무 보고 싶어 그 작은집 대문을 두드렸다.
'타잔 보러 왔어요~"
삐그덕 대문을 열며 우리를 들이셨던 작은엄마에게 우리는 한 번도 저녁밥을 얻어먹진 못했지만, 재미난 타잔을 볼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괜찮았다.
우리 때문에 그 집 식구들도 늦은 저녁을 먹어야 했으니 얼마나 귀찮았을까?
막내 작은아버지 집에는 명절 때마다 항상 과일박스 같은 선물보따리가 넘쳐났다.
추석 무렵, 작은집으로 가야 할 사과박스(진짜 사과만 있었음)가 우리 집으로 잘못 배달된 적이 한번 있었는데, 작은엄마가 한걸음에 달려오셔서 한 개도 덜어내지 않고 홀라당 찾아가 버리셨다.
"어째 이것이 이리 와버렸을까?"
이참에 달고 새콤한 아삭 사과 좀 맛볼 수 있으리라 기대했던 우리 식구들은 그만 망연자실하고 말았다.
막내 작은 아버지가 병환을 얻어 작은집이 급속도로 어려워지자 숙경이는 본인의 의지와 달리 상업고등학교에 진학했고 인문계를 간 나를 부러워하는 상황이 돼버렸다.
나는 늦공부가 트여 원하는 대학교도 무난히 가고 졸업과 동시에 취업에 성공하는 등 탄탄대로를 걸을 때, 숙경이는 일찌감치 사회에 나가 집안을 책임지는 소녀가장이 되었다.
친자매처럼 지냈던 우리도 차츰 만나는 횟수가 줄다 보니 점점 타인보다 더 어색해진 사이가 돼버렸다.
나중에 숙경이의 결혼 소식을 들었지만 나는 굳이 가보지 않았다.
결혼 후 이런저런 일을 겪으며 산다는 얘기가 들려왔지만 서로 사는 것이 다르다는 핑계로 거의 잊고 지내다시피 우린 오랫동안 연락을 주고받지 않았다.
최근 들어 집안 애경사가(어른들 장례식과 자녀들 결혼식) 생겨 어색한 조우긴 했지만 서로의 소식을 물으며 왕래하는 정도가 되었다.
"숙경아~ 잘 살았어? 그동안 어찌 지냈냐?"
숙경이는 딸 부잣집 셋째 딸로 생존해야 했던 잡초 같은 생명력과, 타고난 머리와 뛰어난 센스, 끊임없는 노력과 욕심이 그녀 삶의 원동력이 되었다.
그녀는 어려운 형편에도 자신의 힘으로 뒤늦게 대학에 진학하고, 안정된 직장에 취업까지 하면서 멋진 연애도 원 없이 하며 나름 최선을 다해 살았다.
이처럼 숙경이는 자기 삶에 대한 애착과 의지가 정말 강했다.
나는 숙경이를 보면, 어쩌면 그녀는 진정한 인생의 위너가 아닐까 생각될 때가 있다.
지금도 숙경이는 유능한 전문가로 자신의 일을 당당히 해내면서, 자식을 명문대 출신 법조인으로 키워낸 슈퍼여사가 되어 그 어느 때보다 세련되고 멋진 모습으로 내 앞에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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