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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랑한 마시멜로우 Dec 12. 2023

큰엄마와 철이 오빠


아버지 가족은 6남 2녀로, 첫째부터 여섯째까지는 내리 남자형제분이고 밑으로 두 명은 여자분이시다.

남자형제들은 다 돌아가셨고 현재 생존해 계신 분은 고모 두 분뿐이다.

우리는 외가 쪽과 거의 왕래가 없는 대신 친가 쪽과 가까이 살며 참 친하게 지냈다.   

 

큰 큰아버지는 6.25 때 행방불명되셔서 항간에는 월북되었다는 말도 있고 감옥에서 옥사하셨다는 말도 있었는데, 아무튼 젊은 나이에 요절하셔서 우리와의 왕래가 일찌감치 끝나버렸다.


큰아버지는 젊었을 때 큰 사업을 하시다 망하셔서 화병으로 돌아가시고 홀로 남은 큰엄마는 어린 자식들을 키우며 우리와 더 각별하게 지냈다.


큰엄마는 나를 참 예뻐하셨다.

나만 보면 껴안고 볼을 비벼주셨는데 나도 그런 큰엄마를 할머니처럼 따르고 좋아했다.     

 

"오매 내 새끼~ 잘 있었는가?"    


"큰엄마~~ 나 잘 있었어"   


나는 큰엄마 품에 안길 때마다 좋기는 했지만 나도 모르게 얼굴을 찡그리며 엉덩이를 뒤로 빼는 시늉을 했다.

큰엄마에게는 항상 찐한 담배 냄새가 배어 나왔기 때문이다.

큰엄마는 속상한 일이 있거나 깊게 생각할 일이 있을 때 부엌 귀퉁이에 홀로 쪼그려 앉아 담배를 태우시곤 했다.

나는 그런 큰엄마가 전혀 이상하거나 낯설지가 않았다.

나이 든 여자들은 다 그렇게 담배를 많이 피운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큰엄마가 사는 곳은 시골 중에 시골인 깡시골이었는데, 마치 조선시대에 나오는  집처럼 너무 오래되고 낡아 나는 그곳에 갈 때마다 적응하기 힘들었다.

방안은 어두컴컴 눅눅한 냄새가 깊게 배어 음침한 분위기로 가득했고, 집 밖에는 개 짖는 소리부터 알 수 없는 들짐승 소리까지 들려와 섬찟하기까지 했다.

나는 큰집에만 가면 다시 우리 집에 가겠다고 울고 불고 난리를 쳐 매번 큰엄마를 난처하게 만들었다.

밤이 되면 희미한 호롱불 하나 켜놓고 어둠을 견뎌야 했으니 얼마나 낯설고 막막했겠는가?  

   

"나 집에 갈거여~ 잉잉~, 무섭단 말이여~~ 엄마~~ 잉잉~~"    


큰엄마 집에 가려면 교통편이 마땅찮아 산을 넘고 넘어야 했다.

하지만 산을 넘어가다 보면 제법 쏠쏠한 재미와 수확거리는 생겼다.

산길 곳곳에 산딸기 같은 여러 식용 열매가 주렁주렁 열려 있어 심심한 입이 달랠 수 있었고, 이름 모를 야생화며 생명체들이 넘쳐나 도리도리 구경하느라 힘든지 모르고 산을 넘어갔다.     

나는 종종 큰집의 외아들인 철이 오빠와 그 산을 넘곤 했다.    


"오빠야~ 여기 딸기 많아야... 딸기 따줘~"     


한 번은 철이 오빠와 산을 타다 내 신발 밑창이 떨어져 나가 버렸는, 오빠가 질기고 긴 뿌리를 뽑아 내 발과 신발을 돌돌 말아 짚신처럼 만들어 주기도 했다.  

   

"막둥아~ 오빠가 업어주까?"

"괜찮해~ 나 혼자 갈수 있어"     


형편이 넉넉지 않았던 큰엄마 집에 도착하면 유일하게 내어 놓은 간식거리라고는 고구마 일색인 군고구마, 찐 고구마, 생고구마가 다였지만, 아쉬운 데로 그것으로 출출한 배는 채워졌다.

그러나 무엇보다 인상 깊게 남아 있는 풍경 중의 하나는 큰엄마 집 돌담 주위로 졸졸 흐르고 있는 시냇물이었다.

그곳은 한 여름에도 물이 어찌나 차갑고 세차게 흘려 손을 담그기만 해도 진저리가 쳐졌다.

그곳에서 철이 오빠랑 세수도 하고 물장구도 치며 세상모르게 놀다 보면 동네아줌마들도 빨랫감을 싸들고 와 방망이를 두들기곤 했는데 그 광경은 마치 전원일기의 한 장면처럼 아련했다.


철이 오빠가 우리 집 근처 농업중학교에 입학해서 우리와 한집에 살게 된 적이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좁고 옹색스런 우리 집 형편에 군식구까지 맡기에는 여의치 않았지만 큰엄마도 울 엄마도 뾰족한 방도가 없어 그렇게 된 것이다.


그때 내가 어찌나 철이 오빠를 구박했는지 모른다.

오빠는 어릴 적, 큰엄마 일손을 돕는다며 여물작두 작업을 하다 오른쪽 엄지가 잘리는 사고를 당했다.

나는 그런 오빠의 오른쪽 엄지를 보고 틈만 나면 놀려대었다.

뭉툭하게 오므려져 있는 그 엄지는 내 눈에 참 괴이하고 징그러워 보였다.


"오빠 니는 왜 손가락이 네 개밖에 없냐? 오매 징그러운 그~~"


오빠도 질세라 나를 찝쩍찝쩍 놀려대곤 했는데 난 그럴 때마다 너무나 부와가 치밀어    


“야~ 니네집 가!” 악다구니를 쓰며 엄마에게 일러바쳤다.


내가 눈을 부라리며 주먹사래를 치면 엄마 눈치를 보며 조용히 방으로 들어가 버리곤 했던 철이 오빠는 결혼 후 마음에 병을 얻어 지금 유명을 달리했다.     


"철이 오빠~ 그때는 미안했어... 그곳에서는 마음 아픈 일 없이 잘 지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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