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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어릴 적 별명은 600원짜리

by 말랑한 마시멜로우
사진 : 다음 이미지


난 어릴 적 이유도 뜻도 모르는 ‘600원짜리’라는 별명을 달고 살았다.

아버지도 엄마도, 언니 오빠들도 나만 보면 “600원짜리야~ 600원짜리야~” 부르며 킥킥 대었다.

나는 처음엔 고것이 내 이름인 줄 알고 날름날름 잘도 대답했다.

하지만 어느 때부턴가 그 말이 이상하게 놀리는 것처럼 들려 '픽~' 토라지는 시늉으로 울먹거렸다.


"그렇게 부르지 마잉. 히힝. 내 이름 아니여~"


한참 후에야 난 그 별명 속에 내 출생의 비밀이 숨어 있음을 알았다.

아들 둘, 딸 둘로 자식 마감을 지으려던 우리 집안에 예상치 못한 다섯째가 덥석 찾아왔다.

넉넉지 못한 형편에 자식 하나 더 둔다는 것에 부담을 느끼신 부모님이 날 포기하기로 합의를 본 후 낙태비용이 필요했는데, 당시 낙태가가 대충 600원이었단다.

형편상 600원도 없던 엄마는 동네 이곳저곳 빌리러 다니셨는데 도저히(다행히도?) 그 돈을 구하지 못하셨다.

우리 집 신용이 낮은 것인지, 동네가 가난한 탓인지, 내가 태어날 운명이었는지, 아무튼 600원을 구하지 못한 엄마는 아버지에게 하소연을 하셨고, 아버지 왈~


“까짓꺼, 그냥 낳아 부세~~” 그 한마디로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났다.

생각해 보니, 나를 있게 만드셨고 나를 포기하지 않으셨고 내가 태어날 때 탯줄도 손수 자르며 산파 노릇까지 다 하셨던 울 아버지, 참 재주도 많고 고마우신 양반이다.

그리하여 난 어릴 적 예쁜 짓을 할 때도, 미운 짓을 할 때도


“아이고 저 ~ 600원짜리가 ~~”라는 말을 수도 없이 들어야 했고, 어쩌겠는가? 반은 체념하듯 받아들이고 살았다.


출생의 비밀을 알고 난 후부터는 내 생명의 은인인 동네 사람들에게 고마운 마음까지 생겨났다.

그래서인지, 동네어른들께 그리 인사도 잘하고 곱살스럽게 굴었다 한다.

믿거나 말거나 하는 얘기다.

어떻게 태어났든 그게 뭐 대수겠는가?

이렇게 태어난 자식들이 더 효도한다는 옛말도 있지 않은가?

나처럼 600원짜리 운명으로 태어난 사람이 어디 한둘이었겠는가? (그때만 해도...)

그런저런 위로의 말로 나 지금껏 당당히 살아가고 있다.


600원짜리로 태어난 그 다섯째 막둥이가 10년간 집안 경제를 책임졌고, 우리 집 중매결혼 흑역사를 깨고 당당히 연애로 결혼에 골인하고, 지금까지 친정계모임 총무로 분위기 담당 종횡무진 활약하고 있으니 이 세상에 존재할 충분한 자격이 있지 않겠는가?

살아생전 울 엄니도


“내가 널 안 낳았으면 어쩔 뻔했냐? ” 진심 다행으로 여기셨다.


내가 봐도 난 쫌 우리 집 '복덩어리'다.


*사진: 다음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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