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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랑한 마시멜로우 Feb 27. 2024

4번의 헤어짐, 그리고 떡례(1)

결혼과 회사생활을 동시에 해내야 하는 내 삶은 생각보다 크게 과부하가 걸렸다.

새신부로서 해야 할 일들이 마땅히 있었고, 회사  또한 소홀히 할 수 없는 게 그 당시 내 처지, 입장이었다. 

여기저기 지켜 보는 눈이 많았다.     

 

생각보다 빨리 몸의 변화가 나타났다.

테스트 결과, 임신이었다.

그러나 티를 낼 틈도 없이 배가 아프고 온몸에 힘이 쭉쭉 빠져나갔다.

계류유산이었다.

너무 잠깐 머물렀다 사라져 버린 아이였기에 특별히 슬퍼할 경황도 없었다.

당연히 회사에는 아무 일 없다는 듯, 여느 날처럼 출근하고 또 일을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또 한 번 임신테스트기에 두 줄이 그어졌다.

한 번의 아픔을 겪었던 터라 이제는 조심스러웠고 한편으론 기대도 되었다.

한참 동안 내 몸에서 임신이 유지되었다.      

지인들의 축하가 계속되는 가운데 4개월째 접어들었을 때, 산부인과에서 태아의 심장이 뛰지 않는다는 진단을 받았다.

'그럴 수는 없는 일'이라며 의사 선생님 손을 붙들고 얼마나 발버둥 쳤는지 모른다.


"아니죠? 다시 한번 봐주세요~ 제발요~~"


자주 겪는 일인 듯 덤덤한  위로를 몇 번 해주던 의사 선생님에게 내 몸을 맡기어 정리 수술을 했다.

그 후유증은 정말 지독했다.

그래도 몇 달 정도 내 몸에 머물렀던 아이, 짧은 기간이었지만 사랑과 정성을 흠뻑 쏟으며 그 아이와의 미래를 꿈꿔왔는데 이제 모든 것이 텅 비어버린 듯했다. 내 뱃속도~ 내 마음도~.

온몸과 마음이 아리고 아팠다.

회사에 하루 연차를 쓰고 난 또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음날 출근 했다.


몇 달 후 또 한 번 몸의 변화가 있었지만, 이제는 맘껏 기뻐할 수 없었다.

누구에게 알릴 수도 없었다.

이 아이를 과연 내 몸에서 지켜낼 수 있을 것인가?

당연히 아무 내색도 못한 채 난 또 회사에 출근해 내 몫의 일들을 해나갔다.

몸이 말할 수 없을 만큼 힘에 부쳐 다리가 후들거렸고, 회의 시간엔 눈꺼풀이 내려앉을 만큼 잠이 쏟아졌지만 허벅지를 꼬집어 가며 그 잠을 쫓아냈다.

주책맞은 남사원들이 '밤에 너무 무리한 거 아니냐'는 성희롱적 발언이 서슴없었기에 더더욱 티를 낼 수 없었다.

문제는 아이의 심장이 과연 뛰어 주는가였다. 

또다시 4개월로 접어들었을 때, 불안과 기대를 안고 용하기로 소문난 산부인과를 물어물어 찾아갔다.

대기실에서  차례를 기다리는 그 순간이 얼마나 길고 두려웠는지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말을 말아야 한다.

이번에도 아이의 심장은 뛰지 않았다.

그리고 의사 선생님은 ‘습관성유산’이라는 그 낯설고도 가혹한 병명을 빠르게 전하며, 앞으로를 장담할 수 없을 것 같다고 거의 확정 지어 말했다.

나는 마치 사형선고를 받은 사형수처럼 머리가 멍해지며 모든 것이 무너져 내렸다.      

남들은 그렇게도 잘 낳은 아이를 나는 가질 수 없단 말인가?

그때처럼 이 세상 아이를 가진 모든 엄마들이 그렇게 부럽고 대단해 보일 수가 없었다.

오죽했으면 그때 잠시, 몸과 마음이 좀 아픈 아이라도 내게 찾아와만 준다면 얼마나 감사할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으니까.

그 후 나는 어쩔 수 없이 회사는 출근했지만 아예 밖을 나가지도, 누구를 만나지도 못했다.

아이라는 ‘아’ 자만 들어도, 유산이라는 ‘유’ 자만 들어도 화들짝 놀라 하루 종일 끙끙대며 누워있었다.

아이가 없는 삶, 절반의 실패를 안고 살아가야 할 앞으로의 내 인생이 생각만 해도 눈물만 나왔다.


그리고 마침내 결심했다.

이놈의 회사를 그만둬야겠다.

내가 그렇게도 보란 듯이 잘살고 싶었던 모습이 이런 것이란 말인가?

내 삶에서 중요한 것이 과연 무엇인가?

때마침 그이가 지방으로 발령을 받았다.

난 그 핑계를 들어 그럴듯한 ‘퇴직사유서’를 쓰고 9년 회사생활의 마침표를 찍었다.    


(4번의 헤어짐, 그리고 떡례 2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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