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 후 1년간 어떻게든 건강한 몸을 만들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했건만, 난 그 기간 동안 또 한 번의 임신과 유산을 겪어내야 했다.
이젠 아예 자포자기가 되었다.
그런 내 모습을 보고 언니들이 나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말자며 불임클리닉을 권유했다.
지방에서 도시로 매주 버스를 타고 불임클리닉에서 내 몸 상태를 체크받고 몸을 만들어 갔다.
‘아~ 결국 이런 상황까지 오게 되는구나~’
혹, 오다가다 아는 사람이라도 만날까 봐 모자를 푹 눌러쓰고 몰래 다녀가길 여러 달~.
병원에서는 특별한 원인을 발견하지 못하니 당연히 해결 방법도 찾지 못했다.
그이가 출근하고 늦은 잠을 자고 있던 어느 날, 작은 언니에게 전화가 왔다.
'몸이 괜찮냐는~' 언니가 복숭아 태몽을 꿨는데 꿈속에서 내가 보였다 한다.
실없는 소리 같아 화 먼저 내고 말았다.
그래도 혹시 몰라 테스트를 해보니 정말로 임신이었다.
어떻게 또 기뻐할 수 있겠는가? 임신은 잘 되어도 아이를 내 몸에서 지킬 수 없는 습관성유산이라는데, 정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미칠 지경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다른 때와 달리 입덧이 시작되었다.
엄마는 입덧이 있다는 것은 아이가 건재하다는 증거라며 희망을 거셨다.
또 4개월이 되었고 난 태아의 심장이 뛰는가를 확인받기 위해 내 배 위에 초음파기를 올려놓았다.
‘쿵쿵쿵 ~’
이 세상에 이렇게나 크고 아름다운 소리가 또 있을까?
난 유산을 통보받았을 때 보다 더 많은 눈물을 흘리며 그 경이로운 소리를 듣고 또 들었다.
그 아이는 내 몸에 딱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고 어떻게든 살아 보겠다고 자신의 심장소리를 그렇게나 우렁차게 우리에게 알려왔다.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암울한 내 삶에 구세주가 잉태된 것이다.
나는 10개월 동안 심한 입덧으로 거의 일상생활이 힘들 만큼 누워만 지냈다.
더더더 힘들어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리고 드디어 그 아이가 '떡례'라는 이름으로 우리 곁에 왔다.('덕례리' 마을에서 잉태되고 태어났다 해서 태명으로 지음)
2년의 기간 동안 4번의 헤어짐(유산)을 겪으며 기적처럼 우리에게 와준 그 아이와 첫 대면을 했다.
체중 2.8 kg, 신장 47cm, 두위 32.5cm, 가슴둘레 31cm의 작은 몸으로~. 아빠를 꼭 빼닮은 짝 찢어진 작은 눈과 길쭉한 두상, 불그스레한 태열끼가 온몸을 뒤덮고 있는 피부, 안으면 부서질 것 같은 너무나 쪼매만한 못난이 요정이 사뿐히 내 품에 안겨왔다.
이 요정을 우리가 어떻게 얻었고 지켜냈는지 너무나 잘 아는 사람들은 요란한 축하를 보내왔고, 우린 비로소 안심하고 그 축하를 맘껏 받았다.
그렇게 엄마 아빠의 요정이 되어 이 세상에 온 아이는, 이제 어여쁜 숙녀가 되어 이 세상에 둘도 없는 내 친구가 되었다.
나는 종종 그 아이와 인생과 사랑, 세상 살아가는 것에 대해 밤을 지새워가며 얘길 나누곤 한다.
그럴 때마다 말투나 억양, 생각 포인트가 어찌나 나와 똑같은지 매번 신기할 따름이다.
(내 브런치 글, 사전 검열자도 그 아이다)
지금 그 아이는 엄마 뒤를 이어 중학교 선생님이 되었다.
갱년기에 접어든 나는, 요즘 그 아이에게 부쩍 이것저것 요구도 많이 하고 심지어 어린양에 투정, 앙탈까지 부리곤 한다.
그러면 그 아이는
"뭐야 엄마는~ 탱이(남동생)는 엄마가 맨날 다해주면서 나한테는 도대체 왜 그러는데?"
"그래~ 그러니까 정말 미안한데... 이제는 네가 엄마노릇 좀 해주면 안 되겠니?"
나는 그 아이를 너무 믿는다.
내가 늙어 몸을 스스로 운신하지 못할 때가 오더라도 그 아이는 나의 구세주로 이 세상에 왔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