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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를 추억한다
소풍, 그 달콤하고 쌉싸름한 기억
by
말랑한 마시멜로우
Nov 28. 2023
국민학교에서 내가 유일하게 빛을
발휘할 때라면 단연 소풍날이다.
그때만 해도
소풍을
가면 뒷동산 같은 곳에 전체 학생들 모아놓고 반별 대항 노래와 춤 같은 장기자랑 시간이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난 우리 반 대표 선수가 되었다.
뒷동산에 마련된 스테이지에서 그 당시 인기 곡이었던 남진이나 하춘화 노래를 부르며 춤까지 완벽 재연하면 그 함성소리가 정말 대단했는데, 난 도대체 언제부터 춤과 노래를 잘하게 됐는지 알 수가 없다.
재능도 없고 끼도 없는 우리 집안에 돌연변이처럼 내가 태어났다.
중학생인 큰언니가 거울 앞에서 춤추는 모습을 훔쳐보다가 따라 하고, 텔레비전을 보다가 혼자 연습하며 틈틈이 가꾼 실력을 몇몇 친구들 앞에서 뽐내다 보니 소문에 소문이 돌았다. ‘x랑이는 춤꾼~’
수업 시간에도 애들이 졸거나 좀 지루하다 싶으면 선생님들이 어김없이 하는 말,
"x랑이! 나와서 춤 좀 춰봐라"
창피한 것도 모르고 엉덩이를 그리 흔들어 댔는데 그때가 유일하게 내 세상이었고 주인공이었으며, 내가 가장 잘나 보였으니까.
그
당시도 소풍 때 꼭 가져가야 할 기본적인 먹거리가 있었다.
김밥, 찐 달걀, 과자, 그리고 음료수 같은~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최애 하는 음식은 뭐니 뭐니 해도 찐 달걀이다.
고소하고 담백한 그 맛은 헤어 나올 수 없을 만큼 중독성이 강했지만, 유일하게 일 년에 두 번, 봄소풍과 가을소풍 때나 먹을 수 있을 만큼 귀하고 귀했다.
찐 달걀에 얽힌 몇 가지 웃픈 에피소드가 생각난다.
소풍 전날이 되자, 엄마는 많은 자식들 소풍이 부담스러웠는지 막둥이인 내게 미리 찐 달걀 하나를 슬쩍 드리미시며,
"요것 지금 먹어불고 너는 소풍 가지 말자" 꼬드기셨다.
나는 너무 먹고 싶은 나머지
도저히 그걸
참지 못하고 날름 먹어버려 소풍을 못 간 적도
있었
다.
또 한 번은, 소풍날 찐 달걀을 가방에 넣고 줄을 맞추어 가다가 가방이 땅에 떨어지는 바람에 뒤따라 온 친구가 가방을 덥석 밟아 버렸다.
가방 안의 계란이 뭉개져 버렸고 하필 달걀이 반숙(반만 익혀진)이어서 형체도 없이 못 먹을 지경까지 돼버렸다.
아끼고 아껴 가장 소중한 순간에 먹으려 남겨뒀는데 그 망연자실함에 친구에게 말도 안 되게 화를 냈다.
"야! 가시내야. 나 몰라야... 이것 어쩔 것이여 진짜아~"
그 친구도 넉넉지 못한 친구로 기억되는데, 어찌나 내가 탓을 해대니 점심대신 준비한 10원(? 정확히 기억 안 남)을 주면서 나를 심히 원망의 눈으로 쳐다보았더란다.
"아나~ 이것 니 가져라~ 힝"
그 친구는 무슨 죄인지~
우리 딸내미, 이 얘기만 하면 엄마 너무 했다며, 그 친구 불쌍하다고 눈시울을 붉힌다. 오버하기는~
콜라가 귀했던 시절, 콜라 가져온 애들이 부러워 빈 콜라병 주워다 물을 채워 넣고 간장 살짝 넣어 콜라처럼 보이게 하고 가져간 일,
아이스 깨기 사 먹고 있는데 옆에 서있던 혜숙이가 부러운 듯 보길래 아직
막대에 남아
있는 그 아까운 아이스 깨기를 미련 없이
땅에 던져 버리고선,
'어때? 부럽지?, 나 이 정도쯤은 버릴 수 있어' 속엣말을 하며 유치짬뽕하게 굴었던 일.
그러고 보면 나도 참 부러움도 많고 쇼맨십도 많은 아이였던 것 같다.
그 밖에도, 내 흑역사 같은 여러 에피소드들은 내 입을 통해 요리 저리 각색되고 과장되어 우리 애들에게 전해지곤 한다.
그럴 때마다 녀석들은 어찌나 깔깔대고 흥미로워하던지 '
엄마 시절은 너무 재밌고 웃기다' 며 그 시절을 자기들도 한번 살아보고 싶다고 난리들이다.
"으이그 속없는 것들..... "
사진:다음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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