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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랑한 마시멜로우 Oct 18. 2024

나의 도서관 이야기

(그림: 울 작은 오빠)


브런치 작가님들 글감으로 도서관과 책 참 많이 등장한다.

작가와 책, 도서관은 한 묶음이나 마찬가지니 어쩌면 당연한 이다.

도서관에서 근무하고 계신 작가님부터 독서모임이나 봉사활동 하는 작가님, 그리고 도서관을 애용하는 작가님까지 많은 분들이 관련된 글을 올려주고 계신다.

그렇담 나도  도서관 이야기를 여기에 사알짝 얹어보도록 하자.


국민학교 2학년이 되던 해, 아버지 직장 따라 교육 연수원  관사로 온 가족이 이사를 했다.

오랫동안 실업자였던 아버지가 어렵사리 구한 연수원은 공원 위에 달랑 한 채, 이웃도 부대시설도 하나 없는 허허벌판 같은 곳에 위치해 있었다.

기거할 이 없어 이리저리 메뚜기 생활을 하다 리어카 한대 정도의 짐을 싣고 우리 7 식구는 그곳에 터를 잡았다.

연수생이 때 빼고는 적막강산처럼 고요한 곳에 우리는 어떻게든 살아가야 했고 살아갔다.

그러던 어느 해, 우리 집 바로 앞에 이 지역 최초 공공도서관이 세워진다는 소식이 들렸다.

나는 그 얘길 듣고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이제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갈 것이고, 단조롭고 밍밍한 우리 일상에 새로운 얼굴들이 등장할 것이 얼마나 신나는 일인가?

실제로 도서관이 개관되자 많은 사람들이 우리 집 앞을 지나 도서관으로 들어갔고, 나는 그들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해 하루하루가 즐거웠다.

매일 아침 등굣길에 도서관 관장님과 직원오빠들에게 인사를 건네는 것도, 하굣길에 볕이 잘 드는 도서관 앞 벤치에 앉아 잠깐 쉬는 것도 모두 나에겐 작은 이벤트가 되었다.

그렇게 내 생에 도서관은 설레임과 즐거움으로 다가왔다.


덧) 친하게 지냈던 도서관 오빠가 관사에서 잠을 자다 연탄가스로 생을 달리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하얀 눈이 소복이 내려앉은 어느 겨울날, 들것에 실려 나온 축 처진 오빠의 마지막 모습을 보고 여러 날 악몽으로 힘들어했던 기억이 있다.

지금도 그 도서관을 생각하면 얼굴도 이름도 가물거리는 오빠의 마지막 잔상 함께 떠오르곤 한다.


사춘기와 함께 중학생이 되었다.

국민학교 때 개나리반 (열등반)이었던 나는 어떻게든 이미지 변신이 필요했다.

누구보다 공부를 잘하고 싶었으나 우리 집 형편은 공부할 방도 마땅찮았고 아버지가 술만 드시면 아웅다웅 두 분 싸움소리에 공부에 도통 집중하기 힘들었다.

어쩔 수 없이 나는 학교가 끝나면 집 대신 도서관으로 발길을 돌려야 했다.

나에겐 도서관 무료패스권과 지정석이 있었고 무엇보다 집보다 더 편안했던 그곳에서 밀린 숙제도 하고 월말고사 준비를 하면 거짓말처럼 내 처진 성적이 쑥쑥 올라갔다.

덕분에 우리 부모님은 맹모삼천지교를 실천하신 분이 되었고, 나는 처음으로 나에 대한 가능성 미래의 나를 당당하게 꿈꿀 수 있게 되었다.


덧) 담임 선생님이 가정방문을 오신다 한다.

친구들이나 선생님에게 우리 집을(연수원 관사) 오픈한다는 것이 죽기보다 싫었지만 피할 수 없었다.

선생님이 우리 집 판자 대문을 열고 들어서기 바쁘화장실을 급히 찾으셨다.

우리 집은 화장실이 없었다.

대신 도서관 공중화장실(푸세식)을 안내해 드렸다.

선생님은 그곳에서 볼일을 보고 난  우리집 형편을 쭈욱 살피더니  5분도 채 앉아있지 않고 다른 아이 집으로  발길을 돌리셨다.


대학 졸업 후 취업에 성공해 기획연수팀에 배치되었다.

내가 입사할 당시 우리 회사는 도서관이 별도로 없었다.

몇 해가 지나자 노조의 요구로 도서관이 만들어졌고, 우리 연수팀이 도서관 업무를 맡게 되었다.

함께 근무한 여사원이 사서 담당자가 되어 도서 선정부터 구입, 대여까지 총괄하 나도 옆에서 손을 보태게 되었다.

그때부터 나는 (좀 늦은 감이 있지만) 본격적으로 책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동안 읽지 못했던 수많은 책들을 펼쳐놓고 미친 듯이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특히 소설책을 좋아했다.

조정래 작가의 태백산맥부터 일본 추리소설까지 완전 '소설의 세계'에 푹 빠져 살았던 그때였다.

신간도서가 들어오면 누구보다 먼저 읽었고 독서록을 만들어 짧은 소감 함께 적어놓았다.

내가 그렇게까지 했던 이유는 사실 따로 있다.

그 당시 사원들이 책을 대여하러 오면 꼭 내게 묻곤 했다.


"ooo 씨~ 요즘 재밌는 책 뭐 없어요? 혹 추천 도서 없어요? 이 책은 어떤 내용이예요?"


덧) 거의 매일 책을 빌리러 왔던 설비기술팀 남사원이 있었다.

서울 남자처럼 금태 안경을 쓰고 지적인 느낌을 풍기는 사람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스퇄~)

우연이였는지 내가 있을 때 자주 왔고, 자연스레 그와 책과 관련된 얘기를 주고받게 되었다.  

그는 소설보다 시에 관심이 많다며 자신이  시를 가끔 내게 선보이곤 했다.

어느 날, 본인의 시로 시집을 만드는데 시화가 필요하다길래 우리 오빠(미대 졸업)를 소개해 주었다.

인연이 어떻게 이어질지 모르니 나름 최선을 다해 도움을 주었건만, 그놈은 우리 회사 최고 얼짱 공장장님 비서와 눈이 딱 맞아버렸다.

그럼 그렇지,, 그놈 역시 뇌섹녀보다 쭉쭉 빵빵 예쁜  여자가 끌리는 젊은 남자였다.


회사를 다니면서도 호시탐탐 다른 직업에 눈을 돌렸다.

정년이 보장되지 않는 사기업이라는 한계와 갈수록 감당하기 힘든 업무, 뜨거운 감자였던 내 위치에 위기감이 올라왔다.

때마침 대학 친구가 7급 별정직 사회복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한다기에 나도 함께 하기로 했다.

결혼 후에도 정년이 보장된다는 점에 혹해 공무원 시험준비생을 자처한 것이다. 

회사에는 비밀이었던 공부였기에 주로 퇴근 후나 주말, 휴가기간에  근처 도서관을 이용했다.

결국 2년에 걸쳐 2번의 도전은 모두 실패로 났지만, 나름 실속 있고 의미 있는 슬기로운 도서관 생활이었다 위로해 본다.


덧) 후에도 종종 그곳에 들려 책을 빌리곤 했는데 그마저 할 수 없는 일이 생겼다.

어느 날, 우리 집으로 낯선 남자의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저 oo도서관 사서 담당자 ooo입니다"

"네에? 무슨 일이세요? 저 연채 된 책 없는데요?"

"아 아~ 그게 아니고요,,, 제가 오랫동안 지켜봤는데,,,, 개인적으로 좀 만나고 싶어 전화드렸습니다."

오 마이갓! 이건 또 뭔 소린가?

"아니... 근데 어떻게 제 연락처를 알고.... 아. 그리고... 됐습니다. 저 관심 없어요..."

도서대출부에 적혀있는 내 이름과 번호를 보고 연락을 했다는 그놈은 그 후 매일 내게 전화를 걸어왔다.

지금으로선 개인정보보호로 사건화 될 수 있는 일, 거의 스토킹 수준으로 매달렸던 그놈 때문에 더 이상 그곳에 가지도 못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이제 도서관은 나와 상관없는 곳일 줄 알았다.

하지만 매번 말하지만, 인생은 아무도 모른다.

마흔이 넘어 대학원과 임용을 준비하게 되면서 또다시 도서관 생활이 시작되었다.

이제는 우리 꼬맹이들과 함께한 도서관이었다.

아이들에게는 동화책을 읽게 하고 나는 본격적인 시험준비에 돌입했다.

나는 개인 독서실보다 오픈된 공공도서관 열람실을 더 선호했다.

적당한 소음과 부담 없이 왔다 갈 수 있는 자유로운 분위기, 다른 사람도 구경하고 내 열심인 모습을 누군가 본다는 것도 큰 자극제가 되어 공부 효율이 더 올랐다.

나는 7년의 기간 동안 우리 지역 안 가본 도서관이 없을 정도로 최선을 다했고, 덕인지 어릴 적 장래희망이었던 선생님이 47년 만에 될 수 있었다.


덧) 임용을 준비할 때 같은 아파트에 살았던 고등학교 동창이 있었다.

친구가 동네 엄마들과 어울려 둘레길 산책을 할 때 나는 가방을 메고 도서관을 향하다 종종 마주쳤다.

그 친구의 인삿말은 매번 같았다. "오늘도 공부하러 가냐?"

지금 그 친구는 내 브런치 1호 구독자가 되어  옛 얘기를 함께 나누는 절친이 되었다.

"야~ 나 그때, 너 보고 어떤 생각했는지 아냐? 왜 그렇게까지 하고 살지? 근데 나중에 우리 애들이 그러더라..'엄마~ 엄마도 oo이 이모처럼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사람이면 좋겠어'라고...."


나는 지금 중학교 특수학급에 근무하고 있다.

우리 학교는 예쁜 도서관에 책도 많고 사서 선생님도 참 친절하시다.

나는 일주일에 한 번은 꼭 도서관에서 아이들과 독서시간을 갖는다.

가끔 책 읽기가 싫어 종이에 낙서를 하거나 도서관에 비치된 졸업앨범을 보며 시간을 보내는 친구도 있지만 도서관 가는 것만큼은 싫어하지 않는다.

동화책이면 어떻고 만화책이면 어떠랴, 도서관을 좋아하고 책을 가까이할 수 있는 사람으로 자란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일 아닌가?

나 역시 그 시간만큼은 브런치 작가님들 글을 읽고 댓글을 달 수 있어 일석이조셈이다.


덧) 그동안  삶에서 도서관은 어떤 의미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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