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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수원 스타 탄생

(그림: 아들내미 탱이)


나는 이곳 연수원에서 스타가 되었다.

이곳은 70년대 농촌 계몽과 발전을 목적으로 농촌 젊은이들에게 정신교육과 사기진작, 각종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마련된 연수원이다.

농촌지역의 젊은 남녀들은 1년에도 몇 번씩 자신의 지역과 이름이 적힌 명찰을 달고 연수원으로 쏙쏙 모여들었다.

그럴 때면 우리 집 주변에 모르는 젊은이들로 북적북적 성황을 이루곤 했다.


아버지는 연수원 관리와 행사 진행에 바쁜 시간을 보내셨지만, 난 사람들도 구경하고 여러 재밋거리를 경험할 수 있어 은근히 그때를 기다리곤 했다.

모처럼 각지에서 모인 젊은이들도 다양한 교육을 받으면서 그들만의 청춘사업도 하고 요런 저런 사연을 만들어 가는데 더없이 좋은 기회가 되었을 것이다.

엄마는 부업으로 연수생들을 위한 함바집을 운영하셔서 집안 경제에 힘을 보탰고, 우리는 남은 음식과 부식들을 챙겨가며 그때만큼은 먹을 것 걱정 없이 실껏 먹을 수 있었다.


그 기간 동안 나를 가장 설레게 한 것은 뭐니뭐니 해도 두두둥 '오락 시간'이었다.

공식적인 일정이 끝나고 밤 시간이 되면 친목과 단합을 위한 그들만의 축제가 열린다.

나는 축제장에 몰래 들어가 젊음 가득한 언니 오빠들 틈에 끼어 새로운 신세계를 훔쳐보는 것을 좋아했다.

그들은 어설프지만 아기자기한 게임과 장기자랑을 펼치며 그들만의 시간을 즐겼고, 서로 자기 팀이 우승하겠다며 고군분투하는 모습 또한 너무 흥미로워 나는 늦은 시간까지 눈을 비벼가며 그 광경을 관람했다.

조촐하게 마련된 상품들이 나눠지고 서로 축하하며 '으샤으샤' 하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박수까지 치며 그들을 응원했다.

응원도 모자라 너무 흥에 겨워 내 어깨까지 들썩이자


"너도 노래 한번 해봐라" 누군가 무대중앙으로 나를 끌고 올라가기까지 했다.


좀 쑥스럽긴 했지만 넘치는 끼와 흥을 주체 못 하고 송창식의 ‘피리 부는 사나이’와 남진의 ‘나에게 애인이 있다면’을 메들리로 쫙~ 뽑아버렸고 그날 관객들은 다 뒤집어졌다.


그때부터 ‘관리실 꼬마아가씨’로 유명 스타가 되었다.

내 나이 10살 전후쯤으로 어림잡는다.

그 후, 나를 알아봐 주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오락 시간만 되면 자기 팀 대표선수가 돼 달라는 러브콜도 수없이 받았다.

한마디로 연수원 스타가 탄생한 것이다.

나는 공평하게 어느 팀에도 속하지 않고 초대가수처럼 마지막 분위기를 한껏 북돋아주는 역할을 했다.

오죽했으면 내 무대에 감동받은 진행자 오빠가 모자에 돈을 걷어 출연료라 줬을까?

난 그 돈을 고스란히 엄마에게 바치며 열일을 하고 다녔다.


"엄마~ 내가 벌었어...."


오락 시간이 끝나도 아쉬운 사람들끼리 늦은 밤까지 놀 때가 있는데, 난 그때도 회원들보다 더 적극적으로 껴 놀았다.

둥근 원 가운데 산처럼 쌓여 있는 맛동산이며 새우깡 더미를 입안으로 쉴 새 없이 밀어 넣으며 노래도 부르고 시엠송(광고송) 게임도 함께 했다.

집으로 돌아올 때는 남은 과자를 주머니 한가득 담아 오는 것 또한 잊지 않았다.

나만 기다리고 있는 숫기 없는 언니, 오빠들이 눈에 밟혀서 빈손으로 돌아올 수는 없었다.


"언니야, 오빠야.. 아나~ 이것 먹어라"


연수가 끝나고 한동안 곳이 텅 비어 있을 때도 난 내 세상인 양 그곳을 맘껏 누비고 다녔다.

칠판이 있는 강당에선 친구들과 선생님 흉내도 내고 마이크로 장난도 치며 가끔은 독서실처럼 공부도 했다.

수도와 배수시설이 있는 식당은 한여름 목욕탕으로 요긴했고 친구들과 요리실습하기 안성맞춤이었다.

여러 칸의 다다미 침실은 친척이나 친구들이 오면 펜션처럼 이용하기 좋았고 가끔 혼자 있고 싶어진 오빠들도 한 번씩 자고 오기도 했다.

창고에 가득 찬 농기구들로 텃밭을 가꿔 부식을 해결하고 아쉬운 대로 공중화장실도 이용했으니 그곳은 어려운 우리 형편에 나름 실속 있는 최적의 보금자리가 아니었을까 애써 위안해 본다.


지금 그 터는 온대 간대 없이 사라지고 그때보다 더 큰 공공도서관이 그 자리까지 차지하고 있다.

작은 창문을 열면 항상 우리를 푸르르게 맞이했던 한그루 플라타너스만이 랜드 마크처럼 그 자리 그대로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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