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락
나는
남편이 해야 할 말 대신
엉뚱한 말을 할 때
가장 박장대소하는 것 같다.
예를 들면,
카시트라고 얘기해야 하는데
유모차라고 한다던가
Break Time이라고 해야 하는데
Breakfast라고 한다던가.
찰떡을 콩떡이라고 한다던가.
내 옆에 누군가가
삶의 고민과 씨름에서 해방되면
기쁘다.
같이 나누었던
그 삶의 어려움에서
점차 빛 가운데로 나아오는 모습을
함께 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런 이야기들을
옆 사람에게 전해주고 싶다.
왜냐하면 기쁨은 전염되기에!
늘 웃는 사람이 곁에 있다면
그 순간 더 밝은 세상이 펼쳐진다.
터무니없이 크게 느꼈던 어려움도
한 번의 웃음으로 털어버릴 수 있게 된다.
기뻐할 수 있어서
기뻐하는 게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기뻐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된다.
혼자서는 그만큼 기쁠 수 없다.
진정한 기쁨은
함께할 때 느낄 수 있다.
함께 기뻐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희락이다.
슬픔은
누구나 공감하고
같이 슬퍼할 수 있다.
살면서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사람의 이야기를
뉴스에서 듣기만 해도
눈물이 난다.
심지어 후원도 하고
정기적으로 교류도 한다.
하지만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가까이 있는 사람일수록
진정으로 함께 기뻐하는 것이
힘들다.
온전히 기뻐하지 못하고
어느 순간
그 사람과 처지를 비교하고 있는
나를 보게 된다.
다른 사람의 기쁨이
내 기쁨이 되는 삶은
체험해 봐야, 경험해 봐야
정말 내가 혼자 느끼는 기쁨과는
비교할 수 없는
크고 큰, 아주 커다란 기쁨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간절히 소망하던 아이가 생겼을 때,
그 소식을 듣고 진심으로 축하해 주고
간절히 원했던 취업이 되었을 때
함께 응원하고 축하해 주던 경험.
어려운 감정의 골과 힘들었던 관계가
해결되는 과정을 함께 했을 때.
그 사람과 동일한 행복 회로로
진입하게 되는 그런 경험 말이다.
기쁨과 슬픔은
동일 선상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건강이 나빠져서 슬펐는데,
건강이 회복되면 기쁘다.
타야 하는 버스가 눈앞에서 떠나버리면 슬프고,
생각보다 일찍 온 다음 버스를 타면 기쁘다.
사랑한다. 고생했다. 고맙다는 말 한마디에
딱딱했던 마음이 풀어지고,
미소 지을 수 있는 넉넉함이 생긴다.
슬픔으로 눈물을 떨구면서
미소 지을 수 있다.
울면서 웃게 되는
그런 것 말이다.
혼자 울다
그 울음을 누가 알아주면
더 큰 울음이 되어
울음을 쏟아내게 된다.
그러고 나면
방금 울었던 그 이유가
저 멀리 날아간다.
혼자 기뻐하다가
누군가 한 명이
나와 함께 기뻐해주면
그 기쁨은
더 큰 기쁨이 되어
나를 포함한
내 주변을 변화시킨다.
2024년 나는
얼마나 기뻐했는가
그 기쁨을 주변에 나눴는가
함께 기뻐해줄 사람이 있었는가.
내 기쁨의 원천은 무엇인가.
슬픔 가운데도
기뻐할 수 있는 기쁨이었나.
2024년 나의 기쁨의 원천은
함께 하는 사람들이었다.
2025년에도
함께 하는 사람들 덕분에
아주 커다란 기쁨을 만끽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