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유진 Apr 27. 2019

어디에 살든 가족과 친구 한 명만 있으면

친구가 좋아서


아침부터 줄줄이 벨 눌러 학교 가자고 부르는 친구 덕분에 아이는 들뜬 마음으로 아침도 먹는 둥 마는 둥 서둘러 집을 나선다. 아파트 9층 창밖으로 복작복작한 녀석들을 보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다. 놀이터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미끄럼틀에 올라타거나 철봉에 매달렸다가 등교 시간이 촉박해짐을 확인하고 종종걸음으로 단지를 빠져나가곤 했다. 한국에서의 아침 등교 풍경이다. 


아이에겐 친구 없는 생활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각별했다. 사회성이 발달하면서 혹은 또래 친구와 노는 것의 즐거움을 알고 난 후부터는 늘 친구를 찾던 녀석이다. 몇 번의 이사를 하면서도 최소한 한 명 정도는 단짝 친구가 있었다. 유치원에서도 꼭 단짝 친구를 사귀어서 어떻게든 만나서 놀았다. 다섯 살부터는 쭉 한 동네에 살았으니 마지막으로 살던 아파트엔 5년 된 친구가 산다. 초등학교에 다니면서는 매일 3시 반, 놀이터에서 만날 약속을 잡거나 그렇지 못할 시엔 친구 찾아 삼만리다. 친한 친구 집 벨은 서슴없이 눌러 어떻게라도 만나 노는 게 익숙한 아이다. 주말도 없이 놀던 아이에게 나는 일 년 365일 중 360일은 친구를 만나는 것 같다고 그렇게 친구가 좋으냐고 놀리곤 했다.     


그런 아이가 독일에서 한동안 친구 하나 없이 썰렁하다. 학교와 집 오가는 길마저 외롭다. 모두 다 띄엄띄엄 떨어진 주택에 사니 같은 방향으로 오는 친구 하나 없고 대부분의 아이는 자전거를 타고 등, 하교했다. 입학하고 두 달이 지나서야 도착한 이삿짐 덕분에 아이는 매일 걸어 다녔다. 게다가 말은 통하지 않으니 오죽 답답했을까. 독일로 오기 직전, 3학년 선생님은 수업에 온전히 집중하는 아이로 힘이 났다며 내게 고마움을 전했다. 그랬던 아이가 일순간에 기가 죽고 의욕이 떨어졌다. 친구가 좋아 죽고 학교에서 배우는 모든 것들이 즐겁던 아이에게 처음으로 닥친 인생 어려움이다.  


한국에 있는 친구를 매일 그리워하면서 어떻게든 독일 학교에 정을 붙이려고 애쓰던 어느 날, 조마조마했는데 역시나 학교에 가지 않겠단다. 그렇게 좋아했던 학교에 가지 않겠다니! 담임선생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독일에선 이유 없이 학교에 오지 않는 일은 허용되지 않는다. 아프지 않은 이상, 학교 결근은 용납되지 않는다. 성수기를 피하려고 여름 방학 전에 미리 여행을 떠나는 경우를 예상하고 공항에 경찰들이 포진한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때 잡힐 경우 상당 금액의 벌금을 물어야 한단다. 원리 원칙 엄격한 독일에서 학교 출석도 예외는 없다. 


학교 가기 싫다고 눈물 쏟던 아이가 6개월 즈음엔 독일에서 살아도 괜찮지 않을까. 마음을 잡아가는 듯 보였다. 떠난 곳은 잊어야 새로운 곳에 발을 붙이고 산다. 언제라도 한국으로 돌아갈 수 있는 여지를 남겨 둔 내게 독일에서 계속 살면 안 되겠냐고 일 년이 채 되기 전에 조심스레 묻는다. 이유를 물으니 어디에 살든 가족과 친한 친구 한 명만 있으면 되는데 마침 독일에서 친한 친구 킴이 있어서 이젠 괜찮단다.  


2016년 9월 26일 독일


그 무렵엔 한국에서처럼 매일은 아니지만 가끔은 친구와 약속을 잡아 서로의 집에서 번갈아가면서 놀았다. 킴 하고는 최소 일주일에 하루는 꼭 만났고, 킴을 시작으로 생일 파티에 기꺼이 초대해준 고마운 네 명의 친구도 돌아가며 놀 수 있냐고 종종 전화했다. 독일에서 살아도 괜찮겠다고 할 때는 아마도 한국에서와 비슷한 일상을 회복해 갈 무렵일 거다. 4학년 1학기가 끝나고 짧은 방학이 시작된 2018년 1월 31일엔 친구 집에서 잔 역사적인 날이다. 그 이후 지금까지 여섯 명은 서로의 생일엔 꼭 초대되어 진하게 만난다. 

작가의 이전글 마흔두 번 째에서야 의미를 챙기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