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고 맙소사! 가 절로
걱정했던 전쟁통 같은 하루가 지나갔다. 뭐든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중요할 텐데 난 부정적인 쪽으로 치우친다는 걸 이 글을 쓰며 깨닫는다. 아니면 엄청 부정적이었는데 글을 쓰면서 그나마 좋은 쪽으로 해석되는 경향이 있는지도 모르고. 어쩌면 불행 중 다행일지도. 집에서 오후 4시에 나갔는데 밤 11시가 넘어서 귀가했다. 발 마사지 첫 수업 날이었다. 오누이만 떨렁 남겨두고 저녁 시간에 나가야 하는 게 마음에 걸렸지만 얘들이 이젠 컸으니 한편으론 안심되면서도 꼭 그런 것도 아니다. 하필이면 이럴 때 교통 카드를 아들이 혼자 치과 다녀오다가 잃어버린 걸 삼십 분 먼저 나가서 재발급받으려다가 더 꼬였다. 결국은 남편 거라서 못하고 기계치가 또 표 끊느라 애먹었다.
발마사지 수업받는 곳은 일요일에 미리 사전 답사를 다녀왔다. 남편과 함께. 지도를 볼 줄 모를 뿐 아니라 길치에 방향치인 나를 위해 미리 예방책을 마련해 둔 거다. 늦는 거 싫어하는데 길까지 헤매면 엄청 당황할 테니까. 남편이 슈토프로 가는 날 같이 나가서 길을 알아 두었다. 그날도 한 시간 가량 헤매서 겨우 찾긴 했지만 그래도 한 번 간 길은 기억한다. 이정표를 열심히 사진 찍어두면서. 당일에 시간이 충분하지 않을 테니 헤맬 시간을 없애기 위해서다. 그런데 생각보다 중앙역에서 멀다. 마땅한 버스도 없고 걸어서 족히 20분은 걸린다. 빠른 걸음으로 해도 겨우 몇 분 단축이다. 그러면 왕복 시간을 더 계산해야 한다.
마침 다음날이 딸 생일이라 학교에 가져갈 머핀 세 판을 미리 구워두어야 했다. 장도 미리 봐 두어야 하고. 얘들 먹을 저녁도 준비해둬야 하고. 한 번 외출하려면 준비할 것이 어찌나 많은지. 집 나와 버스에 앉아서야 한 숨 돌린다. 브레멘 가는 기차에선 눈이 저절로 감겼다. 저녁 시간에 취약한데 저녁 수업이라 그렇잖아도 걱정이다. 방전된 에너지를 가는 길에 한 칸 겨우 채운다. 게다가 모두 독일어로 진행된다는 거. 독일어도 뭐라도 좀 준비를 해야 하는데 생각만 하고 엄두도 못 냈다. 닥치면 알아서 하겠지 싶어서. 길은 미리 알아둔 상태라 헤매진 않았다. 그것만으로도 마음이 놓인다. 내 가장 취약한 분야.
그날 가장 열불 난 일 하나는 오누이가 잘 있나 연락을 했는데 도대체가 연락이 안 된 거다. 수업 들어가기 전에도 연락이 안 돼서 남편에게 부탁을 하고 들어갔다. 괜한 걱정이 중간중간 스멀거린다. 알아서 잘 있겠지 싶다가도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 싶어서. 결국은 남편이 집주인인 피터에게 연락을 했다. 저녁 먹다 말고 피터가 집에 가봤더니만 잘 있단다. 엄마 걱정하니까 전화기 좀 켜놓으라는데 그다음에도 연락이 닿질 않는다. 어찌나 답답하던지. 이럴 때 집전화가 있으면 좋으련만. 전화기를 켜 놓기만 하고 비행기 모드로 되어있어서 연락이 차단된 거다. 다음날 아침에 확인하니 전날 안 간 문자와 부재중 통화 내역이 주르륵 들어온다. 진짜 못 산다.
밤 아홉 시에 수업이 끝나서 중앙역에 와서 보니 기차 시간이 겨우 5분 남았다. 교통 카드인 미아 카드만 있었어도 바로 탈 수 있는데 표 끊느라 기차를 놓쳤다. 아! 두 번째 열불이다. 이번엔 기차가 도대체 올 생각을 안 한다. 지연으로 한 시간을 기다렸다. 얘들은 연락 두절이다. 아주 미쳐 버리는 줄 알았다. 자면 잔다. 밖에 있는 엄마 걱정 안 되게 문자 한 통만 보내줬어도 이 정도로 걱정하진 않았을 거다. 자식은 부모가 하는 걱정을 1도 생각 못하는 모양이다. 발 동동 구르며 집에 도착하니 대자로 입 헤벌리고 잘 자는 얘들을 보면서 감사해야 하는 건지 울화통 터져해야 할지 그 밤에 부글거리는 속을 가라앉히느라 죽는 줄 알았다. 밖에서 속 끓은 거 1도 이해 못하는 얘들이 야속할 뿐. 그나마 딸은 내 침대 베개 위에 편지를 써두었다. 내가 딱 궁금했던 내용을. 저녁 잘 먹었다고. 잘 있었노라고. 엄마 걱정 말라고. 사랑한다고. 잘 자라고. 이걸 문자로 한 번만 보내줬으면 얼마나 고마웠겠나. 알고 보니 딸도 카톡을 보냈는데 글쎄, 와이파이를 켜지 않고 보내서 전송이 안된 거였다. 아이고 맙소사!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