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유진 Sep 30. 2019

발 동동 구르며 애태운 날

아이고 맙소사! 가 절로

걱정했던 전쟁통 같은 하루가 지나갔다. 뭐든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중요할 텐데 난 부정적인 쪽으로 치우친다는 걸 이 글을 쓰며 깨닫는다. 아니면 엄청 부정적이었는데 글을 쓰면서 그나마 좋은 쪽으로 해석되는 경향이 있는지도 모르고. 어쩌면 불행 중 다행일지도. 집에서 오후 4시에 나갔는데 밤 11시가 넘어서 귀가했다. 발 마사지 첫 수업 날이었다. 오누이만 떨렁 남겨두고 저녁 시간에 나가야 하는 게 마음에 걸렸지만 얘들이 이젠 컸으니 한편으론 안심되면서도 꼭 그런 것도 아니다. 하필이면 이럴 때 교통 카드를 아들이 혼자 치과 다녀오다가 잃어버린 걸 삼십 분 먼저 나가서 재발급받으려다가 더 꼬였다. 결국은 남편 거라서 못하고 기계치가 또 표 끊느라 애먹었다.

 

발마사지 수업받는 곳은 일요일에 미리 사전 답사를 다녀왔다. 남편과 함께. 지도를 볼 줄 모를 뿐 아니라 길치에 방향치인 나를 위해 미리 예방책을 마련해 둔 거다. 늦는 거 싫어하는데 길까지 헤매면 엄청 당황할 테니까. 남편이 슈토프로 가는 날 같이 나가서 길을 알아 두었다. 그날도 한 시간 가량 헤매서 겨우 찾긴 했지만 그래도 한 번 간 길은 기억한다. 이정표를 열심히 사진 찍어두면서. 당일에 시간이 충분하지 않을 테니 헤맬 시간을 없애기 위해서다. 그런데 생각보다 중앙역에서 멀다. 마땅한 버스도 없고 걸어서 족히 20분은 걸린다. 빠른 걸음으로 해도 겨우 몇 분 단축이다. 그러면 왕복 시간을 더 계산해야 한다. 

 

마침 다음날이 딸 생일이라 학교에 가져갈 머핀 세 판을 미리 구워두어야 했다. 장도 미리 봐 두어야 하고. 얘들 먹을 저녁도 준비해둬야 하고. 한 번 외출하려면 준비할 것이 어찌나 많은지. 집 나와 버스에 앉아서야 한 숨 돌린다. 브레멘 가는 기차에선 눈이 저절로 감겼다. 저녁 시간에 취약한데 저녁 수업이라 그렇잖아도 걱정이다. 방전된 에너지를 가는 길에 한 칸 겨우 채운다. 게다가 모두 독일어로 진행된다는 거. 독일어도 뭐라도 좀 준비를 해야 하는데 생각만 하고 엄두도 못 냈다. 닥치면 알아서 하겠지 싶어서. 길은 미리 알아둔 상태라 헤매진 않았다. 그것만으로도 마음이 놓인다. 내 가장 취약한 분야. 




그날 가장 열불 난 일 하나는 오누이가 잘 있나 연락을 했는데 도대체가 연락이 안 된 거다. 수업 들어가기 전에도 연락이 안 돼서 남편에게 부탁을 하고 들어갔다. 괜한 걱정이 중간중간 스멀거린다. 알아서 잘 있겠지 싶다가도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 싶어서. 결국은 남편이 집주인인 피터에게 연락을 했다. 저녁 먹다 말고 피터가 집에 가봤더니만 잘 있단다. 엄마 걱정하니까 전화기 좀 켜놓으라는데 그다음에도 연락이 닿질 않는다. 어찌나 답답하던지. 이럴 때 집전화가 있으면 좋으련만. 전화기를 켜 놓기만 하고 비행기 모드로 되어있어서 연락이 차단된 거다. 다음날 아침에 확인하니 전날 안 간 문자와 부재중 통화 내역이 주르륵 들어온다. 진짜 못 산다.

 

 아홉 시에 수업이 끝나서 중앙역에 와서 보니 기차 시간이 겨우 5분 남았다. 교통 카드인 미아 카드만 있었어도 바로 탈 수 있는데 표 끊느라 기차를 놓쳤다. 아! 두 번째 열불이다. 이번 기차가 도대체 올 생각을 안 한다. 지연으로 한 시간을 기다렸다. 얘들은 연락 두절이다. 아주 미쳐 버리는 줄 알았다. 자면 잔다. 밖에 있는 엄마 걱정 안 되게 문자 한 통만 보내줬어도 이 정도로 걱정하진 않았을 거다. 자식은 부모가 하는 걱정을 1도 생각 못하는 모양이다. 발 동동 구르며 집에 도착하니 대자로 입 헤벌리고 잘 자는 얘들을 보면서 감사해야 하는 건지 울화통 터져해야 할지 그 밤에 부글거리는 속을 가라앉히느라 죽는 줄 알았다. 밖에서 속 끓은 거 1도 이해 못하는 얘들이 야속할 뿐. 그나마 딸은 내 침대 베개 위에 편지를 써두었다. 내가 딱 궁금했던 내용을. 저녁 잘 먹었다고. 잘 있었노라고. 엄마 걱정 말라고. 사랑한다고. 잘 자라고. 이걸 문자로 한 번만 보내줬으면 얼마나 고마웠겠나. 알고 보니 딸도 카톡을 보냈는데 글쎄, 와이파이를 켜지 않고 보내서 전송이 안된 거였다. 아이고 맙소사! 다. 




매거진의 이전글 베를린, 티어가르텐의 아이스 아메리카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