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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진 Nov 28. 2019

어둡고 긴 유럽의 겨울을 나는 법

크리스마스 과자 굽기


독일의 겨울이 무섭게 어둠을 몰고 온다. 서머타임으로 늦춰진 시간이 무색하게 하루하루 급속하게 어두워진다. 아침에 딸이 등원하는 시각인 7시 30분은 깜깜해서 야광조끼를 입힌다. 방과 후가 있는 날은 오후 4시에 끝나는데 집에 오는 길이 어둑어둑. 클라우디아와 일주일에 한 번 산책하던 오후 4시 반이 제법 어둡다. 겨울엔 어떻게 할까. 연말까지 쭈욱 쉬어도 괜찮겠다. 친구를 만나는 건 좋지만 독일어 대화는 솔직히 피곤하다. 푹 쉬고픈 동굴에 들어가고 싶은 유혹도 한편으론 드니까. 이런 소극적인 내 마음을 모르겠지만 항상 먼저 손 내밀어주는 친구가 고맙다. 크리스마스 과자를 구울 생각인데 같이 만들래?라고. 2년 전엔 친구가 오누이를 배려한 쿠킹 클래스를 열었고 작년엔 아이랑 사부작사부작 만들었던 크리스마스 과자를 어젠 클라우디아와 단둘이 폭풍 수다를 떨면서 만들었다.





과자 만들기? 정말 좋지. 난 뭘 준비해 가면 좋을까? 물었더니 과자 담을 통(Dose)만 가져오면 된단다. 이렇게 고마울 수가! 빈 통만 들고 가기 민망해서 내가 좋아하는, 독일인도 좋아할 고구마 맛탕을 아주 정성스럽게 만들어 가져 갔다. 아몬드와 참깨를 솔솔 뿌려서. 아들이 보더니만 우리한테는 이렇게까지는 아니었는데 엄마 너무하는 거 아니냐며 시샘 낼 정도로. 역시나 감동 잘하는 클라우디아는 먹어보더니 너무 맛있다고 엄지를 척 치켜세운다. 기름으로 튀기지 않은 맛탕이라 훨씬 건강하다는 것에도 공감하면서. 진짜 고맙다고. 어떻게 만든 거냐고 레시피도 묻고.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우리의 과자 만들기는 시작했다. 오늘은 세 종류의 과자를 만들 거라면서 레시피를 보여주었다. 반죽해서 숙성하느라 시간 걸리는 도우는 오전에 클라우디아가 미리 준비했다. 첫 번째는 Schwarzweißgebäck 카카오를 넣어 만든 검은 타이와 보통 하얀 도우를 각각 밀대로 밀어서 두 개를 겹쳐 돌돌 말아 0.5cm 두께로 잘라서 굽는다. 두 번째는 2년 전에도 만들었던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과자다. 단추 모양에서 유래한 이름도 어려운 Husarenkrapferl이란 과자인데 손도 많이 간다. 도우를 가래떡처럼 길게 밀어서 손가락 한 마디 정도로 잘라 동글게 빚는다. 원통형 나무 숟가락 끝으로 살짝 눌러 가운데에 구멍을 낸다. 그곳에 달걀노른자 물을 붓으로 바르고 설탕을 쿡! 찍은 후에 잼을 주입한다. 둘이서 손발이 척척 맞게 과자 몇 판을 만들어 오븐에 넣고 빼기를 여러 번. 갓 구워져 나온 과자랑 차 한 잔 마시면서 잠깐 쉬는데 밖은 벌써 캄캄하다. 그래도 친구랑 함께라 쓸쓸하진 않다. 게다가 이렇게 예쁘고 맛있는 과자도 구웠으니.




강철 빛 회색 하늘에 마음이 무너지지 않으려면 예쁘고 환한 것들이 많이 필요한데 그중 하나가 크리스마스 과자다. 직접 만들면 몸은 고돼도 오븐 열기에 달아오른 부엌 공기는 따뜻하고 예쁘게 구워져 나온 과자는 보기에 먹음직스럽다. 한 통 가득 구워두면 한동안은 뿌듯하고. 다음 주부터는 초등학교에서도 과자를 굽는다. 함께 구운 과자를 반 친구들이 하나씩 먹으면서 크리스마스를 손꼽아 기다릴 테지. 12월 첫 주부터 매주 한 개씩 불을 밝히다 네 개의 초 모두에 불을 붙이며 크리스마스를 맞는 Adventskranz도 그렇고 어둡고 긴 유럽의 겨울을 견디는 방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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