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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진 Jul 28. 2018

천국은 아니지만 그럭저럭 살만한

독일 낯선 곳 보통 날

결혼 14년 차, 큰아이가 열 살, 둘째 아이가 네 살에 독일에 왔어요. 2016년 여름의 한복판이었는데 어제(7월 27일)가 바로 딱 2년 되는 날이네요. 첫째 아이는 독일 초등학교(Grundschule 4년제)를 졸업하고 김나지움으로 진학 예정이고 작은아이는 다음달에 2학년이 됩니다. 남매는 아이답게 적응을 잘한 편이에요. 남편은 석사 졸업을 앞둔 시점에서 운 좋게 회사에 취업했고요. 전 뭐 천국은 아니지만 그럭저럭 살만합니다.   


어느 날, 불현듯 남편은 독일에서 살고 싶어, 라는 중얼거림에서 아무래도 한국에선 미래가 없는 것 같아. 독일에서 살아야겠어, 라고 확고한 마음을 조금씩 내비쳤습니다. 아이에겐 우리가 살았던 방식과는 조금 다른 곳 다른 방식으로 살면 좋겠다면서요. 하나의 관문을 통과하기 위해 아무 생각 없이 전력 질주해야는 거 말고. 그렇게 마음이 한국을 떠나 다른 곳으로 조금씩 이동하는 데 한 2년 정도 걸린 것 같아요.  


2년이란 시간은 남편이 독일에 가서 살 궁리하며 준비한 기간이기도 하고요. 제일 먼저 한 일은 십 대에 제 2외국어로 배운 적이 있는 독일어 공부를 하더라고요. 빠듯한 살림에 독일어 개인 과외를 큰맘 먹고 받았어요. 그때만 해도 저 사람 진짜 독일에 가려는 건가? 저도 남편이 독일에 가고 싶은 마음에 어느 정도 공감은 했지만, 현실적인 부분(전 그리 현실적인 사람도 아닌데 말이죠)을 생각했을 때 어디 외국에 나가 사는 일이 쉬울까. 반신반의하며 남편을 지켜봤어요.  


한국을 떠난다고 좋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고 더 잘살게 될지도 알 수 없어서 불안했죠. 무엇보다 마흔 중반에 유학이라니요. 취업이 아니라 공부로 시작한다면 얘가 둘이나 딸린 상황에선 경제적인 면을 생각하면 두려웠죠. ‘불안이 슬픔보다 끔찍하다’는 말은 이때 딱 어울리는 말이었어요. 뭔가를 시작하기에 늦은 나이는 없다지만 막상 떠나려니 과연 우리가 잘 해낼 수 있을까. 가능한 일일까. 사십 대가 너무 늦은 나이는 아닐까. 만약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면. 묻고 또 물었어요.

  



경기도에 살던 집의 전세금을 빼고 대출을 받아 산 아파트를 정리하니 빚은 청산 되더라고요. 독일 오면서 제일 좋은 점 하나는 빚이 없어졌다는 거예요.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에서 양치기 산티아고가 가진 양을 다 팔아 자아의 신화를 찾아 떠나는 것처럼 남편은 비장해 보였어요. 과연 2년을 버틸 수 있을까 싶을 만큼 수중에 있는 돈은 보잘것없었지만요. <한국이 싫어서>보다는 남편은 “한국에선 더이상 경쟁력이 없다고” 생각한 것 같아요. 더 나은 미래를 꿈꾸고 무엇보다 행복해지길 원했어요. 그래도 아무리 부모가 싫다고 단박에 멀리 떠나는 일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돌이켜보면 남편에게 일 순위 가족이 없었다면 이렇게 중대한 일을 기꺼이 하려고 할 이유가 없었을지도 모르겠어요.  


남편이 언어를 준비하는 동안 전 살림을 서서히 정리했어요. 가전과 가구는 버려도 아까울 것이 없을 만큼 낡았거든요. 2년 동안 늘이는 살림 없이 서서히 줄이고 그렇지 않아도 검소했는데 더 검소한 생활을 추구했어요. 남편이 유학하는 동안 수입 없이 버티려면 아끼는 수밖에 없으니까요. 어찌어찌 최소 생활 자금으로 2년을 버텼네요. 독일이라는 강국이 나라는 부자인데 국민은 왜 이렇게 궁상스럽나. 싶을 만큼 검소한 생활이 우리 가치와도 맞아떨어졌고요. 


자기보다 열 살은 어린 교수 밑에서 스무 살쯤 어린 학생들이랑 나이 들어 공부하느라 고생한 남편과 유학생 도시락까지 싸면서 구박도 많이 안 한 제가 좀 대견하긴 해요. (자축도 잘합니다!) 낯선 환경에서 잘 견디고 적응한 남매도 그렇고요. 유럽 여행 한 번 못 해본 마흔 살 아줌마가 독일에서 살면서 겪은 소소한 일상을 쓰려고요.  




지인들이 물어요. 밥은 잘 먹고? 뭐 먹고 살아? 

밥도 먹고 빵도 먹고 삽니다. 당연히 맥주와 와인도 마시고요. 

독일 살기 좋지? 

나쁘지 않아요. 공기도 좋고 생활 물가는 싸고요. 무엇보다 신경성 대장으로 고생한 남편의 설사가 멎었고 행복해합니다. 

독일어는 좀 늘고?  

별로요. 신기하리만치요. 오누이가 외국어 습득이 놀랄 만큼 느는 것에 비교해 늘지 않는 게 놀랍죠. 

얘들은 학교 잘 다녀? 

얘들에겐 천국일지도 모르겠어요. 단 초반의 어려움을 잘 극복하고 적응을 잘 한다면요  


이런 사소한 질문에 답하는 글을 가벼운 마음으로 쓰려고요. 해외 산다고 엄청 대단한 것도 없고요. 엄마로 사는 비중이 큰 제겐 낯선 곳 독일에서도 여전히 밥을 하고 오누이를 키우며 보통 날을 살아요. 경계선에서 이방인으로 살면서 어떻게 하면 좀 더 행복해질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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