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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진 Aug 21. 2019

베를린, 티어가르텐의 아이스 아메리카노

반성이라도 잘해요


베를린은 역사 유적지에 예술과 자연이 함께 어우러져 과거와 현재가 절묘하게 공존하는 멋스러운 도시다. 'Erinnere an Gestern denk an Morgen, lebt Heute 어제를 기억하고 내일을 생각하고 오늘을 살라'는 독일어 속담이 썩 잘 어울리는 도시랄까. 

 

여행할 땐 역시나 날씨가 관건이다. 큰언니와 조카가 우리 집에 도착한 7월 초 며칠을 묵는 동안 언니가 가져온 여름옷은 거의 입지 못할 만큼 날씨가 써늘했다. 더운 곳에 있을 땐 설마, 얼마나 춥겠어? 하며 미처 예상하지 못한 온도다. 7월 첫 주 베를린 날씨를 검색하니 그 전주에 벼락 동반 비바람이 불었다. 여름 날씨가 왜 그러냐면서도 독일이니까 가능한 날씨라며 사는 사람은 쉽게 공감한다. 며칠 전엔 8월인데 우박이 내렸다. 일주일치 날씨를 캡처해서 보내줬음에도 언니는 얇은 바람막이 잠바를 하나 챙겼다. 그 무렵 유럽이 40도 안팎이라는 뉴스도 한몫했을 거다. 그런데 내가 사는 북부 독일은 그렇게 덥지 않다. 게다가 독일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흐렸다가 비 왔다나 쨍했다가 하루에도 몇 가지의 날씨를 선보인다. 한마디로 종잡을 수 없다. 누구 마음처럼. 브레멘에서 세 시간 이체(빠른 기차)를 타고 베를린에 도착한 날은 해가 떠서 눈이 부셨다. 분명 집을 나설 땐 모두 긴바지에 잠바까지 걸쳤는데 해가 쨍하다. 순식간에 겉옷은 거추장스러운 짐이다. 거리엔 이미 끈나시 짧은 반바지 차림으로 해를 온몸으로 맞겠다는 복장이 즐비하다. 

 

첫날 묵은 홀리데이인은 베를린 중앙역에서 가까웠다. 호텔에 회원가입을 해두면 일찍 도착했을 시에 짐을 맡길 수(이건 회원가입 없이도 가능)도 있고 늦은 체크 아웃(일정 비용을 지불하면 가능하기도)이 필요할 때 서비스 이용이 가능하다. 이번에 묵은 두 곳의 호텔은 모두 그런 혜택을 톡톡히 봤다. 두 번째 방문이라 언니와 조카를 안내하기가 훨씬 수월했고. 작년엔 투어 버스로 관광지를 돌았다면 이번엔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다. 하루에 한 두 곳 우리가 가고 싶은 장소를 고르고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다녔다. 관광하기에 적당하게 선선한 바람이 불거나 덥지 않을 정도로만 해가 났다. 물론 둘째 날 아침엔 흐리고 비가 와서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엔 우산을 쓰고 다녀왔지만.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는 베를린 장벽에 백 명이 넘는 작가가 그라피티로 그린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그 유명한 그림 형제의 키스가 있는. 강가를 따라 산책하며 오전에 관람하기 좋다. 장벽의 길이가 꽤 길어서 중간 지점에서 다리가 아프다는 딸은 남편이 데리고 잠시 다른 곳에서 쉬었고 우리만 다녀왔다. 전부는 아니지만 장벽의 일부라도 이렇게 보존하고 그 위에 예술을 덧입혀 분단의 아픔을 기억한다는 게 멋져 보인다. 그뿐 아니라 2차 세계 대전 중 폭격당한 카이저 빌헬름 교회도 손상된 모습 그대다. 마침 방문했을 때가 주일이었는데 안에선 예배를 드렸다. 장벽이나 손상된 교회처럼 그대로 보존할 것은 어떻게든 남기고 유대인 학살은 홀러 코스트 메모리얼에 차가운 시멘트 무덤을 만들어서라도 기억하려는 애씀은 놀랍다. 일어나지 않았어야 할 일에 대하여 반성하고 지금 혹은 앞으로 할 수 있는 일을 모색하는 모습! 


작년 칠월 말의 베를린과 올여름의 온도는 또 달랐다. 올해는 20도 안팎으로 서늘했는데 작년엔 37도로 엄청 더웠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은 일은 무슨 일 때문에 화가 났는지 모르겠지만 신경이 곤두선 타이밍에 자동으로 초록물이 뚝뚝 떨어지는 아름드리나무가 빽빽한 티어가르텐에 갔다. 티어가르텐은 브란덴부르크 문, 베를린 영화제가 열리는 포츠담 광장, 베를린 필하모닉 홀에서 가깝다. 그만큼 규모가 엄청 넓다. 필하모닉 홀 내부 관람이나 직접 공연을 보고 싶다면 장기간 휴무인 7월 방문은 피하는 게 좋다. 


푸르른 자연 속에 들어서면 마음이 차분해진다. 화난 마음도 가라앉고 평온한 마음이 든다. 시멘트 바닥에서 열기가 올라오고 숨쉬기 조차 힘든데 사람까지 많아서 더 덥게 느껴지는 브란덴부르크문을 빠져나와 그늘을 찾아 벤치에 누웠다. 잔디밭 군데군데 사람들이 자리 잡고 쉬는 모습이 퍽 자연스럽다. 여행지에서도 변함없는 남매의 투닥거림에 지쳤던지 덥고 힘들어서 그랬는지 자동반사적으로 올라온 짜증을 아무 잘못 없는 남편에게 뒤집어씌운 게 문제다. 흘러가는 구름이 참 예쁘다고 생각하면서 얼핏 잠이 들었나 보다. 남편이 커피를 배달해왔다. 짜증 낸 마음이 괜히 머쓱해지게. 얼음이 작아져서 연해진 커피에 동동 뜬 걸 보니 왕복 십 분은 족히 넘게 걸린 모양이다. 남편에겐 트라우마라는데 나만 잊지 못할 감동의 티어가르텐으로 남았다니! 반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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