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지만 밀도 높은 만남
아이에게 이모가 있다는 건 축복이다. 그것도 한 명도 아니고 네 명이나! 때로는 엄마가 줄 수 없는 사랑을 듬뿍 주기도 하니까. 고모는 없고 삼촌은 있지만 별로 교류가 없어서 우리 집 오누이는 삼촌 사랑은 느낄 틈이 없었다. 아무래도 자매가 가까운 만큼 그게 자식에게까지 흘러가나 보다. 네 명의 이모가 성격이나 스타일뿐 아니라 음식 솜씨와 통화하는 형태도 다르다. 오누이가 말하길, 큰 이모는 일상 반찬을 둘째 이모는 잔치 음식을 넷째 이모는 간식을 잘 만드신단다. 그리고 셋째 이모는 주로 잘 시켜주신다고 해서 빵 터졌다. 그에 비에 엄마는 골고루 잘하는 편이지만 이모들보다는 전체적으로 레벨 1 정도가 낮다는 일곱 살 딸의 예리함에 바로 수긍했다.
다름의 스펙트럼이 얼마나 넓냐면 장거리 여행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한 이모는 독일에 갈 경비가 있으면 그 돈을 보내겠단다. 그 이모 성격으로 봐서 충분히 그럴만하다고 웃었다. 가장 자주 통화하는 둘째 이모는 서로의 일상을 거의 공유하는데 우리 집에 올 때 바리바리 싸올 리스트를 쫘악 뽑아놓고 이왕이면 길게 두루두루 둘러봐야지 하며 때를 기다리는 중이다. 용건이 있을 때만 통화하는 셋째 이모는 주로 화상 통화를 하는데 돈 열심히 벌어서 재인이 보러 가겠노라고 공수표를 많이 날렸다. 마음은 원이로되 일이 많아 상황이 여의치 않는 이모는 기회가 될 때마다 딸이 좋아하는 선물을 챙긴다.
이모 서열순으로 방문을 짠 건 아닌데 어쩌다 보니 실행력 높은 큰 이모가 제일 먼저 우리 집에 왔다. 결혼한 딸과 함께. 우리는 이모 오기 전 백일부터 날짜를 세었는데 날 잡아두니 시간이 또 금방 가서 그날은 왔다. 오누이는 이모가 브레멘 공항에 도착하는 일요일 오전 9시까지도 믿기지 않는다는 둥 꿈만 갔다고 했는데 기쁨의 상봉을 했다. 기다리는 즐거움을 듬뿍 지나 이모와 언니를 만난 거다. 오랜만에 사람도 북적북적 한국말도 찰랑찰랑 흘러넘친다.
한국이 폭염일 때 비행기를 탄 이모가 우리 동네에 도착했을 땐 아침 기온 12도에 낮 기온도 최대 20도였다. 브레멘 구경에 나선 날은 비 오고 바람 불어서 바람막이 잠바가 꼭 필요했고 언니가 가져온 여름옷을 거의 못 입을 정도로 쌀쌀했다. 브레멘만 그런 건 아니고 베를린도 해가 났다 들어갔다 비가 왔다 개는 전형적인 독일 날씨다. 유럽이 폭염이라는 뉴스가 무색하게 베를린의 낮 기온도 최대 21도에서 24도 사이로 선선했고. 2주 전만 해도 독일이 30도였는데 그사이 날씨가 이렇게 변덕이다.
2년 만에 만났고 짧은 일정인만큼 밀도 높게 만난다. 한국에 살아도 이렇게 진하게 8박 9일을 함께 먹고 자는 건 어려우니까. 나흘 밤은 우리 집에서 자고 나흘은 베를린 여행으로 보냈다. 우리가 작년에 갔던 스테이크 집에 이모랑 함께 오게 될 줄이야. 함께 밥을 먹고 카페에 앉아 숨 쉬는 것처럼 편한 모국어로 이야기하며 여행지에서 사진을 찍는다. 딸 말대로 시간이 갈수록 헤어질 날이 가까워지지만, 그래서 딸은 슬플 거라며 이모가 온 날부터 걱정했지만 지금 이 순간을 즐기는 수밖에. 돌아갈 날이 다가올수록 헤어질 시간은 이모를 기다린 날보다 몇 배나 빠른 속도로 왔지만 다행히 테겔 공항에서 딸은 많이 울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