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유진 Jul 16. 2019

이모가 있다는 건 축복

짧지만 밀도 높은 만남

아이에게 이모가 있다는 건 축복이다. 그것도 한 명도 아니고 네 명이나! 때로는 엄마가 줄 수 없는 사랑을 듬뿍 주기도 하니까. 고모는 없고 삼촌은 있지만 별로 교류가 없어서 우리 집 오누이는 삼촌 사랑은 느낄 틈이 없었다. 아무래도 자매가 가까운 만큼 그게 자식에게까지 흘러가나 보다. 네 명의 이모가 성격이나 스타일뿐 아니라 음식 솜씨와 통화하는 형태도 다르다. 오누이가 말하길, 큰 이모는 일상 반찬을 둘째 이모는 잔치 음식을 넷째 이모는 간식을 잘 만드신단다. 그리고 셋째 이모는 주로 잘 시켜주신다고 해서 빵 터졌다. 그에 비에 엄마는 골고루 잘하는 편이지만 이모들보다는 전체적으로 레벨 1 정도가 낮다는 일곱 살 딸의 예리함에 바로 수긍했다.

 

다름의 스펙트럼이 얼마나 넓냐면 장거리 여행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한 이모는 독일에 갈 경비가 있으면 그 돈을 보내겠단다. 그 이모 성격으로 봐서 충분히 그럴만하다고 웃었다. 가장 자주 통화하는 둘째 이모는 서로의 일상을 거의 공유하는데 우리 집에 올 때 바리바리 싸올 리스트를 쫘악 뽑아놓고 이왕이면 길게 두루두루 둘러봐야지 하며 때를 기다리는 중이다. 용건이 있을 때만 통화하는 셋째 이모는 주로 화상 통화를 하는데 돈 열심히 벌어서 재인이 보러 가겠노라고 공수표를 많이 날렸다. 마음은 원이로되 일이 많아 상황이 여의치 않는 이모는 기회가 될 때마다 딸이 좋아하는 선물을 챙긴다. 

 

이모 서열순으로 방문을 짠 건 아닌데 어쩌다 보니 실행력 높은 큰 이모가 제일 먼저 우리 집에 왔다. 결혼한 딸과 함께. 우리는 이모 오기 전 백일부터 날짜를 세었는데 날 잡아두니 시간이 또 금방 가서 그날은 왔다. 오누이는 이모가 브레멘 공항에 도착하는 일요일 오전 9시까지도 믿기지 않는다는 둥 꿈만 갔다고 했는데 기쁨의 상봉을 했다. 기다리는 즐거움을 듬뿍 지나 이모와 언니를 만난 거다. 오랜만에 사람도 북적북적 한국말도 찰랑찰랑 흘러넘친다. 


한국이 폭염일 때 비행기를 탄 이모가 우리 동네에 도착했을 땐 아침 기온 12도에 낮 기온도 최대 20도였다. 브레멘 구경에 나선 날은 비 오고 바람 불어서 바람막이 잠바가 꼭 필요했고 언니가 가져온 여름옷을 거의 못 입을 정도로 쌀쌀했다. 브레멘만 그런 건 아니고 베를린도 해가 났다 들어갔다 비가 왔다 개는 전형적인 독일 날씨다. 유럽이 폭염이라는 뉴스가 무색하게 베를린의 낮 기온도 최대 21도에서 24도 사이로 선선했고. 2주 전만 해도 독일이 30도였는데 그사이 날씨가 이렇게 변덕이다. 

 

2년 만에 만났고 짧은 일정인만큼 밀도 높게 만난다. 한국에 살아도 이렇게 진하게 8 9일을 함께 먹고 자는 건 어려우니까. 나흘 밤은 우리 집에서 자고 나흘은 베를린 여행으로 보냈다. 우리가 작년에 갔던 스테이크 집에 이모랑 함께 오게 될 줄이야. 함께 밥을 먹고 카페에 앉아 숨 쉬는 것처럼 편한 모국어로 이야기하며 여행지에서 사진을 찍는다. 딸 말대로 시간이 갈수록 헤어질 날이 가까워지지만, 그래서 딸은 슬플 거라며 이모가 온 날부터 걱정했지만 지금 이 순간을 즐기는 수밖에. 돌아갈 날이 다가올수록 헤어질 시간은 이모를 기다린 날보다 몇 배나 빠른 속도로 왔지만 다행히 테겔 공항에서 딸은 많이 울진 않았다.   

매거진의 이전글 암스테르담, 고흐 박물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