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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마데이나 Feb 14. 2024

비오는 두바이 공원에 초대합니다

두바이 호수공원, 알 바샤 폰즈 파크


"장화, 우산 빼고 다 가지고 오세요"

두바이에 무엇을 가져가야 하냐는 나의 질문에, 먼저 두바이에 살고 계셨던 분의 대답이었다.

아니다.

장화와 우산도 챙겨야 한다.

두바이에도 비는 온다. 횟수가 적을 뿐.



오늘은 두바이에 온 뒤, 여섯 번째 비가 내린 날이다. 그것도 학교 안 가는 주말 아침. 장대비도 아니고 보슬보슬 이슬비에, 해도 나지 않았다. 바깥 기온은 16도. 일요일에도 새벽 기상이 몸에 밴 아이들은 이미 일어난 지 오래다. 지체할 이유가 없다.


나가자.

오는 두바이의 공원으로!


한국에서 장마철이면 우리집 꼬맹이들은 우비에 장화를 신고 집앞에서 첨벙첨벙 신나게들 놀았다. 놀아주기 힘들어서 그렇게 놀리기도 했지만, 언제 또 저렇게 웅덩이에서 첨벙첨벙 뛰면서 놀겠는가? 하는 마음으로 비오는 날이면, 어린이집 하원 시간에 맞춰 장화, 우비, 수건을 양손 가득 들고 기다렸다. 이렇게 비가 잘 오지 않는 곳으로 올 줄 알았으면 그때 좀 더 많이 놀아둘걸. 괜스레 아쉽다.

한국에서의 꼬맹이들


하지만 두바이에도 비는 온다. 배수구가 많지 않아, 펌프카가 와서 물을 뺄 때까지는 비가 조금만 와도 길에 물이 찰랑거린다. 그때마다 학교는 휴교를 하고, 물은 많으니 물웅덩이 놀이에 제격이다.

강수량 12mm에 이렇게 물웅덩이가 생겼다


오늘은 아빠까지 있는 주말이니 금상첨화. 어제 세차했다는 아빠의 투정을 듣는 둥 마는 둥 우비를 챙겨 차에 올랐다. 목적지는 알 바샤 폰드 파크 Al Barsha Pond Park. 잠실의 석촌호수같이 큰 호수를 끼고 있는, 커다란 호수공원이다.


나도 이 공원은 처음이다. 남편이 아이들과 한 번 다녀온 후 그 한적함이 좋아 한 번 가자고 몇 번을 얘기했지만, 이제야 그것도 이렇게 비가 부슬부슬 오는 날에야 가게 되었다. 지도에선 커 보이지 않았는데, 오리배까지 있는 걸 보니 꽤 큰 호수공원이었다.

맑은 날, 푸르른 알 바샤 폰드


두바이 오기 전, 두바이엔 사막과 고층건물뿐인 줄 알았다. 하지만 '사람의 도시'답게, 두바이 거주 지역엔 작든 크든 옥상에라도 푸르른 공원이 많다. 더운 날씨에도 급수가 가능한  호스와 거의 매일의 조경 관리로, 소나무도 없는데 사시사철 푸르른 곳이 두바이다.

이렇게 급수를 위한 호스가 모든 나무, 꽃에 있다
언제나 푸르른 두바이


그래서 어디를 가도 공원을 둘러보는 재미가 있다. 자연적인 것은 없고, 모두 사람의 손에 키워진 나무와 꽃들이지만, 조경이라 함이 원래 또 가꾸면 티가 나는 법. 어딜 가나 비슷하다는 단점에도 불구하고, 어딜 가도 깔끔하고 보기 좋다.

알 쿠아즈 폰드 파크 Al quoz pond park
알 카잔 파크 Al khazan park
두바이 힐즈 파크 Dubai Hills Park

아이들은 비가 오든지 말든지, 우비를 입고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처음 만난 친구와 놀이터에서 첨벙거리며 까르륵 거린다. 말은 못 했어도 아이들도 한국의 많은 것이 그리웠을 터, 오랜만에 한국식 장마철 놀이에 신이 났다.


이 공원엔 커다란 호숫가 조깅코스가 잘 되어있어,  나 역시 빗소리를 들으며 걷는 기분이 정말 좋았다. 황사로 가득했던 다음날 내리는 봄비처럼 시원하기도 하고, 뭔가 답답했던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기도 했다.

흐려서 더 좋은 알 바샤 폰드


첫 아이 육아에 허덕이던 어느 비오는 주말 아침, 아이를 남편에게 맡기고 혼자 동네 공원을 산책하던  년 전 한국에서 나의 모습도 생각나고, 모처럼 한국 동네에 와있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 한국에서도 퇴사 후 마음은 공허했고, 육아는 힘들었고, 늘 고민은 있었다. 두바이라서가 아니라 내 마음이 불안정했기 때문에 두바이라는 환경 변화가 크게 다가왔던 것이다. 이제는 두바이의 겨울비를 보며, 반가움을, 시원함을 느낄 수 있는 여유가 조금은 생긴 듯했다. 시간의 힘이 이리도 크다. 아마 또 몇 년이 지나면 한국으로 돌아가서의 적응을 걱정하고 있겠지.



혼자 감상에 젖어있는 것도 잠시. 빗줄기가 거세지면서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잠깐이지만 겨울비, 두바이, 초록초록한 공원. 이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삼각편대가 오늘 하루의 시작을 특별하게 만들어 주었다. 이제 집에 가자.



나는 지금까지 힘들 때면, 맘이 흐린 날 혹은 내 인생에 비가 내린다라고 표현을 썼다.


하지만 두바이에서 비는 늘 가뭄에 단비 같은 존재다. 운전 걱정만 아니라면, 무더위를, 모래바람을 씻어내 줄 빗줄기가 반갑지 않을 이유가 없다. 해 없이 흐린 날이라고? 그 또한 시원하니 달갑다. 이렇게 희소성에 따라 같은 날씨도 다른 의미를 갖는다니.  온다고? What a lovely day, isn't it?


그리고 바라건대, 이 꼬맹이들이 나중에 어른이 되었을 때, 비온다고 '당연하게' 우울해하거나, 가라앉지 말고 두바이에서 반가웠던 비오는 아침, 엄마아빠와의 공원산책을 떠올리면서, 씨익 웃으며 조금이라도 싱그러운 하루를 보냈으면 한다. 엄마아빠도 그럴 테니.


다음번 비오는 날엔, 두바이에서 또 어느 공원에 가볼까?


마이 스윗 두바이, 비오는 날 두바이의 호수 공원,  알 바샤 폰즈 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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