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바이는 한국처럼 집주소에 따라 학교를 배정받는 게 아니니, 친구들 사는 곳도 다 제각각이다. 그래서 플레이데이트 playdate, 즉 부모들이 놀이 약속을 잡지 않으면 우연히 놀이터에서 만나는 일은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두바이에 온 지 한 달째 되는 날, 큰 아이의 반 전체가 모이는 플레이 데이트이자, 두바이에서 우리의 첫 번째 플레이 데이트가 있었다. 정말 가기 싫었지만, 아이의 친구를 만들어 줘야 한다는 사명감에 용기를 냈다.
너무 떨려서 몇 시간부터 준비를 끝내고, 모임장소인 아라비안 랜치스 Arabian Ranches 빌라 단지 놀이터에 도착했다. 영국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빌라 단지라 그런지 이국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늘 '하우 아 유'만 했던 다른 엄마들과 어색한 껴안기 인사와 악수를 거쳐 아이들은 놀이터로 뛰어 나갔고, 벤치에 앉아 엄마들은 일상적인 대화를 시작했다.
영어 못하는 사람에게 제일 어려운 게 바로 이런 일상대화인데, 무슨 말을 하겠는가? 요리조리 피하고 싶었지만, 결국엔 걸리고 말았다.
"두바이는 살기 어때?"
아싸. 미리 답변을 준비한 질문이다.
"일단 날씨가 정말 좋아. 하지만 새벽에 도시락 싸는 건 너무 힘들어. 한국은 유치원부터 모든 학교에서 영양 좋고 맛있는 급식을 제공해 주거든."
나름 공감을 바라며 준비한 꽤 마음에 드는 답변이었다. 하지만 휴고의 엄마인 호주엄마 미셸이 눈썹을 찡그리며 물었다.
"그러면 모든 아이들이 똑같은 밥을 먹어? 왜?"
미처 준비하지 못한 질문이다.
'왜?'라니. 급식 주니까 급식 먹는 건데.
이유를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뭔가 한국어였다면 이런저런 이유를 생각해냈겠지만, 영어로 얘기하자니 눈앞이 캄캄해졌다.
"한국 음식이 정말 맛있어."
동문서답도 이런 동문서답이 없다.
정답이 있는 대화도 아니었는데, 얼굴이 화끈거렸다. 몇 번의 어색한 대화가 끝나고 아이를 돌아보니, 저 녀석도 엄마만큼 친구들이 낯선 건지 잘 어울리지 못하고 계속 밖으로만 돌았다. 마음이 잘 맞는 가족을 만나고 모두가 웃고 있던 영화 속 아이들의 생일파티같은 장면은 어디 가고, 빙빙 도는 아들과 영어 잘 못하는 엄마뿐이라니. 그것이 첫 번째 플레이데이트의 슬픈 결말이었다.
부끄럽게도 집으로 오는 길에 눈물이 펑펑 났다. 영어공부를 게을리한 내 자신도 밉고, 두바이로 데리고 온 남편도 밉고, 아이들에게도 우는 엄마의 모습을 보여 미안했다. 한국으로 다시 돌아갈까하고 진지하게 고민도 했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또 힘내서 엄마 생활 해내야지. 허한 마음에, 두바이 한식당에 들러 갈비탕을 아주 거하게 먹었다.
두바이는 다름이 공존하는 곳이다. 180개가 넘는 나라에서 모였으니, 그들의 문화와 생활방식이 모두 다를 수밖에 없다. 같은 한국 사람들이 모인 한국 초등학교 한 반에서도 맞는 사람이 있고, 안 맞는 사람이 있는데, 살던 나라가, 문화가 다른 사람들이 모였는데, 어찌 모든 생각이 같을 수가 있으랴. 누구를 따라 할 이유도, 꼭 내 생각을 관철시킬 필요도 없다. 대세라는 것도 없고, 타인의 문화를 존중하되, 스스로의 기준에 따라 행동하면 된다. 첫 번째 플레이데이트, 그것도 단체 플레이데이트에서 나와 생각이 달랐다고, 말이 잘 안 통했다는 이유로 슬퍼할 일도, 부끄러워할 일도 아니었다. 여기는 다름이 일상인 두바이가 아닌가. 그걸 아는 데까지 나 역시 꽤 시간이 걸렸다.
한 명이면 충분하다!
엄마든 아이든, 국적을 떠나 서로의 다름이 매력이 될수있는 딱 한 명. 그걸로 족하다. 우리는 이미 알고있다. 회식, 워크숍 갔다고 모두가 친해지는 건 아니라는 것을. 진짜 친하고 싶으면 1시간의 점심시간, 아니 30분의 커피타임이 더 효과적인 것처럼, 아이들, 특히 말도 잘 안 통하는 외국아이들과의 만남이라면 1:1이 훨씬 모든 면에서 효과적이다.
그날 이후로, 나는 단체 플레이데이트에 꼭 가지는않는다. 아이가 함께 놀고 싶은 친구가 있다면, 단체가 아닌 1:1 플레이데이트로, 서로 다른 국적과 문화를 신기해하는 카말, 루카, 에이바, 벤지, 알렉산더 등 엄마와 아이 모두에게 좋은 두바이 친구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여전히 만나자는 약속을 잡는 일련의 과정은 심장이 요동칠 정도로 떨리지만, 8개월 전 단체 플레이데이트를 생각하면 이건 일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