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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마데이나 Mar 05. 2024

나는야 두바이 초보운전수

장롱면허 15년 차의 두바이에서 운전 마스터하기


거친 두바이 사막을 배경으로, 멋지게 선글라스를 끼고, 창문을 내리고 한쪽 팔을 걸친 채, 바람을 가르며 여유 있게 속도를 낸다. 에잇, 나에겐 꿈같은 일이다.



"여보, 여기 차 " 


남편이 나에 대한 사랑이 식었나? 하고 의구심이 들었다. 두바이에 온 지 겨우 6일 차인 장롱면허 겁쟁이 아내에게, 그것도 꼬맹이 둘까지 얹어서 학교, 집, 학교, 집 하루 총 56km의 운전을 맡기다니.


한국에서는 꽤 다정한 남편이었는데, 두바이에 먼저 와 있던 1달 동안 무슨 일이라도 있었던 건지, 갑자기 스파르타식 남편이 되어 있었다.


나는 한국에서도 힘든 일은 어떻게든 피해 갔다. 꼼수력으로 치면 고수 중의 고수였다. 하지만 키를 내미는 남편 앞에선 머리가 하얘졌다. 두바이 잔머리 하수 중의 하수가 바로 나다.


심지어 여기 차들은 블랙박스도 없고, 사고 났을 때 10분 만에 달려오는 보험사도 없다. 두바이 폴리스 앱을 깔고, 사고가 나면 앱으로 신고를 해야 한다.

두바이 필수품인 두바이 폴리스 앱

출발하기도 전에, 사고가 났을 때 중동 아저씨들과 실랑이하고 있을 나를 생각하니 눈앞이 아찔하다. '슈퍼카랑 사고나면 어쩌지? 차번호가 두 자리면 왕족이라던데.' 쓸데없는 생각은 접어두고, 일단 050으로 시작하는 남편의 두바이 전화번호만 제대로 기억하자. 



핸들은 멈추나 서나 꽉 잡는다.

카시트는 제대로 되었는지, 아이들 안전벨트는 단단히 꽂혔는지 2번, 3번 확인했다. ~하고  호흡을 했다.


깜빡이는 왼쪽, 두바이에서 잘 쓸 일은 없겠지만 와이퍼는 오른쪽. 웨이즈 Waze라는 내비게이션 앱을 휴대폰으로 킨 후 자동차에 연결했다. 아이들 학교 이름을 치니 14km, 24분.


이제 진짜 출발이다.




아이들 긴장 안 시킨다고 나름 한국 인기동요인 '바나나차차'도 틀고 "엄마도 운전 잘해"라고 얘기를 했지만, 꼬맹이들도 눈치는 있는지, 어째 평소와 달리 얌전하다. 귀신같은 녀석들.


두바이에서 흔한 일방향 8차선 도로

자동차 게임 속에 들어오면 이런 기분일까?


나는 표지판대로 100km/h 이하로, 솔직히는 시속 80km 가고 있는데 나만 빼고 모두 과속을 하는 건지 일방향 8차선을 종횡무진하며 좌우로 쌩쌩 달려가는 차들을 보며 내가 운전을 하는 건지, 게임 속에 들어와 있는 건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100이라고 쓰고, 120이라고 읽는다

 정말 내 차를 들이받을 것처럼 뒤에  붙어오는 차들 때문에 심장이 쫄깃쫄깃해졌다.


'나는 속도 지켜가는 거라고!

어차피 나 안 가면 너도 못 간다!'


했지만 보란 듯이 나를 쌩쌩 추월해서 지나가는 차들 때문에 혼이 나갈 것 같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두바이에선 표지판보다 +20km/h 까지는 속도 제한에 걸리지 않는다. 시속 120km까지 달릴 수 있는 곳에서 시속 80km도 안 되게 달렸으니 뒤에 있던 차들은 얼마나 답답했을까? 천천히 가는 게 능사는 아니었다.

 


다행히 두바이 운전자들은 복잡한 다운타운 같은 곳이 아니면 경적을 거의 울리지 않아 나에게 빵빵 거리지는 않았다. 대신 이들의 경고는 상향등이다. 반대로 끼어드는 차에게 들어오라고 양보를 해줄때도 똑같이 상향등을 킨다. 경고와 양보의 두가지 의미로 가는 내내 아침부터 상향등 경고를 꽤 많이 받았다.


늘 무서운 회전교차로

난이도 최상인 동그란 회전 교차로를 엉금엉금 통과 후 어쨌든 학교에 도착했다. 두바이는 대부분 차량 통학이라 학교 앞이 주차 전쟁이다. 이런 상황에도 경적소리 한번 없다.

학교앞에 쭉 늘어선 차들


학교 안전요원들의 도움을 받으며 겨우 주차를 끝내자, 아이들이 뒤에서 박수를 쳤다. 말은 안 했어도 초보운전 엄마 때문에 꽤 무서웠나 보다. 덕분에 긴장했던 나도 웃음이 터졌다. 


어쨌든 해냈다!

박수받으며 주차 완료.  

하지만 한국 내비게이션에 비할 바 못 되는 이곳 내비게이션이, 돌아오는 길을 출근길 꽉 막히는 길로 안내를 해주어 집까지 1시간이 넘게 걸렸다.

두바이에서 가장 막히는 길중의 하나인 Hessa Street

오히려 속도는 안내도 되니 마음이 편했다. 두바이 도로 한복판에서 성시경 노래를 들으며 운전대 꼭 잡고 도로에 갇혀있는 내 모습이 뭔가 비현실적이었다.


사고 안 났으면 됐다. 무서움 반, 정신없음 반. 아이들의 박수갈채를 받았던 두바이 첫 운전은 그렇게 끝이 났다.

집앞 도로까지 무사히 오면 드디어 맘이 놓인다

해외 생활과 운전은

요행이 없다는 점에서 매우 비슷하다.


투여한 시간이 배신하지 않는다는 것도 운전과 해외생활의 공통점이다. 그냥 부딪히고, 계속 해내면서 시간의 힘을 빌어 익숙해지는 수밖에 길이 없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왕복 2시간, 56km 달리며 두바이 운전 생활, 그리고 두바이의 일상을 몸에 익혀간다. 창문에 팔을 걸친 채 두바이의 모래 바람을 가르며 두바이의 최대속도제한인 시속 140km까지 달려보는 그날이 오긴 오겠지?



별책부록  : 두바이 초보운전수의 두바이 운전 계명 

1. 최대 속도는 표지판의 + 20km/h까지
아부다비를 제외한 모든 UAE에서는 속도제한 표지판보다 초과 시속 20km까지는 허용된다.
110이라고 쓰여있다고 시속 110km로 달리면   시속 130km의 차량들이 상향등키고 달려오니 조심.


2. 최저속도를 조심하라

최고 속도만 있는게 아니라, 최저 속도도 있다

파란색 숫자 표지판은 60km/h 를 넘겨 달리라는 것이다. 벌금도 있으니 특히 조심


3.벌금이 상상을 초월한다

한국에서 몇만원하던 벌금을 생각하면 안된다. 제한속도보다 시속 30km만 넘어도 20만원 벌금이다. 특히 Tram 표시가 있는곳에는 빨간불에 절대로 들어가면 안 된다. 적게는 70만원에서 많게는 천만원까지다. 카메라가 생각보다 많다.


4. 회전교차로에서는 무조건 왼쪽이 우선
왼쪽에서 오는 차량이 무조건 우선이다. 그리고 차분히 기다리면 언제든 들어갈 기회가 온다. 급히 끼어들지 말자.

5. 과속방지턱에선 모두가 0km/h

쌩쌩 달리던 모든 차들이 과속 방지턱에선 순한 양이 된다. 벌금이 있는 것도 아닌데 신기하다. 앞차의 급정거 위험이 있으니 미리미리 속도를 줄이자.

6. 경적은 꼭 필요할 때만

경적대신 상향등으로 경고하는 사람들. 그래서 나조차도 누가 경적을 울리면 굉장히 기분이 나빠진다. 진짜 위험하거나 꼭 필요할 때가 아니면 경적은 쓰지 말자. 싸움 난다.

7. 횡단보도는 무조건 보행자 우선

신호등은 많이 없지만, 횡단보도라면 보행자가 땅을 보며 걸어가도 될 정도로 모든 차가 선다. 꼭 지키자. 단, 무단횡단엔 차가 절대 서주지 않는다.


8. 초보라면 유료도로를 애용하자

두바이에 수많은 거대한 트럭들은 무료도로를 많이 이용한다. 크기가 어마어마해서 옆에만 가도 무섭다. 유료 도로에서는 큰트럭 보기가 힘드니, 통행료를 아끼지말고 유료도로로 가자


9. 두바이 폴리스 은 꼭 깔자 

블랙박스도 없으니 섣불리 니가 잘못했네, 내가  잘못했네 하지말고, 사고가 나면 바로 앱으로 신고하자.  


10. 두바이에서는 운전을 못해도 잘 살 수 있다!

스쿨버스 시스템이 잘 되어있고, 빌라만큼 주상복합형 아파트가 많아, 차를 타지 않아도 생활에 전혀 불편함을 느끼지 않을 수도 있다. 그리고 우버, 카림 등의 택시와 드라이버 서비스가 잘 되어 있어 운전을 하지 않아도 충분히 살아갈 수 있다. 초보운전자들이여, 너무 걱정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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