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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마데이나 May 15. 2024

이러다 두바이에 김밥집을 내겠어

두바이 국제학교 도시락 이야기

며칠 전

둘째 아이의 같은 반 외국인 친구 엄마에게 메시지가 왔다.


Which seaweed do you use for her snack sushi?


엥? 뭔 스시인가 싶었는데,
아하, 그날 아이의 점심으로 보냈던 김밥 이야기였다.


이 엄마뿐만이 아니었다. 5살 꼬맹이들이 집에 와서 한국 친구의 Seaweed snack을 궁금해하고, 먹어보고 싶어 한다고 한 외국인 엄마들이 꽤 있었다.

김밥이라는 정확한 명칭은 몰라도, 우리에겐 특별할 것 없는 김밥이 두바이 아이들에게 인기라니. 뭔가 국위선양을 한 것 같고, 대단한 일을 해낸 기분이다.


그렇다.

나는 두바이에서 매주 김밥을 싼다.



급식이 그립다!


두바이에서 살면서
가장 힘든 점이 무엇이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나에게는 두 아이의 스낵과 런치, 총 4개의 새벽 도시락이었다.

한국에서도 음식을 예쁘게 꾸미는 것만 좋아했지, 부지런하게 재료를 준비하고, 요리를 하고, 뒷정리까지 하는 일련의 과정은 결혼 10년 차가 되어도 늘 서툴렀다.

그래서 늘 유치원 급식에 감동하고 감사하며 사는 엄마였는데, 해외에 나와 그 모든 걸 온전히 나 혼자, 그것도 새벽에 해내는 것이 쉽지가 않았다.


물론 지내보니, 두바이 국제 학교의 급식도 생각보다 나쁘지 않다. 한국 급식에 비할바는 못 되지만,  파스타, 피자, 샐러드, 샌드위치 등, 점심 한 끼로 먹기에 크게 무리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외에 나오니 뭔가 한 끼라도 더 아이들에게 한식을 먹여야겠다는 해맑은 사명감에, 매일은 아니더라도 일주일에 반 이상은 도시락을 싸주려고 노력을 했다.



그렇게 새벽잠 아껴가며 도시락을 싸준다고 해서 아이들이 무조건 잘 먹는 건 아니었다.


밥은 따뜻해야지 하며 보온도시락을 보냈더니, 어린아이들이라 뚜껑 여는데 시간이 걸려 밥 먹는 시간이 부족해 남기고, 그냥 도시락에 밥을 쌌더니, 더운 바깥날씨와 달리 강한 실내 에어컨 바람에 리얼 찬밥이 되어 맛이 없었다 하고,

주먹밥은 둘째가 남겨왔고, 가장 만만했던 볶음밥은 큰 아이가 많이 남겨왔다.


이것저것 시도 끝에 유일하게 둘 다 안 남기고 싹싹 빈통으로 가져오는 도시락 메뉴가 바로 김밥이다.


김에 밥만 돌돌 말은 진짜 김+밥이든, 맛살, 계란, 당근 꽉꽉 채운 김밥이든, 아이들은 김밥을 싸준 날은 밥풀하나 남김없이 다 먹었다.


그러니 어찌하랴.

나는 40도의 두바이에서 새벽 김밥을 싸기 시작했다.

새벽6시는 늘 바쁘다.


처음엔 김이 축축해졌다.


괜히 정성을 들인다고, 밥이며 재료며 다 새벽에 만들다, 밥을 식힐 시간이 충분치 않았고, 이로 인해 축축해진 김밥은 도무지 썰어지지가 않았다. 개중에서 그나마 모양을 갖춘 김밥들로 도시락을 보냈다. 새벽부터 가스불을 켰더니 온몸이 땀이었다.


두바이 새벽 라이프

타협을 하자.


모든 재료는 전날 준비.
한국보다 질긴 현지 시금치를 빼고,
상하지 않게, 물이 많이 생기는 오이를 빼고,
소금에 절인 당근을 볶아 단무지를 대신했다.

한국에서 가져온 소중한 김발


전날 해둔 밥은 미리 푸고, 참기름과 깨소금, 소금을 뿌려 섞어 두었고, 눅눅해지지 않게 냉동실에 넣어 두었던 김밥김과, 전날 볶아둔 맛살, 계란 지단, 당근을 꺼냈다. 가스불도 키지 않고, 말기만 하면 된다.


친정엄마가 싸주시던

계란, 햄, 어묵, 당근, 시금치, 우엉, 단무지까지

화려하디 화려했던 김밥이

단출한 두바이 김밥으로 변신을 했다.

초록색이 아쉽지만,
맛은 이 정도면 됐다 싶었다. 그리고 다행히 아이들의 도시락통이 깨끗하게 비워져 돌아왔다. 


이럴 때의 쾌감이란.


그래서 나는, 도시락 메뉴가 고민되는 날이면, 주저 없이 김밥을 준비한다.


늦잠을 자면 도시락김에 밥이랑 치즈만 넣고 돌돌 말아 충무김밥 흉내를 내면 됐으니, 시간에 쫓기는 두바이 새벽라이프에 아주 딱 맞는 메뉴다. 


역시 해외생활 행복의 열쇠는

현실과의 타협이다. 



김밥이 이렇게 우리의 두바이 삶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는 음식이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금커피를 즐길 줄 알았지, 김밥을 매주 이렇게 쌀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이제는 과장을 조금 보태서, 눈감고도 김밥을 쌀 수 있다. 두바이에서 영어는 안 늘고, 김밥싸는 솜씨만 늘었다. 이러다 돌아갈 때 쯤 두바이에 김밥집 차리는거 아닌가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한국의 급식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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