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받고 자란 티가 많이 나고, 늘 친구들을 챙깁니다. 영어 받아쓰기는 혼자 100% 정답률을 보이며, 언어에 뛰어난 소질을 보입니다."
좋은 게 좋은 거다라고 써주는 유치원 평가표였지만 집에서든 밖에서든 우리가 보기에도 큰아이는 그랬기에, 한국에서 상담이든, 평가든 늘 만족스러웠다. 그래서 우리는 두바이에서도 큰 아이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말이 빨랐던 만큼 한글, 영어 모두 습득이 빨랐다. 외국인들과도 스스럼없이 말하는 아이를 보고, 고슴도치 엄마는 내심 기대가 컸다.
아이의 교실
영국식 국제학교의 경우, 한 학년은 3학기로 이루어져 매 학기마다 평가서가 나온다. 아직 낯은 가리지만, 학습 측면에서는 나쁘지 않게 나오겠거니 싶었다.
그렇게 받아본 첫 평가표의 결과는?
5점 만점에 평균 1.4점
두바이 첫 성적표
수우미양가로 치면 모든 과목에서 가와 양의 향연이다. 한마디도 못하는 아랍어 점수와 영어점수가 다르지 않다. 심지어 노력점수도 평균 3점대였다. 아니, 국제학교라지만, 7살, 한국으로 치면 유치원인데 평가표가 이게 말이 되는가? 분명 오고 가면서 선생님과 인사를 나눌 땐 아이의 읽기가 뛰어나다고, 영어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성적표는 '가'라니. 6달 전 한국에서 받은 결과표와는 너무나 큰 차이였다.
한국 같았으면, 속상하지만 겸허히 결과를 받아들이고, 우리의 문제는 무엇인가 끙끙 앓았겠지만, 국제 학교는 엄마가 문제를 제기하지 않으면 그냥 묻힌다는 게 몇 달의 생활에서 느낀바이기에, 담임선생님께 뵙고 싶다는 연락을 했다. 우리는 결과에 너무 놀랐다고.
며칠뒤, 아이에게도 늘 따뜻했던 담임선생님은 걱정 가득한 한국인 엄마를 달래며,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말라고 말했다. 아이는 너무나 잘하고 있다고. 그리고 본인들의 초점은 현재가 아닌 발전정도 Progress 이기 때문에, 중간 학기 평가표는 아이의 목표설정 같은 거라 대부분 2점 또는 3점을 받는다고 했다. 물론 4점을 받는 경우도 있지만, 샘플을 보니 이거 원 대학생 글쓰기도 아니고, First, Second, finally 등 논리 정연하게 글을 썼고, 이 학교에서 중시하는 영어 필기체까지 완벽해 보였다. 또한 자신들도 채점표에 따라 하기 때문에, 아이가 모국어가 영어가 아니든, 온 지 한 달이 되었든 결과물로만 점수를 준다고 했다.
이게 문화차이인 건지, 아니면 우리 아이는 정말 여기에 안 맞는 아이인 건지 혼란스러웠다. 어찌 보면 어디 쓸데도 없는 유치원 성적표인데 왜 그렇게 속상했나 모르겠다. 마치 아이의 성적표가 우리의 몇달간의 두바이살이의 평가처럼 느껴져서 더 그랬다.그래도 선생님께 아이가 6개월 전 한국에서 받은 평가표와, 그의 노력에 대한 이야기를 전했고,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아이에게 좀 더 관대해질 수 있길 부탁했다. 그리고 또 허그와 인사.
집에 돌아와서 다시 성적표를 꺼내보았다. 다시 보니 점수칸은 아주 적었고, 성적표의 대부분을 다음 학기의 목표가 차지하고 있었다.
목표로 가득한 평가서
미술은 재료의 다양성을 이해하고, 더 다양한 재료를 써야 하고, 영어는 꼭 말로 해보고 써야 하고, 단어의 폭을 넓혀야 했고, 아랍어는 남의 도움 없이 자기소개를 아랍어로 하는 것이, 이번 평가표를 바탕으로 설정된 큰아이의 목표 Target였다.
관점의 차이다. 이 곳의 평가서는 현재의 장점보다는, 현재의 약점, 단점을 파악하고, 이를 바탕으로 목표를 설정하는 것이 목표였다. 내가 생각하는 평가서가 아니었다. 특별한 이슈가 있지 않은 이상, 아이의 장점 위주인 한국식 평가표에 익숙해서인가 여전히 공감은 잘 가지 않았다. 이름을 목표 보고서라고 했으면 이해가 가겠다. 두바이에 왔으니 두바이법을 따라야지 뭐.
그렇게 3개월이 지나 또 평가 시즌이 왔다. 아이의 평가표에서 이제 '가'는 보이지 않는다. 여전히 2~3점이 대부분이지만, 확실히 지난 학기보다 좋은 평가를 받았다. 적응의 결과일까, 항의의 결과일까. 아이는 정말 'Progress' 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