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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마데이나 Jun 13. 2024

두바이 드라이브스루 입문기

두바이에서 드라이브 스루로 커피 주문하기

나는 두바이 초보운전수다.


제대로 된 운전은 두바이에서 시작한, 장롱면허 15년 차인, 두바이 초보운전수에게 하고 싶은 일이 하나 있었다. 


바로

드라이브 스루 Drive-thru에서

커피 주문하기!



등록된 차량 수만 해도 183만대*가 넘는 두바이에선 더운 나라답게, 드라이브스루 카페가 많이 보인다.


카페에 앉아 느긋하게 커피를 즐기는 에미라티(두바이 현지인)의 특성상, 미국만큼은 드라이브 스루 매장이 많지는 않으나, 여름날 차에서 내리기도 힘들 정도의 더위와 외국인들의 끊임없는 유입으로, 드라이브 스루 카페들이 계속해서 생겨나고 있다.


운전 초보가 아닌 사람은 모를 것이다. 


드라이브 스루가

초보 운전수에게 얼마나 두려운 곳인지.

또 얼마나 성공해 보고 싶은 곳인지.


좁은 폭의 길,

90도로 꺾여있는 코너,

앞차, 뒤차와 다닥다닥 붙어있고,

브레이크와 엑셀을 번갈아 밟아야 하고,

조금이라도 각도를 잘못해서 그 좁은 폭에서 후진을 해야 하면 어떡하나,

커피 받는 창문에서 너무 떨어져 차를 세우면 어떡하나.


거기에 여기는 두바이니, 영어로 마이크에 주문을 해야 하는데, 행여나 나의 정직한 영어를 못 알아듣거나 해서 주문을 못하는 상황이 오는 건 아닌가?


하는 나의 소심한 두려움들이 모여, 두바이에 와서 운전을 시작한 지 몇 달이 지나도록 한 번을 이용하지 못했다.



그래서 아이들 학교 앞 5분 거리, 24시 스타벅스 드라이브스루 매장이 나에게는 그림의 떡이었다.


두바이 학교앞 스타벅스 드라이브 스루 매장


안 마시면 되는 거 아닌가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5시 반 기상해서 7시 반 아이들 내려주고 난 뒤, 차 안에서 한잔 하는 아이스라떼는 커피 그 이상의 힘이 있다.


그래서 나는 우습지만, 주차를 하고, 매장에 들어가 주문을 했다. 드라이브 스루 매장인데도, 주차를 하고 워크 스루 Walk-thru로 커피를 받아오던 사람이 누군가 했는데, 그게 바로 나다.


  긁히면 어떠냐는 두바이에서 전형적인 T형인 된 남편의 말에 늘 용기는 내보지만, 드라이브스루 진입로만 보면 나는 늘 작아져, 매번 주차를 했다.



그리고 드디어 때가 왔다.


아이들을 내려주고 막히는 학교 앞을 지나니 스타벅스가 보인다. 하필 주차 자리도 넉넉한 자리가 없어 드라이브 스루로 주문을 하거나, 커피를 포기하거나 두 가지 옵션뿐이었다. 날은 덥고, 그날따라 커피는 마시고 싶고, 아무래도 안 되겠다.


까짓것 해보자! 

그렇게 도전은 예기치 않게 시작되었다.



일단 좁은 곳은 늘 크게 돌라는 남편의 말에 따라 첫 진입구간은 무난하게 들어섰다.  앞차가 먼저 주문 중이라, 브레이크를 부서져라 꽉 밟고 서있었다. 드디어 나의 주문차례가 되었다. 급하게 나가지 않게 살짝 발을 뗐다.



"Welcome to Starbucks"


주문하라는 종업원의 목소리가 들리고,
나는 역시나 마이크에서 좀 떨어지게 차를 세워, 큰 소리로 " 아이스라떼" 외쳤고, 다행히 잘 알아들었는지, 화면에 메뉴와 금액이 정확히 떴다.


해냈다!


이제 잘 받기만 하면 된다.



90도 코너를 살살 돌아. 혹시나 앞차를 칠까 봐, 후진기어로 실수할까 봐, 조마조마하며 그 좁고 짧은 길에 몇 개나 있는 과속 방지턱을 덜컹 덜컹 넘어갔다. 그리고 드디어 커피를 받는 곳까지 왔다.


기어는 P로,
사이드 브레이크까지 채웠다.


커피를 밟다가 액셀이라도 밟을까 하여 기어는 P로 놓고, 사이드 브레이크까지 채웠다. 이게 참, 무슨 대단한 일이라고. 브레이크에 올린 오른쪽 발에 힘이 더 들어갔다

역시나, 초보답게, 커피를 받는 곳에서 멀찌감히 떨어지게 차를 세웠지만, 친절이 일상인 두바이 드라이브스루매장 직원들은 '이쯤이야 뭐', 하듯 가제트 로봇팔처럼 길게 팔을 뻗어 카드머신을 내 창문까지 닿게 했다.


그리고 드디어,

아이스라떼가 나의 손에 주어졌다.


나의 첫 드라이브스루 커피 주문이 성공한 순간이다.


이리 뿌듯할 수가!


'드라이브 스루'가 뭐 길래, 이리 호들갑인가? 남이 보기엔 별것도 아닌 것이지만, 운전도, 해외생활도 초보였던 나에겐, 무언가 해냈다는 성취감을 느끼게 해 준, 작지만 기억에 남는 순간이었다.



해외생활은 나의 약점들이, 못하는 것들이 여실히 드러난다. 하지만 또 반대로 생각하면, 한평생 바꿀 수 없다고, 할 수 없다고, 안 해도 된다고 생각했던 많은 것들을 억지로라도 하게 만든다. 


영어, 요리가 그랬고,  운전이 그러하다. 그리고 억지로지만, 이런 작은 해냄 경험들이 모이고 모여, 타지에서의 삶을 더 단단하게 해 준다. 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진다는 이 뻔하디 뻔한 속담을 이제야 제대로 느끼며 살고 있다.



그리고 오늘도 나는, 드라이브 스루에서 아이스라떼 한잔을 주문했다. 단, 이제 사이드 브레이크는 하지 않는다.  이 정도면 이제 초보운전수 딱지는 뗐다고 해도 되지 않을까?


*출처 :  Kulf news 202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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