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의 가장 친한 친구인 러시아에서 온 시마 Sima는 둘도 없는 이곳에서의 친구다. 등교 첫날, 영어 한마디도 못하고 교실에 들어간 둘째의 손을 잡아준 그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져 두바이에서 가장 친한 친구로 지내고 있다.
그런데 둘이 친해진 이유가 기가 막히다.
둘째가 학교에 간 첫날, 시마가 활짝 웃는 얼굴로 집에 와서 말했다고 한다.
"엄마, 드디어 우리 반에 나처럼 영어 못하는 애가 왔어."
이걸 웃을 수도 없고, 울 수도 없고. 지금이야 웃으면서 얘기하지만, 당시의 마음으로는 웃지 못할 시마와 둘째의 첫 만남 에피소드다.
비단, 국제학교 유치원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두바이에서는 나만 빼고, 대부분 영어를 잘하는, 진정한 영어마을이다.
두바이에 오기 전, 나는 아랍어 학습지라도 해야 하나 싶었다. 인사말은 '마하바 Marhaba', 고맙습니다는 '슈크란 Shukran ' 등 기본적인 단어 몇 가지는 기억을 하고 두바이 비행기에 올랐다. 그 시간에 영어 공부를 더 했어야 한다. 두바이에서는 '마하바'를 쓸 일보다 '굿모닝'을 쓸 일이 훨씬 많은 곳이다.
모든 간판에는 아랍어와 영어가 함께 쓰여있고, 어디서든 영어로 소통이 가능하다. 현지인들도 아랍어보다 영어를 더 많이 써서, 정부가 아랍어 활성화를 위해 고민을 할 정도다.
확실히 두바이는 중동국가 중에서도, 또 아랍에미리트 다른 도시들에 비해서도 중동색이 진하지 않은 곳이다. 매일 이슬람교 예배당인 모스크에서 들리는 기도 소리가 아니라면, 여기가 중동 사막 도시라는 걸 잊고 살 정도다.
정말 영어면 다 된다. 그저, 영어를 잘 못하는 내가 문제다.
나는 영어 시험 점수는 꽤 그럴듯한 성실한 학생이었지만, 외국인 앞에선 늘 얼음이 되는 전형적인 영어 울렁증 한국인이다. 그럴수록 노력을 했어야 했는데, 회사를 다니면서도 요리조리 영어를 잘 피해 다녔다. 퇴사와 함께 내가 영어를 볼 일은 넷플릭스 드라마뿐일 것 같았는데, 이렇게 두바이에서 영어로 살아나가고 있다.
차라리 아랍어만 통하는 나라였다면, 이 해외살이의 어설픔이 언어 때문이라고 할 텐데, 이리도 영어가 잘 통하는 나라라 핑계가 되지 않는다. 영어 공부를 안 한 내 탓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두바이는 아랍어는커녕, 영어를 잘 못해도 살아가는데 전혀 지장이 없는 곳이다.
가끔 너무 어려운 질문을 하고는, 대답에 뜸 들이는 나에게 "Never mind"를 외치는 몇몇의 콧대 높은 학교 엄마들을 예외로 하자.
두바이에서 만난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국적인들이 모여사는 공존의 도시답게, 내가 아무리 말도 안 되는 영어를 해도, 영어 잘 못하는 사람들을 언제나 봐 왔다는 듯이, 내 말을 정확하게 알아듣는 기막힌 묘기를 선보인다. 마트, 카페, 병원, 레스토랑 등 어디에서든 그랬다. 얼굴하나 찡그리지 않고, 마치 번역기가 귀에 달린 듯 분명 내가 제대로 표현을 안 해도, 정확히 이해를 한다.그러니 영어 실력이 늘 리가 있나. 두바이 입국 심사때 했던 영어 실력보다 진전이 없다.
워낙 많은 외국인을 학교에서 보다 보니, 울렁증은 어느 정도 사라졌지만, 울렁증이 사라진다고, 영어 실력이 느는 건 아니었다.
결핍과 의무감은 게으른 나를 변화시키는 가장 좋은 원동력인데, 영어 실력의 결핍은 아이들 담임 선생님과의 면담시간 외에는 느껴지지 않으니, 두바이에서 영어는 어째 아무래도 크게 늘 것 같지가 않다. 그나마 눈 마주치는 외국인들과 굿모닝을 하는 여유는 생겼으니, 이거라도 영어마을 두바이의 덕을 본 것이겠거니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