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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마그레이스 May 21. 2021

디트리히 본회퍼

타인을 위한 그리스도인으로 살 수 있을까(15)

아홉 번째 메시지 사랑 안에서 살아갈 수 있을까?     


고린도전서 131-3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앞으로 몇 주 동안 고린도전서 13장 말씀을 전하고자 합니다. 제가 이 말씀을 전하려는 첫 번째 이유는, 당시 고린도 교회와 마찬가지로 오늘날 우리 교회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말씀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아름답고 선한 일들이 교회 안에서 많이 일어난다 할지라도, 교회 지체들이 서로 사랑해야 한다는 사실이 불분명하다면, 그것이 어찌 그리스도의 교회라 하겠습니까? ‘서로 사랑하라’는 첫 계명이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교회는 교회 스스로 보기에도 이상할 것입니다. 게다가 세상 사람들에게는 어떻게 보이겠습니까? 초대교회가 이방인들에게 분명한 증거가 될 수 있었던 까닭이 무엇입니까주인과 노예 신분의 이웃혹은 원수처럼 지내던 형제 사이가 어느 날 갑자기 변화되어 더 이상 적대시하지 않을 뿐 아니라서로 도우며 살아가는 모습을 그들의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기 때문이 아닙니까그들이 그리스도인이 되었을 때 외적으로도 매우 분명한 변화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미 그리스도인이므로, 아무것도 변화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진실로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면, 우리에게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고 말하는 편이 옳지 않을까요? 오늘 본문 말씀을 토대로 교회는 심판대 앞에 서게 되지 않을까요? 우리가 다니는 교회 안에서 가능한 모든 역사가 일어난다 할지라도, 또한 선한 일을 수없이 행한다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제가 이 말씀을 전하려는 두 번째 이유는, 현재 독일 교회가 처한 특별한 상황을 직시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보려고 하든 그렇지 않든, 옳다고 여기든 그렇지 않든, 오늘날 독일 교회는 지난 수백년 이래 처음으로 치열한 믿음의 전투를 앞두고 있습니다. 이 싸움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유일한 주님이시오세상의 구주로 고백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내적으로든 외적으로든 신앙 고백을 지키기 위한 믿음의 투쟁에는 큰 시험이 도사리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즉 이러한 믿음의 투쟁에는 자기 확신의 시험자기 의와 독선의 시험이 있는데그 시험의 결과로 대적하는 사람에 대한 사랑이 없어지고 맙니다     


그러나 사랑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진실로 대적하는 사람을 이길 수 있겠습니까? 사랑을 통해서가 아니면, 어떠한 대적자도 진정으로 이길 수 없습니다.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23:34). 예수님의 이 용서의 말씀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굴복시키고 그 앞에 무릎 꿇게 했습니까아무리 격렬한 믿음의 싸움을 할지라도이 말씀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     


이제 제가 고린도전서 13장 말씀을 전하려는 세 번째 이유를 말씀드리겠습니다. 개신교는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의 능력과 승리를 확신 있게 전했고, 그 결과로 세상은 순전한 성경의 메시지를 다시 들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누가 이 믿음의 말씀을 올바로 이해하면서 듣고 있습니까? 믿음이란 이 세상 다른 모든 것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십계명 중 첫 계명에 대한 루터의 가르침. “우리는 세상 어떤 것보다 더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사랑하며 신뢰해야 한다.” 마르틴 루터의 소교리문답서, 1862년 소책자로 만들어진 이후 널리 보급됨-옮긴이].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란, 단지 우리에게 어려움이 생겼을 때 하나님을 찾으며 그분이 도와주실 것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이러한 자세로 믿는 것은 참으로 가련하고 약한 믿음일 뿐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하나님으로 인해 기뻐하고 하나님을 생각하며 즐거워하는 것을 말합니다하나님께 기도하는 시간하나님 앞에 있는 그 시간을 애타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기다리며하나님의 말씀 듣기를 사모하는 것입니다하나님을 근심하게 하는 것을 구하지 않고하나님 안에서 마냥 기뻐하는 것입니다그분은 하나님이시며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과 대화하며 더불어 살아가는 은혜를 받았기 때문에그 자체로 기뻐할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형제를 사랑하는 것에 대해 깨어 있다는 각성한 개신교는 이것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습니까? ‘그것은 경건주의라며 비꼬지 않고이 말씀을 올바로 들을 수 있겠습니까개신교가 아무리 오직 믿음만을 외치며 복음을 전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라는 말씀 아래 서야 하지 않겠습니까?     


지금 우리는 말씀의 거울 앞에서 타인에게로 시선을 돌릴 것이 아니라우리 자신을 들여다보며 이러한 사랑이 있는지 물어야 합니다겉보기에는 매우 불친절하고 이기적이며 괴짜로 고독한 인생을 살아가는 이웃 사람이사실은 위대한 사랑에 대한 동경이 더 큰지 누가 알겠습니까얼음같이 차가운 그의 마음이 녹아서 자유로워지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릴 뿐오히려 그가 위대한 사랑에 대해 더 많이 아는지 누가 알겠습니까어쩌면 그 사람이 하나님과 형제들에게 사랑으로 다가가는데 우리의 가식적인 친절과 그에 대해 수군거리는 말이 장애가 되는지 누가 알겠습니까그러므로 우리는 말씀 앞에서 진실로 우리 자신을 돌아보며하나님이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메시지는 사실 매우 단순합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사랑이 있으면 인생의 의미와 가치가 있고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며 정말이지 아무 의미나 가치가 없다는 것입니다한 사람의 인생은 얼마나 많이 사랑하느냐에 따라 그 가치가 결정됩니다다른 모든 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진실로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가 얼마나 악한 사람인지 아니면 선한 사람인지, 그가 얼마나 위대한 사람인지 아니면 비천한 사람인지 따위는 전혀 중요하지 않고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오직 한 가지 사실즉 우리에게 사랑이 있는지에 대해 물을 뿐입니다.      


아마 우리 가운데 대부분은 어떤 사람의 무덤 앞에 무덤덤한 심정으로 서 있었던 적이 있을 것입니다. 그 사람의 인생이 얼마나 가련하고 무의미했는가를 생각하며 마음이 답답했을 것입니다. 일평생 수많은 시간과 힘을 안타깝게 낭비하고 죽음을 맞이한 사람의 무덤 앞에서 마음이 갑갑했을 것입니다. 그가 사랑했던 사람도 없고, 그를 사랑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그의 마지막을 슬퍼하며 눈물을 흘리는 사람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는 매우 인색한 구두쇠였고, 시기심에 사로잡힌 사람이었습니다. 폭군인 그는 자신밖에 몰랐으며, 오직 자신만을 위해 살았습니다. 그는 다른 사람들을 미워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그의 행복을 가로막는 방해꾼으로 보였습니다. 그는 결코 행복을 찾지 못했으며, 외롭게 홀로 남게 되었습니다. 영원한 나라에서도 그는 혼자일까요? 그의 무덤만큼 우리를 경악하게 만드는 것이 또 있을까요? 그의 무덤은 오늘 본문 말씀에 대한 아주 단순하면서도 생생하게 살아 있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     

아마 우리는 어느 이름 없는 어머니나 신실한 아버지, 행복한 아이가 묻혀 있는 무덤도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 무덤 주위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고인의 사랑을 기억하며 서 있습니다. 그들은 서로를 알지 못하지만, 모두 다 그곳에 왜 왔는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 자리에서 우리는 입을 열어 고인의 인생에서 그 영광을 드러낸 사랑을 칭송해 마지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인생에서 이런 일들을 아주 쉽게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이 독선적이라고 여겨질 만큼 사랑을 절대적으로 칭송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랑 없는 인생은 정말로 전혀 살 만한 가치가 없습니다. 그러나 사랑이 있는 곳에는 인생의 의미가 충분합니다. 사랑 앞에서 다른 모든 것들은 중요하지 않습니다행복과 불행이 무엇이며가난과 부가 무엇입니까명예와 치욕이 무엇이며고향과 나그네 인생이 무엇입니까사랑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에게 삶과 죽음은 무엇입니까그들에게는 이 모든 것이 아무런 구별이 없습니다행복과 불행도가난과 부도명예와 치욕도고향과 나그네 인생도삶과 죽음도그들에게는 단지 더욱 강하고 순전하며 완전하게 사랑하도록 할 뿐입니다     


사랑은 모든 차이를 뛰어넘고, 모든 차이보다 선행하며, 모든 차이 속에서도 유일한 것입니다. 사랑은 마치 죽음처럼 강합니다사랑 앞에서는 다른 모든 것들이 초라해집니다. 외관상 위대하게 보이던 모든 것들이 가련하고 초라한 모습으로 허물어지고 사라져 버립니다. 사랑 안에서 살아가는 삶 앞에서 명예와 명성 따위가 무엇이며, 영화를 누리고 희희낙락하며 사는 삶이 도대체 무엇이겠습니까? 이러한 질문은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경건과 도덕, 훈련과 헌신, 절제의 삶이 사랑 안에서 행해지지 않는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우리 앞에 세워진 인간상은 이렇습니다. 경건을 향한 진지함과 능력, 헌신과 열심히라는 측면에서 우리가 자랑스러워하고, 어쩌면 창조주도 자랑스러워할 것 같은 사람입니다. 우리는 경외시모가 존경심이 가득한 마음으로 그들을 우러러봅니다. 그들은 우리 같은 사람이 감히 흠잡을 수 없을 정도로 고매하고, 이미 인간의 경지를 초월한 사람이라 여기며 추앙해 마지않을 것입니다. 한마디로 그들은 위대하고 고귀하며 외로운 인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품격과 경건의 경지에 이른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도 사랑이 없으면이라는 이 말씀 앞에서 가차없이 공격을 받고 무너지고 맙니다이 광경은 놀랍기 그지없습니다우리 눈에는 모든 것을 다 가진 것처럼 보이던 그들이 아무것도 아니며진리의 빛을 쏟아부으시는 하나님 앞에서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드러나는 광경을 보십시오온갖 능력과 고귀함 속에 감추어진 돌같이 차가운 그의 심장이 빛 되신 하나님 앞에서는 하나도 감취지지 못하고 백일하에 드러나고 맙니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무엇에 대해 말한다는 것입니까? 내게 거룩하고 중요한 것, 즉 내가 인생에서 진지하게 생각하는 것을 말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누구에게 말하겠습니까? 당연히 거룩한 일을 위해 얻고 싶은 사람, 이 소중한 것으로 인도하기 원하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다른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가장 거룩하고 위대한 것을 열정적으로 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느끼는 바를 말로 표현할 수 있는 재능을 받기라도 한 듯, 다른 사람들이 우리의 말을 말없이 수긍하도록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일을 정직하고 헌신적으로 행했다는 것입니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이 말씀 앞에서 우리는 마치 번개가 온몸을 마비시키고 파괴하는 듯한 전율을 느끼게 됩니다. 우리가 가장 거룩한 말을 한다고 해도, 우리의 마음과 사랑이 그 말속에 담겨 있지 않다면, 그 말이 부정하고 불경건하며 야비해질 수 있다는 것은 전혀 예기치 못한 일입니다. 우리가 진정한 사랑에서 떠나 자신만 사랑하고 자기 유익을 구한다면, 가장 깊은 내밀한 교제를 하도록 우리 인간에게 주신 말로 도리어 신성 모독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 즉 마음도 없고 영혼도 없이 속 빈 요란한 수다가 되고 공허한 요설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서로를 향한 우리의 말, 가장 거룩하고 가장 진실하며 가장 정직한 선언마저도, 심지어 사랑이 선서일지라도 공허한 요설에 불과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진지하고 경건한 말을 하는 사람을 사랑의 법정에 세우는 첫 번째 선고는,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라는 말입니다. 아마도 모세처럼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사람이나(출4:10), 입을 꽉 다물고 침묵하는 사람이, 오히려 사랑 없는 말을 하는 죄에서 자신을 구할지도 모릅니다. 이것이 첫 번째 경고입니다.    

  

단순히 경건한 말을 하는 사람보다 더 깊은 경지에 이른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이생과 내생의 비밀을 알고 인식하며, 하나님을 깊이 생각하고 하나님께 헌신하는 삶을 살며, 현재와 과거의 일에 몰두하여 미래의 일을 밝히 드러내는 사람일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이야말로 우리가 경외심을 느끼는 경건한 삶이 아닙니까? 이 사람이 진리를 깨닫고 인식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것들을 포기하며 희생했겠습니까?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이 말씀을 들으면, 우리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은 강렬한 열망에 사로잡히지 않습니까? 예언하는 능력이 내게 있다면, 어쩌면 모든 갈증이 해소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왜 나는 이 길로 가야 하고, 다른 사람은 저 길로 가야 하는지를 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나님이 우리를 어두운 길로 인도하시는 그 깊은 의미를 이 땅에서 이해할 수 있다면, 정말 엄청난 축복이 아닐까요? 그러나 본문 말씀은 이번에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라고 말합니다.   

   

사랑이 없는 지식과 인식, 진리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사랑이 없는 진리는 진리가 아닙니다. 진리는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이 없는 진리는 거짓일 뿐 아무것도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랑 안에서 진실을 말하라.” 자신의 이기심을 채우기 위한 진실이나 적대감을 품고 미움과 증오 속에서 말하는 진실(사실 그대로를 말하는 것)은 이미 진실이 아니라 거짓입니다진실은 하나님앞에 서게 하고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진실은 사랑이 명확하게 드러나는 것입니다그렇지 않다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아직 살펴보지 않은 짤막한 문장이 있는데, 그 문장에는 무시무시한 수수께끼가 들어 있습니다.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 여기에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라는 말은 무엇을 뜻합니까? 이 말씀 앞에서 우리 내면에 어떤 현이 켜집니까? 이것은 모든 믿음과 확신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까? 내 인생에 수많은 근심과 두려움이 있을지라도 하나님이 내 곁에 계신다는 확고부동한 믿음 아닙니까? 내일 일에 대해서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는 모든 믿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까? 우리의 삶이 다하는 날까지 이러한 믿음을 붙들고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이러한 믿음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라는 말씀 앞에서 여지없이 무너지고 맙니다.    

   

모든 믿음을 가지고 있어도 사랑이 없는 인간,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인간의 모습은 얼마나 수수께끼 같습니까? 우리가 깊이 들여다보아야 하는 인간의 이러한 모순은 끝이 보이지 않는 칠흑같이 캄캄한 심연입니다. 자기 자신만을 위한 이기적인 믿음자기 영광을 구하는 믿음하나님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위한 믿음입니다따지고 보면 불신앙에서 온 믿음 아닙니까하나님과 가까이 있다고 생각하지만실상은 그분을 멀리 떠나 있는 자신을 기만하고 속이는 지옥 같은 불신앙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해 주시기를 간구합니다오 하나님누가 이 곤고함에서 우리를 도울 수 있겠습니까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아무것도 의지할 수 없습니다. 점점 더 두렵고 절망스러워집니다. 하나님 없는 믿음에 더하여 사랑 없는 사랑의 행위까지 나타납니다. 사랑 없는 사랑의 행위는 겉으로는 사랑과 똑같아 보이지만 사랑과는 거리가 먼 사랑의 행위일 뿐입니다. 오직 사랑으로 할 수 있는 일즉 내가 가진 모든 것으로 가난한 자들을 구제하고 자신을 돌아보지 않는 희생적인 삶을 살지라도사랑이 아니라 자기 영광을 구하는 허영심으로 사랑의 행위를 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나의 모든 희생이 사실은 내 마음의 허영심을 채우기 위해서 하나님과 이웃을 기만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만일 그렇다면내게는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     


경건한 사람이 내놓을 수 있는 마지막 보루는 아마도 자신의 생명일 것입니다.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위해 기꺼이 자기 생명을 드리는 순교일 것입니다.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내 믿음의 진실함과 내 신앙을 죽음으로 증명할지라도, 하나님을 위해 죽는 것을 도리어 은혜라고 고백하며 순교자가 될지라도, 진실로 말하거니와 사랑이 없으면 아무런 유익이 없습니다. 생명을 내놓을 정도로 하나님을 사랑한 것처럼 보이지만실상은 그분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자기 자신과 순교자의 명성순교의 꿈만을 사랑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그렇다면 결국 순교자에게도 심판이 선고되고사랑은 그를 아무것도 아니라고 정죄하는 것입니다 

    

과연 누가 이 말씀을 이해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누가 이 말씀을 이해하지 못할까요? 이 말씀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사랑의 말을 하는 우리진리를 알고 있는 우리믿음과 행함이 있는 우리죽기까지 희생하는 우리의 삶은 자신을 위해서일 뿐사랑도 없고 하나님도 없습니다그리고 사랑이 없는 행위에는 하나님의 심판이 임한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까하나님은 사랑이시기에 우리의 온전하고 순전한 사랑만을 원할 뿐다른 것은 전혀 원하지 않으십니다     


사랑이 무엇입니까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사람에 대한 사랑이 무엇입니까사랑은 말이나 지식이 아닙니다사랑은 믿음이나 믿음의 행위나 삶의 희생이 아닙니다우리에게 이러한 사랑이 있습니까우리에게도 이미 심판이 선포되었습니까이제 우리는 사랑을 찾아 외칩니다사랑이신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이 우리를 찾아와 멸망의 심연에서 구해 주시기를 바랍니다모든 사랑의 하나님이 우리의 혼미한 마음에 오셔서 사랑으로 우리를 구원해 주시기를 간절히 구합니다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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