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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마그레이스 Jun 13. 2019

콩한쪽도나누며

수수한미미씨의소소한낙서

07122017

‘콩한쪽도 나눠먹자’.는 말을 참 좋아한다. 

지지리 궁상으로 살며, 내 한끼 먹기도 급급할 때, 자식에게 먹을 것을 양보하자고 말하며, 작고 보잘 것 없는 것이라도 나눠먹는 그런 우정이, 그런 이웃이, 그런 만남이 좋고 더 끌린다. 너랑 나랑 피차 일반인데 뭘. 너나 나나 사는거 똑같은 데 뭐. 그러면서. 서로의 빈 잔을 채우면서, 콩 한쪽도 나누는 우정이 더 그립고 더 사무친다.      

두 개의 질문

너는 그런 우정이 있니? 

너는 그러한 사람인가?     


첫 번째 대답

나는 그런 우정이 있다. 그런 우정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신.들.메

가난할 때 함께 웃고, 함께 울었던, 긴 시간 함께 지낸 세월이 그런 우정을 확신하게 한다. 이런 대목만 나오면 늘 생각나는 사람. 그래서 같이 살자고, 같이 공동체를 하자고 그~렇~게 애걸복걸 했건만, 그녀는 아무 대답을 하지 않았다. 내가 힘든가보다. 내 남편이자 내 베프 후니씨는 그때 억지로라도 했어야 했다고 말한다. 그런데 그렇게 억지로 떠밀려 올 그녀가 아니다. 나는 후니씨의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언젠가는...이라며 희망을 남겨두었으니, 기대하며 사는 것도 재미가 쏠쏠. 보고 있는가? 신.들.메        

   

두 번째 대답

누가 대답해주길 바란다. 나는 확신이 없다. 나 자신에겐. 

그러나 조금 퍼센트를 두는 건, 그렇게 살아온 할머니와 엄마 밑에서 보고 배운 게 있진 않을까? 라는 것.      

할머니는 19살때부터 반불구로 살아오셨다. (왼쪽손과 왼쪽발 모두 마비가 돼서 사용하지 못하셨다.) 중풍병에 걸려서. 그 때문에 그 당시 학교도 나오시고, 일본어도 할 줄 아는 소위 인텔리 집안의 인텥리 여성이었지만, 아주 작은 시골 마을 상놈 집안의 자식과 결혼을 했다. 뭐.. 그당시엔 흔한 사연들이지. 딸 다섯에, 아들 하나를 두시고, 장사를 하셨다. 할아버지는 가정사에 관심이 없으셨고, 딸 자식들은 공부해서 뭐하냐며 합격 통지서를 찢어버리고, 남의 집 살이에 보내시는 분이셨다고 한다. 그러나 할머니는 악착같이 자식들 교육 시키고, 어려운 사람 돕는 것도 열심히셨다고 한다. 언젠가 외삼촌의 고백을 들은 적이 있다. 아들을 군대에 보내고 면회에 가서 큰엄마가 면회왔다고 한다. 아들 챙피할까봐. 외삼촌은 술만 드시면 그 얘기를 하고 또 했다. 나도 할머니손에 자랐다. 빚쟁이 남편 만나서 아들셋에 나까지 키우기가 어려웠기 때문에, 엄마는 나를 태어난 지 백일 만에 할머니에게 맡겼다고 했다. 할머니는 별로 말이 없으신 분이시다. 할아버지는 음주가무를 좋아하시고, 농담을 매우 잘하시고, 화투놀이를 좋아하신다. 사람들과 즐기는 걸 좋아해서 경노당 회장을 맡아서하셨고, 할머니는 집에서 조용히 성경을 읇조리시고, 찬양을 창으로 부르셨다. 나는 그런 할머니의 성경책 읽는 소리와 찬양을 들으며 자랐다. 할머니는 오는 거지에게 꼭 먹을 것을 주셨고, 이웃의 어려운 소식에 달려가 물질로도, 기도로도, 따뜻한 마음을 나누셨다. 우리집이 하도 가난해서 할머니는 우리집에 이것 저것 싸들고 오셨었고, 엄마가 할머니에게 손도 많이 벌렸던 것도 기억한다. 할머니는 내가 다 커서도 자기 속바지 속에 있는 돈을 몰래 꼭 쥐어 주곤 하셨다. 할머니가 작년 크리스마스쯤에 돌아가셨다. 할머니가 천국에서 온전한 몸으로 내가 오기를 기다리고 계시는 것 같아서 빨리 가고 싶다. 할머니의 온전해진 몸을 보고 싶다.      

엄마는 어떠한가. 그할머니의 그 엄마라고. 빚쟁이 남편 만나서 빚갚느라 안해본 일이 없고, 자식들 고아원에 맡기라는 얘기를 들으면서도 끝까지 자식들 먹여 살렸고, 여느 남자들 보다 더 힘든 일도 마다않고 하셨다. 늘 엄마는 돈보다는, 명예보다는 사랑을 선택했고, 희생을 택했다. 어렵다는 사역자 사모님의 소식을 들으면, 매끼 김치에 콩나물 먹으면서 아끼고 아껴두었던 돈을 서슴치 않고 내놓으셨고, 친척들 자식들의 속썩이는 소식들을 들으면, 열일 체쳐두고 달려가 해결해주었고, 영양실조로 죽어가는 사람도 우리는 먹지도 못하는 고깃국에 보약 먹여가며 살려주었다.      


이래서 ‘콩 한쪽도 나눠먹자.’는 말을 좋아하는듯. 

삶이 이래서. 

나도 울 할미처럼, 울 엄니처럼 그리 살기를. 

콩 한쪽도 나누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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