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임마더

그냥,너여서좋아

by 마마그레이스

<막간이야기>


목: 나 됨 I am What I am


요즘 저에게 화두는 ‘나됨’입니다. 다시 말해 being입니다. 그런데 나됨을 좀 약한 된소리로 발음하면 나댐이 됩니다. 나대다의 사전적 의미는 몸을 방정맞게 움직이며 앞에 나서려고 하다. 아무 곳에서나 멋대로 행동하다. 겁 없이 함부로 나대다. 아무 것도 모르면서 나대다. 지나치게 참견을 하다. 입니다. 저는 생각하면 할수록 하나님 앞에 우리가 하는 doing들이 여기서 말하는 “나댐”이지 않을까란 생각을 했습니다.


나됨나댐

beingdoing


우리는 어떤 존재일까요? 여러분은 어떤 존재라고 생각하십니까?

여러분에게는 나됨을 의미하는 being이 중요합니까? 나댐을 의미하는 doing이 중요합니까?

세상은 여러분의 나됨, 즉 존재적 가치를 알아줄까요? 아니면 여러분의 나댐, 즉 doing을 알아줄까요?

세상은 여러분이 어떤 존재인지는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니 전혀 생각이 없습니다. 오히려 여러분의 존재적 가치는 그저 세상의 노예일 뿐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끊임없이 무언가를 doing하도록 push합니다. 그것으로 여러분의 존재가치를 높여주는 척 속입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경쟁을 부추기고, 성공하라고 강요합니다. 그러한 세상의 가치를 쫓으면 쫓을수록 여러분의 존재 즉 자아는 끊임없이 허무하고, 허허롭고, 공허함 가운데 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요즘 가장 쉽게 걸리고, 빠져나오기 어려운 병이 무엇입니까? 우울증입니다.

세상이 말하는 대로 “네가 원하는 것을 해라!, 네 자신을 사랑해라!” 그래서 열심히 원하는 것을 하고 살고, 자기 자신만을 사랑하며 열심히 doing하면서 살았는데, 왜 자아는 끊임없이 우울증에 빠지는 것일까요? 왜 자신이 이 세상에 쓸모없는 존재로 여겨지는 것일까요? 세상은 여러분이 누구인지는 전혀 궁금해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그렇게 열심히 doing 즉 나대면서 살아왔지만, 여러분의 존재감은 여전히 제로인 것입니다. 세상이 악해져 간다는 증거가 어디 있을까요? 여러분이 끊임없이 관심 받고자 노력하는 데 있습니다. 관심종자라는 신조어가 생길 정도지요. 그러나 세상은 여러분이 관심 받고자 하면 할수록 여러분은 더 많이 외롭고 더 많이 피폐해질 것입니다. 왜냐하면 세상은 여러분의 존재에는 관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왜 SNS에 집착할까요? 왜 인터넷에 중독이 될까요?


그런데 여러분을 여러분 존재 있는 그대로 받으시고, 사랑하시고, 높여주시는 분이 계십니다.

바로 하나님 아버지, 예수 그리스도,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나댐 즉 doing하도록 강요하지 않으시고, 원하지도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하나님 형상대로 보존하시고, 예수님처럼 존재하도록 계획하시고, 그 계획을 실행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하나님형상대로 보존하기 위해서 자신이 약속하고 계획한 모든 일을 직접 실행하시고 이루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그 증거입니다.


우리의 존재가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했는데, 그렇다면 하나님은 어떠하신 분일까요?

요한계시록 1장 8절에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시작과 끝이라. 주, 곧 지금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앞으로 오실 전능하신 분"이라 고 자신을 설명하십니다.

스스로 있는 자 라고 말씀하셨고, 하나님은 완전한 선이시며, 완전한 사랑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떠하십니까?

요한복음 1장 1-2절에 “태초에 말씀이 계셨고, 그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그 말씀은 하나님이셨느니라. 그 말씀이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느니라.”

예수님은 말씀이셨고,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그 말씀이 곧 하나님이셨습니다.


성령하나님은 어떠하십니까?

요한복음 16장 13절에 “진리의 영이신 그분이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로 인도하시리라. 그분은 자신에 관하여 말씀하지 아니하시며, 무엇이나 들은 것을 말씀하실 것이요, 또 너희에게 다가올 일들을 알려 주시리라.”


여기서 포인트는 be동사입니다. 일반동사가 아닙니다. be동사는 존재를 나타냅니다. 그리고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곧 존재를 의미합니다. 실제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말씀으로 창조하셨고, 만물은 그분의 말씀으로 존재하였습니다.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어로 인간을 human being이라 말합니다. 창세기1장 7절에 KJV에서는 a living soul이라하고, NIV에서는 a living being이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존재하기를 원하시고, 그 목적대로 지으셨습니다. 그리고 에덴동산에 첫사람 아담을 두었고, 창세기2장 15절에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사 그것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시고”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영어로는 dress it and to keep it. dress의 뜻은 입히다, 치장하다, 정장시키다, 꾸미다, 다듬다, 치료하다, 정렬하다 등등의 뜻입니다. 그리고 keep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과 더불어 세상만물이 조화를 이루며, 하나님의 뜻대로, 형상대로 존재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런데 3장에서 사단의 등장으로 인간은 사단의 속임에 빠져 doing하게 되었습니다. 선악과를 따먹었고, 발가벗은 몸을 무화과 잎으로 옷을 만들어 입혔습니다. 사단은 이렇게 우리 스스로 doing하게 만들고, 우리의 존재를 땅에 떨어뜨립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하시며, 우리의 존재를 높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친구로 부르시고, 신부로, 제자로 부르시며, 왕 같은 제사장으로 삼으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무언가를 잘해서 그분의 자녀로 부르십니까? 우리가 예수님과 친구가 되기 위해 우리의 목숨을 내놓았습니까? 우리가 한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또한 할 수도 없습니다. 우리 스스로 무언가 해보려고 애쓰면 애쓸수록 우리는 하나님과 더 멀어지게 됩니다. 우리가 할 일은 그저 그분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그분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분의 긍휼함과 인자하심을 구하며, 그분이 하실 일들을 기대하며 인내함으로 기다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분 안에 거할 때 그분은 우리의 존재를 높여주십니다.


마태복음 25장의 양과 염소의 이야기를 아시지요?

양에 속한 무리들은 예수님이 했다고 한일을 언제 했냐고 되물었습니다. 그들은 왜 자신들이 한 일을 알지 못했을까요? 그러한 그들을 예수님께서는 의인이라 칭했고, 그들에게 “오라, 내 아버지의 복을 받은 자들아, 세상의 기초가 놓인 이래로 너희를 위하여 준비한 그 왕국을 이어받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주님과 함께 동행하며, 사는 것, 그분안에, 그분이 그들안에 거하며 살았던 것뿐이었습니다. 자신들이 한 일에 목적을 두고 산 것이 아니라, 주님과 함께 동행하며, 그분안에 거하는것에 목적을 두고 산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그들이 한 일은 그들이 주목한 일이 아니라, 그저 크리스찬으로서 삶을 살았던 사람들이었던 것입니다.


보십시오. 양의 무리들은 자신들의 삶의 목적을 존재가치에 두었습니다. 그들의 존재가치는 크리스챤이었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사람이야.” 이게 중요했습니다. 크리스챤으로서 삶을 살았습니다. 염소의 무리들은 어떠했습니까? 자신들의 삶의 목적을 자신들이 한일 즉 doing에 두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그들과 함께 동행하고 사는게 중요한게 아니라, 그들이 한일이 중요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염소 무리들에게 너희들의 한 일을 모른다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은 누구입니까?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분이 여러분의 아버지입니다. 여러분이 세상에 살 때 세상을 두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세상이 원하는대로 세상의 트렌드대로 살지 못하면, 도태될까 두려워 하며 살 필요가 없습니다. 여러분의 존재가치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믿음의 조상들이 세상의 핍박에도 두려워하지 않고 순교할 있었던 것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사람들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자녀로 살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부모님은 여러분에게 어떤 존재입니까?

여러분은 부모님께 어떤 존재입니까?

감사제목에 늘 하는 고백은 이것입니다.

엄마가 내 엄마여서, 아빠가 내 아빠여서, 딸이 내 딸이여서, 아들이 내 아들이여서 감사하다고. 부모가 능력이 있건 없건, 자녀가 부모님 말을 잘 듣건, 그렇지 않든 여러분의 부모는 여러분의 부모여서 그 존재만으로 감사하고, 여러분도 여러분 존재만으로 감사하고, 기쁜 자녀들입니다.


친구는 어떻습니까? 어려움도, 기쁨도, 슬픔도 함께 옆에 있어주는 친구가 진짜 친구입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한복음1장12절)

여러분이 이 세상을 살 때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누리며 산다면, 여러분은 결코 우울증에 빠질 수 없고, 세상의 쓸모없는 존재가 아니라 빛 된 존재로 살게 될 것입니다.

믿으십시오! 하나님은 여러분을 그분의 자녀로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바울의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나의 나 된 것은 오로지 주의 은혜라”


“By the grace I am what I 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