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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마 김작가 Nov 30. 2017

외쿡사람은 처음이라

로마에서 남매 키우기 #11

가족 모두 회사 행사로 지중해 크루즈를 다녀왔다. 남편이 여행업에 종사하다 보니 여름이 모두 지난 11월이 되어야 우리에게 여행시즌이 돌아온다. 다행히 그리스와 크로아티아는 따뜻했고 비록 여름의 흥겨움은 지나갔지만 한산함이 주는 여유도 매력적이었다.


인터넷이 없이 망망대해에서 바다의 흔들림을 그대로 느끼며 지내는 시간들이 되려 반가웠다. 인터넷이 안되면 금단 현상이 일어날 만큼 불편함을 느끼지만 어쩌면 이런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내 의지력으로 인터넷 사용을 자제하기란 이번 생에선 불가능할 듯하다.


바다에 떠 있는 동안에는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이전 화, < 절대 쓰고 싶지 않았던 이야기 >를 새벽에 마무리하고 바로 떠나온 여행이라 기항지에 내려 잠깐 씩 인터넷이 잡히면 한국, 독일, 스페인, 일본 등 세계 곳곳에서 많은 분들이 남겨준 댓글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글 속에서 난 세상에서 제일 멋지고 용감한 엄마였다. (마음을 전해 준 모든 분들 고마워요.)


모두들 아이를 키우는 마음은 같구나 그리고 우리보다 훨씬 앞 세월에 타국에서 아이를 키운 부모들은 얼마나 더 많은 일들을 겪었을까 헤아릴 수가 없다.


그래도 이번 일을 겪으면서 깨달은 점 하나는 확실히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좋다는 것이다. 다른 아시아 국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종종 일상에서 중국인이냐고 물어올 때 한국이라고 하면 ‘그렇지? 한국인이지? 역시 한국인일 줄 알았어, 한국인이 중국인보다 더 예쁘잖아?' 라는 반응을 접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 외모의 문제가 아니라 아시아 국가에 대한 그들만의 순위가 있는 양 들린다. 그 순위에 우리가 상위권에 있음에 안도해도 되는 것인가?


이런 생각도 했다.

만약 내가 한국에서 사는 (예를 들어) 방글라데시 부부이고 우리 아이가 학교에서 이런 일을 겪었다면? 그 내용을 엄마들 단톡 방에 올린다면? 이탈리아 엄마들과 달리 모두 공감하고 힘이 되어 줬을까? 완벽하지 않은 한국말로 원장을 찾아가 불완전한 발음으로 따졌다면 이탈리아에서 내가 받은 것과 같은 정중한 사과를 받을 수 있을까?


다 떠나서 내가 만약 한국에서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아이의 유치원에 다문화 아이가 있을 때, 과연 기쁘게 받아들였을까? 솔직히 자신이 없다. 로마는 지역마다 학교의 차이가 심하다.  종종 대다수의 동남아 아이들이 등교하는 학교를 보았을 때 우리 아이가 다니는 학교는 그렇지 않음에 안도한 적이 있음을 고백한다.

여행을 하는 동안 아이의 학교 원장에게서 메일을 받았다. 다시 한번 자신의 선입견을 깨어주고 문화, 인종, 생각에 열린 사고관을 갖게 해주어 고맙다는 내용이었다. 이번 연말 공연을 마치고 크리스마스 휴가가 지나면 학교 내 모든 외국인 부모들과 함께 다문화 행사를 준비할 계획이니 많은 도움 부탁한다고도 덧붙였다. 의도한 악의와 무지함에서 오는 악의, 둘 다 피해자의 입장에서는 같은 악의이지만 적어도 무지함에서 왔다면 일깨워 주었을 때 바뀔 수도 있다는 희망은 존재한다고 믿자.


이안이의 반 엄마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적어도 이 사건 후 여행을 마치고 돌아가자 공기가 달라졌다. 우린 여행을 떠난 것뿐이었는데 내가 단톡 방에 글을 올린 후  이안이가 유치원에서 안보이자 신경이 쓰였나 보다. 괜히 어색할 정도로 친한 척을 한다. 공감하지는 못하겠지만 그러지 못했음에 왠지 모르게 미안한 마음이 드는 양.


엄마들과 조금은 소극적이었던 나도 이 사건 이후로 내가 느끼는 감정은 말하고 살아야겠다는 자세가 되어 버리자 용기백배가 되어 적극적으로 학부모의 삶에 임하게 되었다. 솔직하게 학교에 보다 엄마들에게 더 상처받았었다. 3년 이상 어린이집부터 유치원까지 알고 지낸 시간이 결코 적지 않은데 공감해주고 함께 화내어 줄거라 생각했다. 엄마들을 떠나 이탈리아 사람들 대다수 이런 생각이라는 것을 확인해 버린듯한 기분에 힘이 빠졌다. 어쩌면 이건 내가 이탈리아를 사랑하고 이탈리아 사람들을 좋아해서 더 그랬던 걸지도 모르겠다.


알고 보니 연말 공연에서 중국인 역할은 이안이 포함 4명이었다. 그 이야기에 난 이안이가 이 역할에 포함되었었음이 오히려 다행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공연에서 이탈리아 아이들이 그렇게 눈을 찢고 이상한 발음으로 공연을 했을 때 난 지금처럼 항의할 수 있었을까? 항의를 한다면 극성스러운 엄마라고 치부되었을지도 모른다. 심지어 그 엄마들이 우린 괜찮은데 왜 네가 난리냐?라고 해버리면 말은 힘을 잃고 난 용기를 낼 수 없었을 거다.


우리에게 일어났고 내가 마음을 전했고 그들이 받아들였다. 이 것이 결과적으로 모든 것을 바꿀 수는 없겠지만 우리가 배려받고 존중받는 첫 시작이 되었다고 믿는다. 이렇게 생각하니 이 모든 일들이 감사해질 정도다.




그렇게 생각을 거듭하다 잊고 있었던 하나가 떠올랐다.

지난 10월 비정상회담에 출현으로 우리에게 알려진 타일러가 자신의 한국말 트윗에 글을 하나 올렸다.

“외쿡사람”이라는 표현은 나쁜 의도로 하는 말이 아니라는 것은 아는데
왜 그렇게 기분이 찝찝한 걸까요?
저만 그런가요? 왜 이렇게 거슬리지.


그 당시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는데 이안이 사건(?)이 있고 나서 다시 기사를 찾아보았다. 그의 글에 달린 댓글을 읽으며 소름이 돋았다. 이안이 유치원 단톡 방에 내가 글을 올렸을 때 엄마들의 반응을 그대로 번역해 놓은 줄 알았다.


굳이 그걸 비하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나….

외국인을 표현하는 정감 있는 표현으로 받아들이면 되지 않느냐.

그 댓글 중 타일러에게 공감을 보낸 것은 한국에서 사는 외국인이었다. 마치 유일하게 나의 상황을 이해해 주었던 것이 미국인 아빠와 캐나다인 엄마였던 것처럼.


아시아 사람들의 이탈리아어 발음에서 R 을 L 로 바꾸어서 놀리는 것과  을  으로 발음하는 것은 결국은 같은 맥락 아닌가….. 이 표현이 외국인들에게 불쾌한 감정을 일으킬 거라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의도가 어떠하든 받아들이는 이의 감정을 헤아려주어야 한다. 하지만 그 당사자가 아닌 이상 스스로 깨닫기는 쉽지 않다. 나 역시 이탈리아에서 사는 외국인임에도 한국에서 사는 외국인인 그가 말해주기 전까지 전혀 깨닫지 못했으니까.    


혹시 그도 수 없이 이야기해 보았지만 공감을 얻지 못해 공개적으로 쓴 것은 아니었을까? 댓글들을 보고 어떤 생각을 했을까? 한국을 무척 사랑하는 그이기에 뭘 그렇게 오버하냐는 반응에 더 놀라고 상처받았을지도 모르겠다.


결국 나도 이 이탈리아 땅에서 '외쿡사람' 이 되어보고서야 그에게 공감한다. 이안이 일 이후 이탈리아 친구들은 이탈리아 사람들이 몰라서 그러는 것이고 바뀌지도 않을 테니 받아들이는 우리가 의연해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게 정답일까? 이탈리아 사람들이 눈을 찢고 발음으로 놀림에 매번 '이탈리아 것들 무식하게' 라고 되 받아 쳐 주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상처받음을 떠나 우리가 느끼는 감정에 대해서 이야기해 주어야 한다. '외쿡사람' 도 외국인이 이야기해 주지 않는 이상 우리 스스로는 느끼지 못했으니 말이다.


이안이가 자라고 어느 날 친구들이 그런 놀림을 하는 것을 본다면 이렇게 말해 주면 좋겠다.


- 난 이탈리아에서 살기 때문에 너네가 악의를 가지고 하는 행동이 아니라고 이해할 수 있어. 하지만 그 행동은 아시아 사람들에게 굉장히 큰 불쾌감을 준다는 것을 알았으면 해. 난 한국인이지만 한국보다 이탈리아서 산 시간이 더 많아. 이탈리아도 나의 나라라고 생각해. 이탈리아를 많이 사랑하니까 이 나라에서 아시아 사람들이 불쾌감을 느끼고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게 되길 원치 않아. 그리고 그런 행동으로 인해 대부분의 이탈리아 사람들이 그런다고 생각되기도 원치 않아.


한국 이탈리아 혼혈의 아이를 키우는 이탈리아 아빠가 말했다.


결국 우리가 아이들에게 해주어야만 하는 가장 중요한 한 가지는
 이 아이들이 한국에 자부심을 가지게 하는 거야.


어쩌면 이 모든 일들은 우리의 아이들이 자라면서 겪게 될 일들에 비한다면 오히려 우리는 제삼자의 입장일지도 모른다. 아이 스스로 의연해지고 상처받지 않기 위해서 우리의 역할은 한국에 자부심을 가지게 하는 것, 여기까지 일지도 모른다. 


크루즈여행의 하이라이트 갈라디너를 위해 우린 한복을 준비했다. 승선한 대다수가 이탈리아 사람이었다. 이 날 저녁 우린 수 많은 이탈리아 사람들의 사진요청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한글학교 여름방학식에서 이탈리아 대사님이 이런 말을 했다.


-아이들이 한국말을 한다는 것은 단순히 두 언어를 한다는 의미를 뛰어넘습니다. 전 아이들과 수많은 나라에서 살았고 그때마다 아이들은 그 나라의 학교와 친구들에게 적응해야만 했죠. 그런데 그 많은 나라들에서 아이들에게 보고자 했던 모습 궁금해했던 것은 결국은 한국이었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한국말을 하고 한국문화를 안다는 것은 우리 아이들에게 굉장한 경쟁력을 주는 것입니다. 이 일은 정말 쉽지 않지만 진짜 가치 있는 일이며 우리가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멋진 선물이 될 것입니다.”


이안이는 한복을 입은 나에게 “정말 아름답다” 고 말해주었다. 자신의 옷은 왕자님 옷이라고 했다. 그리고 나에게 춤을 신청했다.


이안이 유치원 원장과 이야기를 하고 나오는 길에 제니퍼가 물었었다.  


-이안이는 여전히 토요일마다 한글학교에 가지?  

-응, 너무 좋아해.  친구들과 한국말 하는 게 너무 좋은 가봐. 우리와도 한국말을 하지만 또래들과 이야기하며 놀고 싶은 욕구도 큰 거 같아.  

-자신의 나라를 좋아한다는 거 무척 중요한 거 같아. 우리 아이들을 돌봐주는 필리핀 아주머니가 있어. 그분의 아이들도 토요일마다 필리핀 학교에 간데. 그런데 아이들이 굉장히 거부하나 봐. 부끄러워하나 봐, 학교에 가는 거. 쉽지 않지.  

  

참 쉽지 않다. 드라마 제목처럼 '이번 생은 처음이라' 심지어 로마에서 아이를 키우는 것도 처음이라.

그래도 한 가지는 확실하다.  드라마의 대사처럼,   

 

말도 사람의 마음에 가야 살아남는 것 알아?
입 밖으로 뱉어야만 마음에 가서 닿는다고…   


우리는 한국인이고 이 곳은 이탈리아니 그들이 먼저 알아주기를 바라기보다 우리가 마음을 말로 전해야 한다. 그래야 그 말이 그들의 마음에 닿을 것이다. 그렇게 닿은 말이 나와 같은 마음이 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비록 그렇다 하더라도 적어도 마음을 알게는 될 테니.


written by iand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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