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에서 남매 키우기 #13
지난 주말 가족 모두 로마 책 박람회에 다녀왔다. 이 도서전은 2002년 이탈리아 출판협회의 소규모 출판그룹의 아이디어로 로마에서 시작되었다. 매년 크리스마스 시즌이 가까워오면 5일간의 일정으로 진행된다. 독립출판까지 포함한 이탈리아의 400개가 넘는 소규모 출판사와 미디어 출판사 참여하는 세계 유일의 도서전이다.
단순 박람회의 기능이 아니라 하나의 문화축제로 5일간의 일정 동안 음악, 공연, 아이들을 위한 행사까지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매시간 끊임없이 펼쳐진다. 로마의 신도시 E.U.R. Palazzo dei Congressi에서 매년 개최되었던 행사가 올해는 새 건물 Roma Convention Center – La Nuvola에서 있었다.
Roma Convention Center는 Massimiliano Fuksas 의해서 01.02.2008 – 30.06.2016 까지 8년이 넘는 공사기간을 거쳐 29.10.2016 첫 공개되었다. 하늘 안에 떠있는 구름의 형상이다. 그래서 건물의 이름도 la Nuvola, 구름이다. 저 구름 속에는 8000석 규모의 공연장이 있다.
처음 대중에게 공개되던 날, 사람들은 이 곳을 로마와 하늘 사이에 존재하는 공간이라고 했다. 앞을 지날 때면 언제나 안이 궁금했다. 도서전도 보고 팠지만 솔직하게 구름 속으로 가 볼 수 있다는 사실이 더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E.U.R. : 로마는 일반적으로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구로마와 신로마 에우르로 구분된다. 에우르 지역은 1942년 열린 로마 만국박람회를 위해 베니토 무솔리니의 주도하에 신도시 조성이 계획됐던 곳인데, ‘에우르’라는 이름도 로마 만국박람회(Esposizione Universlae di Roma)의 약자에서 가져온 것이다. 고대 로마의 영광을 재현하기 위해 야심 차게 기획됐지만 제2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만국박람회도 도시계획도 모든 것이 무산돼 오랜 시간 방치됐다. 후에 정상궤도에 들어선 로마시가 다시 에우르 재건을 추진했고 지금의 모습을 갖출 수 있게 됐다.
-출처 : eurobike.com/ ⓒ이지은, 주세페 페노네X펜디Matrix
우리가 향한 날은 행사 마지막 날이었다. 비가 내렸고 추웠다. 입장 티켓을 구입하는 줄이 어마하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미리 온라인으로 구입했다. 로마에도 드디어 겨울이 왔다. 차가운 바람을 뚫고 건물 앞에 도착하자 생각보다 더 웅장한 모습에 압도된다. 건물 밖까지 티켓을 구입하기 위한 줄이 이어진다.
유모차를 보자 막아두었던 모노레일을 열어준다. 이 곳에서도 어김없이 유모차는 프리패스다. 멋지게 말하면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거침없이 표현한다면 낡고 구식의 로마에서 살다 이런 모던한 환경 속에 들어서면 괜히 들뜬다. 이안이는 책이 많이 곳이라니 그저 좋다. 공룡 책을 찾을 거라며 기대에 가득 찬 눈빛이다.
입장하고 남편과 전략적으로 분리했다. 둘째는 남편이 맡아 여유 있게(?) 관람을 하고 첫째와 난 공격적으로 돌아보기로 했다. 아쉽게 오후에 도착해 어린이 프로그램은 모든 예약이 마감이다. 책을 읽어주는 시간은 인원 상관없이 참여가 가능해 남은 시간 동안 구름 속으로 들어가 보았다. 구름으로 다가가는 느낌이 마치 산 정상에 머무는 구름 속으로 들어가는 것만 같다. 구름 속은 다른 차원으로 이동한 듯한 착각을 일으켰다. 외계인의 우주선에 발을 내디딘 기분이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작은 구름다리가 있어 걸어보고 싶었는데 진입이 안됐다. 알고 보니 그 구름다리 너머에 엘리베이터가 있었는데 유모차와 휠체어만 허용됐다. 후에 만난 남편에게 물어보니 역시나 걸어보았단다.
"알잖아 유모차, 어디에도 막힘이 없어. 줄설 필요도 없고, 오늘도 이도 덕을 톡톡히 봤어."
행사에는 정말 아이들이 많았다. 상당수의 책부스도 어린이 서적이 차지하고 있었다. 당연히 유모차도 많았다. 한국에서 도서전을 가본 적이 없어서 분위기를 잘 모르지만 전문적인 강연부터 만화가 사인회 아이들을 위한 낭독의 시간까지 어우러져 전세대를 아우르는 문화행사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거기에 압도적인 공간까지 더해져 ‘단순한 박람회가 아닌 이 행사의 진짜 목적은 다양한 문화의 장이 되는 것이다.' (#plpl non è solo questo, il vero cuore della fiera è la PROGRAMMA CULTURALE.)라는 홈페이지의 소개글이 제대로 와 닿았다.
Più libri Più liberi 타이틀도 멋지다.
더 많은 책 더 큰 자유
: 다양한 책은 더욱 자유롭게 만들어준다
로마에서 남매 키우기 2화 [생의 1/4이 여름방학이다]에 옮겨두었던 이탈리아의 여름방학 숙제가 떠올랐다.
3. 최대한 책을 많이 읽어라. 하지만 읽어야 하기 때문에 읽지는 마라.
: 여름은 모험과 꿈을 북돋우기 때문에,
책을 읽으면 날아다니는 제비와 같은 기분이 들 거다.
독서는 최고의 반항이다.
날아다니는 제비와 같은 기분의 자유로움이라니!!
읽다 죽어도 멋져 보일 책을 항상 읽으라.
– P. J. 오루크
이 문장은 읽을 때마다 짜릿하다. 마치 마지막 순간 나의 곁에 있는 책이 나의 인생을 나 자신을 말해준다는 것처럼 들린다. 지금의 난 듣고 싶은 이야기가 쓰여있는 책만을 골라 읽는 편식 독서가가 되었다면 가장 편견 없이 책을 보던 시절이 중학교 때였다. 밤새워 책을 가장 많이 읽어던 시절이기도 하다. 인터넷따윈 없던 시절, 읽다 죽어도 멋져 보일만한 책을 발견한 날이면 어서 해가 밝아서 친구에게 이야기해주고 싶어 안달이 났다. 그런 아침, 학교로 향하는 난 정말 제비가 된 듯한 기분을 느꼈다.
아들과 책 부스를 돌다 babalibri를 찾았다. 1999년 시작된 어린이 서적 전문 출판사이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는데 이안이를 위해 책을 고르면 어김없이 이 출판사였다. 이안이도 이 부스에 도착하자 낯익은 책들에 반가워한다.
도착과 동시에 바로 마음에 든 표지가 있어 잡으려는데 이안이가 먼저 그 책을 골라 나에게 가져왔다. ‘엄마! [이젠 무섭지 않아!] 이 책 살 거야.’ 글도 모르면서 제목은 얼추 맞혔다. 그러고 보니 처음 이 행사에 왔을 때 아이가 나에게 골라 왔던 책도 같은 작가의 것이었다.
기분이 야릇하다. 마치 너무나 호감을 가지고 있던 이성과 우연히 이야기를 나누다 동시에 같은 책 이야기를 한 듯 짜릿하다. 아이와 교감한다는 것은 때로는 연애의 설렘 같다.
이안이와 더 돌아보고 싶었지만 기다리는 사람들을 위해 아쉽지만 밖으로 나왔다. 밤이 되었고 구름은 붉어졌다. 폐장시간이 다 되었는데도 건물 밖엔 입장을 위한 긴 줄이 늘어서있다. 비가 내리는데 어둠도 내려 비를 맞고 있는데 눈을 맞는 듯했다. 12월 중순이 다 되어서 겨울이 온 실감이 난다.
집에 돌아와 아이와 누웠다. 꽤 돌아다녔는데 함께 고른 책이 한 권이다.
-엄마 더더 많이 책 사고 싶었는데.....
-다음에 또 구름 건물에 가자. 그땐 더더 많이 찾아보자.
2015년, 도서전에 다녀와 아이를 재우던 밤, 집 계약 문제가 심각하게 터졌었다. 잠든 아이를 꼭 안고 울음을 참으며 잘 헤쳐나갈 수 있는 용기와 지혜를 달라고 기도했다. 그렇게 2년이 흘러 침대에 몸을 뒤엉켜 누워 아이의 재잘거림을 듣고 있으니 따뜻하게 잠들 수 있는 침대와 밤이 우리에게 허락됨이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한 일인가 실감이 났다. 아이의 온기가 고스란히 나에게 전해진다.
아이는 착한 티라노와 눈사람을 만드는 꿈을 꾸고 싶다더니 어느새 잠이 들었다. 나의 키만큼 자란 네가 ‘읽다 죽어도 멋져 보이는 책’을 만나 반짝이는 두 눈으로 이야기해 주는 꿈을 꾸고 싶다고 잠든 아이에게 속삭였다 . 구름 속에 있는 듯 설레는 그런 멋진 꿈.
written by iand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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