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로마 김작가 Dec 21. 2017

간섭하지 않겠다고 약속해주세요

로마에서 남매 키우기 #14

유치원 크리스마스 공연 날이다. 남편과 두근거림이라는 기쁜 감정만을 가지고 공연장으로 향하게 되기까지 마음 졸였던 시간들이 떠올랐다.


육아의 고민들로 밤잠 이루지 못하는 날이면 펼치게 되는 책이 있다. 이 전의 글에서도 몇 번 인용했던 18살 아들, 안드레아와 엄마, 룽잉타이가 주고받은 편지 [사랑하는 안드레아] (열여덟 살 사람-아들과 편지를 주고받다, 양철북, 2015) 이다. 두 언어의 아이를 이해하기 위해, 때로는 엄마가 부재한 날 위한 조언처럼 힘이 되어주는 책이다.


하루는 강압적인 선생의 태도에 화가 난 아들에게 그녀가 이야기한다.  

  

넌 앞으로 네가 싫어하고 반대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될 거야.
그 사람들과 반드시 같이 일을 해야 할 때도 있을 테고, 그 사람이 너의 상사, 동료, 부하가 될 수도 있고 사장이나 국가의 지도자가 될 수도 있어.
너는 그때마다 결정해야 해.
그와 결별해서 저항할 것인지 아니면 타협해서 받아 받아 들 일 것이지 말이야.
저항한다고 하면, 그만한 가치가 있을까?
타협한다고 하면, 안심할 수 있을까?
신념과 현실 사이에서 길을 찾는 건 정말이지 어렵고 어려운 일이야.
하지만 너 스스로 찾아내야 해.”    


뒤돌아 생각해 본다. 시작은 아들이었다. 하지만 내가 한국에서 살며 아이를 키웠다면 어쩌면 외면했을지도 모를, 아니면 아예 인지조차 하지 못했을 일들을 로마에서 아이를 키울 수 있었기에 겪을 수 있었고 고민하고 길을 찾아갈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은 이 길을 찾아가는 과정이 단순히 아이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라는 한 인간의 삶에 있어 성숙이라는 단계로 가기 위한 너무나 소중하고 귀한 경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렵고 어려운 일에서 결국은 나 스스로 답을 찾아가는 일이었다. 그 길 속에서 내가 성장하고 있었다.

 

꼬리에 꼬리는 무는 상념에 사로잡힐 무렵 공연이 시작됐다. 아이들이 마이크 앞에 서서 각자에게 주어진 대사를 했다. 순간, 정신이 들었다.  

‘맞다! 선생님이 공연 전까지 아이들이 대사를 숙지할 수 있도록 도와주라고 했는데!’ 난 인종차별 문제에만 꽂혀 대사는 까맣게 잊고 있었다. 아이들이 얼마나 똑 소리 나게 잘하는지,  


-여보, 어떡해! 나 한 번도 이안이 대사를 봐주지 않았어.  

-걱정 마, 잘할 거야.  


나란 엄마 정말 대단하다. 공연은 집중 못하고 또 걱정이다. 처음엔 대사만 제대로 외웠기를 바라다가 다른 사람들 보란 듯이 멋지게 했으면 좋겠다는 욕심까지 스멀스멀 올라왔다. 걱정에 욕심까지 더해졌다. 정말 나 자신이 욕망 덩어리 같다. 아이는 어미의 마음을 알턱이 없지. 무대 뒤편에 앉아 옆자리 친구랑 장난을 치느라 정신이 없다. 공연의 피날레 이안이가 마이크 앞에 섰다.    

  

  Questo è il nostro augurio davvero special per dire tutti insieme “Ora si che è NATALE!!”   
우리 모두의 아주 특별한 염원을 담아 함께 외쳐요.
“자 이제 크리스마스예요!!”


이안이가 외쳤다.



Gloria, gloria, nel cielo  

Gloria, gloria, sul terra  

Gloria, gloria, gloria a Gesù  

영광, 영광 하늘의 영광  

영광, 영광 땅의 영광  

영광, 영광 예수님께 영광   

 

이안이는 무대의 모든 아이들 중에서 가장 큰 목소리로 노래했다. 나의 눈에는 수많은 코러스들을 뒤로하고 노래하는 주인공이었다. 허리를 숙이고 고개를 들어 한껏 목에 힘을 주어 노래하는 아이. 공연을 마치자 사람들이 다가와  노래는 이안이가 최고라며 웃는다.


한 아버지가 다가오더니 “난 이안이 리암 겔러거인 줄” 하고 간다. 아, 정말 좋다. Oasis 의 공연을 보는 것이 내 인생 버킷리스트 중 하나인데 우리 아들이 리암 겔러거였다.   

  

남편이 어깨를 툭, 친다.   

-거봐, 걱정 말랬지? 이안이는 잘할 거라니까.

무대의 마지막 어설픈 산타가 나와 아이들에게 사탕을 던져주었다. 사탕을 받아 든 아이가 급 슬퍼졌다.  


-이안이 왜 슬퍼?  

-어휴~~~  

-한숨만 쉬지 말고, 엄마에게 말해봐.  

-난 움직이는 티라노사우르스를 받고 싶은데 산타가 사탕을 줬어.

빨간색으로 적은 것이 '이안이 글자'로 티라노이다.  밑에 티렉스를 그려 직접 붙였다.

이안이는 매일매일 몇 밤을 더 자야 크리스마스냐고 묻는다. 티라노사우르스를 받고 싶어 문 앞에 산타에게 보내는 편지도 붙여 놓았다. 근데 산타가 사탕을 주니 놀랐나 보다.    


-아직 크리스마스가 아니야. 오늘은 사탕을 주셨지만 진짜 크리스마스에는 멋진 선물을 주실 거야.  

  

아들은 유튜브로 한국 장난감을 접하지만 이 나라에서는 구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떼쓰지 않는다. 한국이 어디인지 확실하게는 모르지만 아주 오래 큰 비행기를 타고 가서 할아버지를 만날 수 있는 곳이라는 것은 안다. 다이노 코어, 공룡 메카드 아들이 푹 빠져있는 장난감들은 할아버지 집에 가야지만 살 수 있다는 것을 안다.   


남편은 아들의 특별한 크리스마스를 위해 한국의 고모에게 구입을 부탁하고 한국에 휴가를 다녀오는 동료 직원 편에 어렵게 장난감을 공수해 집 안 어딘가에 숨겨두었다. 공연을 하고 산타에게 사탕을 받아 실망한 아이를 보고 남편은 참지 못하고 작은 장난감 하나만 살짝 공개했다. 아이가 깜짝 놀랐다. 산타는 얼마나 대단한지 그 먼 할아버지 집에까지 다녀왔다.


작은 공룡 로봇을 밤에도 안고 잔다. 사람들에게 산타에게 받은 선물을 자랑하며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다. 울면 선물을 못 받는다고 요즘 얼마나 씩씩한지. 변신 로봇을 보여줄 생각에 엄마, 아빠가 더 크리스마스를 손꼽아 기다리게 된다. 심지어 작년 크리스마스 아침에 태어난 둘째 이도가 한 살이 되는 날 아닌가!   


영광 영광 우리 모두의 영광이다.

일주일이면 2018년이다. 이안이에겐 유치원에서의 마지막 해가 될 것이고, 이도는 곧 첫걸음을 뗄 것이다. 남편과 나에게 어떤 일이 펼쳐질까? 아이와 우린 또 어떤 길을 찾아 나아가게 될까? 연말의 감정에 제대로 휩싸인 날 안아주는 글이 있어 옮겨본다. 글이 조금 길다.  


이 글의 처음에 언급했던 책, [사랑하는 안드레아]의 독자였던 샤오위가 엄마, 룽잉타이에게 보낸 편지이다.   

룽잉타이 당신은 분명 두 아들을 귀찮게 하지는 않을 거예요. 저는 당신의 두 아들이 행운아라고 생각해요. 아무리 기운이 빠져도 또다시 성찰하고 반성하는 당신 같은 엄마가 있잖아요.  저는 당신의 사상이 더 넓어지고 더 깊어지고 더 높아지길 바랍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를 생각하면 왜 대부분 우리는 아이들이 좀 더 자주었으면, 좀 더  알아서 놀아주었으면, 좀 더 친구네 집에서 놀다 왔으면, 수업시간이 좀 더 길었으면 했을까요?  그건 아마, 그때 우리도 인생의 한창때를 맞이하고 있었기 때문일 거예요. 우리는 성인이었고, 우리들 각자의 생각과 방식으로 세상을 이해하고 있었죠. 세상으로 뛰어들고 싶었고 저 하늘 높이 날고 싶었죠. 우리의 능력이 어느 만큼인지 실험해보고 싶기도 했고요. 세계가 우리를 초대하고 있었고, 우리 역시 당장이라도 뛰어들 태세로 단단히 벼르고들 있었죠.  

그런데 바로 그때 우리들 중 몇몇은 세계를 등지고 자신을 한껏 낮춘 채 아이들을 부둥켜안았죠. 질리도록 칭얼대며 온갖 것들을 요구하는 아이들을 온종일 먹이고 씻기고 먹이고 씻기는 삶을 반복하면서요.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때만 해도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었던 그 삶이 지금은 추억이 됐거나 후회로 남았다는 거예요.  

저는 남편과 끝까지 싸워본 적이 없어요. 아이들의 똥오줌을 받아주지 않았다고 남편을 탓해본 적도 없죠. 그건 어차피 남편에게 아쉬움으로 남을 테죠.  

부모에게는 아이를 평생 안고 가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아이가 어릴 때는 씻기고 먹이면서 모든 것을 함께 해줘야 하고, 아이가 좀 더 자라면 또 다른 어려움과 필요를 채워줘야 하죠. 단계마다 절대적인 역할들이 필요하죠.  

아이들을 곁에 둘 시간을 정할 권리는 우리에게 없어요. 멋대로 착각해서는 안되죠. 부모의 역할은 아이들이 잘 자랄 수 있도록 돕는 것이에요. 아이들이 부모의 인생 계획을 배려할 필요는 없는 건데 말이에요.  

아이를 낳고 기르는 과정에서 후회 없는 부모가 어디 있겠어요? 유년 시절이든 청소년 시절이든 어느 한 단계를 놓쳤다면, 다음 단계가 남아 있음에 감사하며 그 단계에서 필요한 모든 것에 최선을 다하면 되죠.  

당신 아이의 독립선언을 축하합니다. 당신은 도전과 자극이 넘실대는 완전히 새로운 곳으로 아이를 데려오는 데 성공했어요. 그 아이도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성인으로서, 세계의 초대 앞에 얼른 뛰어들고 싶어 몸이 근질근질하겠죠.  

아직 가정이 얼마나 무거운 짐인지 모를 때, 아직 복잡하고 무거운 사회적 책임이 주어지지 않았을 때, 아직 어떤 질병이 덮쳐오지 않았을 때, 심지어 연애에도 얽매이지 않았을 때, 우리는 그 아이가 아무 걱정근심 없이 호방하고 과감하게 전장으로 뛰어들 수 있게 해줄 수 있어야 해요. 엄마는 그저 본분을 지키며 응원 단원으로서 지켜보고 격려하고 지지하면 되지 않을까요? 중간 휴식시간에 절제된 환호를 보낼 수는 있지만, 절대로 뛰어들어 간섭하거나 지휘해서는 안 되겠죠. 심지어 부모를 보지 않는다고 투덜대서도 안 될 거예요.  

독일이나 다른 많은 문화권에서 열다섯 혹은 더 어린 나이에 성인식을 치르는 것은, 아이들이 진짜 다 커서가 아니라, 아직 사리에 어두운 아이들이 축하받을만한 진짜 한창때가 조만간 온다는 것을 일깨워주고 그것을 준비하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닐까 싶어요.  

룽잉타이, 보았나요? 당신의 대단한 두 아이에게 -저를 믿으세요. 두 아이는 절대 평범하지 않아요.- 축하받아 마땅한 성인기가 도래했어요. 이 시기 역시 그들이 지나온 유아기와 학창 시절, 사춘기와 마찬가지로 황금처럼 소중할 거예요. 지금까지처럼 당신이 옆에서 도와주세요. 그 아이들이 그 시기를 완성해갈 수 있도록 말이에요.  

간섭하지 않겠다고 약속해주세요.  

당신보다 더 좋은 글을 쓰는 사람은 없다고 믿어요.  

샤오위

약속할게.  

너의 소중한 시기를 간섭하지 않을게.  

내년에도 우리 함께 자라자.  

각자의 시기를 멋지게 완성해 나가자.  

우리 함께 편지를 주고받는 그 날까지 난 즐겁게 글을 쓸게.  


이안, 이도야.  

우리의 소중한 마음을 담아 외치자.  

자, 이제 크리스마스야.


written by iandos


* 해당 글에 들어간 모든 사진의 저작권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

* 매주 수요일 혹은 목요일 원고 발행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구름 속으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