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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마 김작가 Apr 11. 2020

코로나, 이전에는 믿었지만 지금은 믿지 않는 것

그리고 믿지 않았지만 이제는 믿게 된 것

작년 여름 우린 덴마크에 갔었다. 5박 6일의 일정이었다. 로마가 가장 더운 8월 중순에 시원한 북유럽은 탁월한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심지어 비행기 티켓도 저렴했다. 로마의 한국인 지인들은 어쩜 그런 생각을 했냐고 칭찬했고 이탈리아 지인들은 어쩌다 그런 생각을 했냐고 혀를 찼다. 이 아름다운 이탈리아의 여름을 뒤로하고 거긴 뭐하러? 가느냐고 말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반짝이는 순간도 있었지만
총평은 별로인 여행이었다.


기대가 커서였을지도 모르겠다. 구질구질한 이탈리아 거리를 떠나 만나게 될 북유럽의 세련되고 깨끗함에 대해. 행복 지수 1위의 나라는 어떨까?


덴마크 행복의 비밀,
제가 풀어 보겠습니다.


이런 포부로 비행기에서 내렸지만 우리가 만난 건 이탈리아만큼 길에 떨어져 있던 담배꽁초, 8월인데 치고 들어오던 추위, 속 옷까지 젖게 만든 폭우, 사람들의 무표정, 그리고  비싼 값을 치른 숙소의 배드 버그, 정점은 도난인지 분실인지 아직도 미스터리인 사라진 남편의 지갑 (feat. 그 안의 비자와 운전면허증 )


공항에 도착해 추위에 놀라 로마 소년, 8월에 강풍 실화냐?!
비를 예측할 수 없는 날씨
그래도 반짝였던 순간들, 놀이터는 정말 끝내줬다.

어쩌면 내가 한국에서 온 여행객이나 우리 부부만 여행을 했다면 다르게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아이들과 여행을 하다 보니 부대끼는 지점이 있었다. 배려가 없다고 느꼈다. 물론 이탈리아에 비해서 말이다. 아이가 버스에서 내리다 넘어졌다. 그러나 버스 안 그 누구도 눈길 하나 주지 않았다. 어쩌면 이탈리아에 살면서 오지랖에 너무나 익숙해졌는지도 모르겠다. 무표정 속에 친절이 숨어 있고 요구하지 않은  친절을 베풀지 않음이 그들의 예의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익숙함과 당연함의 범주에서 벗어나면 당사자는 불친절로 해석해버리고 만다.

음식은 최악이고 물가는 최고였다. 하루에 한 번은 맥도널드로 향했다. 이 도시엔 애들이 먹을 수 있는 음식도 합리적인 가격의 식당도 찾기 힘들었다.  말도 안 되는 이탈리아에 살면서도 매일 감사한 일을 찾아내는 아주 긍정적인 사람이라 믿었지만 덴마크에서만큼은 아니었다.


행복 지수 1위는 어디에서 온 것인가?
투표 조작인가?


여행 중 이탈리아에 살다 덴마크로 이주한 가족을 만났다. 점심 장소는 맥도널드였다.
이탈리아에서 초등학교 생활까지 마치고 덴마크로 온 딸이  가장 싫어하는 말이 외식이란다. 유일하게 밖에서 그녀가 먹겠다는 음식은 맥도널드뿐.


맥도날드 만만세

내가 물었다.

“여기 행복 지수 1위 맞지요? 이 물가에 이 날씨에... 음식까지... 사람들의 무표정. 전 행복의 실체에 대해 의심하기 시작했어요.”


“제가 보기엔 행복에 대한 기대치가 낮은 나라 같아요. 날씨를 생각하면 살 수 없어요. 날씨는 무시. 음식은... 맛있는 걸 먹어본 적이 없어서 음식에 대해서도 기준이 없는 것 같고, 낯선 사람과 소통하는 걸 좋아하지 않아요. 여행을 떠나도 무인도나 외딴곳으로 많이 가요. 제가 이탈리아에서 왔다니 한결같이 물어봤어요.  ‘너도 모르는 사람과 이야기해?’ 이탈리아로 휴가를 다녀온 덴마크 사람들이 이상했나 봐요. 모르는 사이인데, 심지어 영어도 못하면서 이탈리아 사람들이 자꾸 말을 붙여서. 복지와 질서가 가능한 이유가.... 뭐랄까. 나라가 규칙을 만들어주고 그 틀 안에서 무언가를 하는 것에 안정감을 느끼는 것 같아요. 전 잘 모르겠어요. 잘해 놓고 살면 뭐해요. 춥고 배고픈데.”


덴마크 여행 총평 :


여보, 난 여기에선 못살아. 한국에서 왔다면 아니면 혼자 여행을 왔다면 달리 느꼈을 것 같은데. 이탈리아에서 살다 보니 행복이 너무 다채로워졌어. 난 이제 낯선 사람과의 대화의 행복도 알아버렸고. 오지랖이 주는 행복도 필요해. 음식, 요리 말고 그냥 그 재료가 주는 풍미 있잖아. 한국 살 땐 야채 하나 과일 하나의 기쁨은 잘 몰랐거든. 맛있는 요리가 주는 즐거움음 알았지만. 이 계절엔 이 채소 과일 이 지역엔 이 치즈 이 생선, 뭔가 미식가들만 하던 것 같은 음식에 대한 유희가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이뤄지는데 난 이것도 삶에 너무나 중요한 부분이 되었어. 부대끼는 친절. 넘치는 수다. 습관적인 그럼에도 유머가 빠지지 않는 불평. 햇살. 바다. 더위. 여름을 기다리는 겨울. 난 이제 이 모든 것이 뒤섞인 행복을 알아버려서. 하나라도 부족한 일상은 텅 빈 것 같아.


네덜란드 친구 집에 방문한 적이 있다. 난 임신 중이었고 친구는 갓 돌이 지난 아이가 있었다. 둘이 함께 외출을 했을 때, 단 한반도 임산부와 유모차가 있다는 이유로 배려받아본 적이 없다. 그런데 배려가 필요하지도 않았다. 이미 사회적 장치가 다 마련되어  있어 도움이 없어도 전혀 불편함이 없었다. 이탈리아에서 아이를 키우면서 도움을 받고 도움을 요청함에 익숙하다 못해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나에게 참 생소한 경험이었다.


자고로 선진국이란 이런 건가?

장애인 노약자가 그 누구의 도움 없이도 일상생활이 가능하게끔 나라에서 장치를 해 두는 것.


그런데 덴마크에서 며칠을 머무는 동안 그 장치의 마련함에 근본적인 마인드가 무엇인가에 대해 의문이 들었다. (일주일도 안 되는 기간 동안 머물며 느낀 아주 편협한 의견임을 인정한다.)  인간에 대한 깊은 고찰과 존중에 의함이 아니라, 도움받기도 도움을 요청하기도 불편함의 마음이 만들어낸 효과라면?

그러나 그 시작이 무엇이었든 수많은 고민과 시간 끝에 만들어낸 장치임은 분명하다. 깊은 고찰이 아니라면 이렇게 섬세한 사회적 장치가 마련될 수 없을 테니 표정으로 드러나지 않을 뿐 표현의 차이 일지도 모르겠다.

사회적 장치는 부족하나 인간 대 인간으로의 배려가 있는 사회와 사회적 약자임에도 타인의 도움 없이 불편 없는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사회적 장치가 마련된 사회 중 무엇을 선진국 마인드라 해야 할까? 명확하게 답을 내릴 수는 없지만, 양극단의 두 나라에서 난 이탈리아의 인간미가 더 좋은 사람이었다.

위의 두 범주에 속하지 못한 사회적 장치도 배려도 애매한 곳을 안다.


한국이다.


난 종종 이런 말을 했다. 뭐 하나는 있어야 애를 키우지. 제도도 못 받쳐주고 사람들의 인식도 따라오지 못하니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가장 어려운 건 한국이야.라고.

그런데 코로나 19가 터지자 모든 생각들이 꼬이다 못해 갈길을 잃었다.


황홀한 예술 먹거리 사람과의 수다를 자랑하는 나라들은 봉쇄를 선택했고, 세련되고 체계적이며 현명해 보이기까지 한 나라들은 이미 사회적 거리두기를 삶에서 행하고 있었다며 자가면역을 내세우며 방치를 선택했다. 어떤 선택을 하든 바이러스를 해결할  능력 없음의 반증이다.


낯선 사람과 대화하고 아름다운 문화에 심취한 행복이 다 무슨 소용이야! 집에서 나가지를 못하는데. 복지 최고 어디 갔냐고! 최악의 상황이 오니 노약자는 안타깝게 됐고요 건강한 사람은 알아서 살아남으라는데. 지구 상 모든 나라들이 이 두 가지의 선택만을 두고 고민할 때 유일하게 대책을 세워 실행하고 성공한 나라가 있었다.


한국이다


한국의 행복지수가 낮았던 이유는 행복의 기준이 높아서였고, 북유럽의 행복지수가 높았던 이유는 행복을 느끼는 폭이 좁아서 이고, 이탈리아의 행복은 현실의 한계 앞에 욕심을 내려놓은 낙천 덕분이었을까?

내가 지금껏 믿어온 행복의 형태가 흔들리고 있었다.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는데. 이젠 어디서 사느냐가 더 중요한 것만 같다. 지금 당장 행복 지수를 조사한다면 이 지구 상에 (국가 만족도를 비롯해 ) 한국이 제일 높을 것 같다.


내가 살고 있는 나라에서 생명을 유지함에 안정을 느끼지 못한다면 누리던  모든 것은 생명력을 잃어버린다. 이탈리아에 남기로 하는 마음이 확고했으나 기약 없이 늘어나는 봉쇄의 시간 앞에 과연 옳은 선택이었나 물을 수밖에 없는 정신상태가 됨을 막을 수는 없다. 굳건히 잡고 있던 중심이 요 며칠 흔들리며 타지에서 산지 15년 만에 삶을 한국 밖에서 지속함에 불안이 엄습했다.

뭘 해서 먹고살아야 하나의 문제가 넘어 무엇에 가치를 두고 살아야 하나의 근원적인 질문에서 허우적 대고 있다. 그리고 이 고민은 내 삶의 고민이 아니라 아이들의 삶까지 포함된 고민으로 확장되면서 무게는 몇 배가 되어버렸다.


답이 없는 고민

고민의 블랙홀에 빠져 허우적 대고 있는 나는 숙제를 하는 아이 옆에 앉아 있다.

지 숙제인데 내가 애원을 하고 있어  화가 난 건지 답이 없는 고민에 아이에게 화풀이를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건 내가 생각해도 그 정도까지 화낼 건 아닌데 싶을 수준으로 화가 났다. 어쩌면 나 스스로도 감당이 안 되는 이 상황에서 우리가 한 선택에 감수하고 책임을 지며 아이들의 미래까지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 버거워서였을지도 모르겠다.

“네 숙제를 하는 건데 엄마가 애원하게 만들지 말라고 했지? 잘 들어. 아직은 네가 6살이니 엄마가 이렇게 숙제를 도와줄 수 있어. 하지만 7살 8살 네가 더 크면 엄마는 자신이 없어. 엄마가 너를 도와줄 수 없다면 네가 어떻게 해야 할까?”

“내가 스스로 열심히 해야 해.”

“네가 하고 싶지 않다면 안 해도 돼. 하지만 그것에 대해서는 네가 책임져야 할 거야. 기억해. 이건 엄마 숙제가 아니라 네 숙제야. “

그리고 방으로 들어가 애꿎은 남편에게 분풀이를 한다.

“왜 나만 숙제를 봐줘야 해?! 당신도 해!”

한 번도 아이 숙제를 본 적 없는 남편이 도와줄 수 있을 리가 없다. 이건 아이와 남편이 결국은 날 필요로 할 거라는 걸 알면서 벌인 개수작이다. 문을 닫고 방에 누워 그들이 언제 나를 부를지 기다리고 있었다.


아무도 날 부르지 않았다.

심지어 웃음소리도 들렸다.
한참 뒤 아이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엄마 미안해. 그런데 이거 봐줘. 아빠가 몰라서 내가 알려주고 이렇게 멋지게 색칠도 했어.”


언제나 알록달록한 아이의 숙제



남편은 아이 옆에 앉으며 물었단다.


“이게 뭐야?”


아이는 본능적으로 아빠가 의지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스스로 숙제를 마쳤다.
7살을 기다릴 필요도 없었다. 6살 아이는 이미 혼자서 해낼 수 있는 능력이 장착되어 있었다.

그것을 깨닫자 아이의 행복에 대해 내가 방향을 가리키고 있어야 한다는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어떨게 살 것인가? 어디서 살 것인가? 내가 고민해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는 거다. 어떻게든 어디서든 아이의 삶의 모습은 아이가 결정할 권리가 있다.


오빠가 그림을 그리고 동생이 색칠을 한다.


전세기 이야기가 나오고 이탈리아에 남겠다는 결정을 아빠에게 알렸을 때 아빠는 ‘ 잘 판단하고.’라는 짧은 답만 보냈다. 자식의 결정에 그 어떤 의견도 조언도 부여하지 않으셨다. 그리고 덧붙였다.


흔들린 가치 방향을 잃은 삶의 좌표를 굳이 바로 세울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이미 내일 당장 또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을 알아버렸다. 심지어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고 극한의 상황에 알게 되는 진실도 있음을 적나라하게 대면해 버렸다.

더 안전한 곳 더 행복한 곳을 향해 목을 빼고 내 자리와 비교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비교가 없는 아이들은 이 작은 집 안에서 조차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즐겁기 위해 무언가를 창조하며 뛰어다닌다.


우리는 하루를 기억하지 않는다.
순간을 기억한다.

-cesare pavese



지금 우리가 할 일은 좋은 기억을 많이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거 하나만 기억하려 한다. 어떠한 상황에 처한다 해도 좋은 기억으로 기록되도록. 이것이 오늘부터 우리가 붙잡고 가야 할 방향이다.

어제 믿었던 것을 오늘 믿지 못하게 된다 해도 지금 이 자리에서 좋은 기억을 만들려는 노력은 어떠한 순간에도 무너지지 않도록 우리를 지탱해주리라 믿는다.



< 믿음과 불신 사이 >
- 룽잉타이 [눈으로 하는 작별] 중에서

스무 살 전에 우리는 많은 것을 믿는다. 하지만 그 믿음은 하나씩 하나씩 불신으로 바뀌곤 한다.

나라를 사랑한다고 믿었지만, 곧 나라의 정의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당신에게 나라를 사랑해야 한다고 가르치는 사람들이 정의한 ‘나라’는 사랑스러운 존재도, 사랑할 가치가 있는 존재도 아니다. 오히려 맞서 싸워야 할 존재일 가능성이 더 크다.

역사를 믿었지만, 곧 우리가 배우는 역사의 절반가량은 조작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한 왕조의 역사는 다음 왕조 사람들이 쓰기 마련이고, 그들은 늘 앞선 왕조를 부정하며, 그들의 후예 또힌 그들을 부정한다. 이때 부정의 부정은 강한 긍정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왜곡이 쌓이고 쌓이면 원형은 비틀어질 대로 비틀어져버린다. 그렇게 역사의 본모습은 영원히 파묻혀 복원이 불가능해진다.

문명의 힘을 믿었지만, 곧 인간의 우매함과 야만성이 문명의 진보와 함께 사라지기는커녕 그 형태만을 바꾸는 것임을 알게 된다. 소박한 농민이나 신중한 지식인, 자신만만한 정치가에서 신선한 종교인까지. 모두 그 우매함과 야만성을 서로 다른 모습으로 감추고 있을 뿐이다.

정의를 믿었지만, 곧 두 가지 서로 다른 정의가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물과 불처럼 절대 양립 불가능해 보이는 이 정의는. 그러므로 둘 중 하나를 선택할 경우, 나머지 하나는 정의로서의 의미를 상실하게 된다.

이상주의자를 믿었지만, 곧 이상주의자 역시 종종 권력의 유혹에 굴복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권력을 쥐고 나서 그 자신이 목숨을 걸고 반대하던 ‘악’이 되어버리거나, 현실의 매서운 주먹에 엉망진창으로 두둘겨 맞고 링 밖으로 쫓겨나게 되는 것이다.

사랑을 믿었지만, 곧 그 사랑은 가족의 정으로 발전할 때만이 지속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러나 가족의 정으로 변한 사랑은 컵 속에 빠진 얼음 조각과 같다. 물속에서도 얼음이 여전히 영롱하고 투명해 보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무 살 전에 믿었던 것 가운데, 여전히 믿고 있는 것들이 있다.

나라는 사랑할 수 없어도, 그 땅과 사람은 사랑할 수 있다. 역사를 곧이곧대로 믿지는 않아도, 진실을 되찾으려는 노력은 계속할 수 있다. 문명의 힘이 아무리 미약하다 해도, 우리가 의지할 만한 것은 그래도 문명밖에 없다. 정의가 아무리 의심스럽다고 해도, 그러한 정의라도 가지는 편이 없는 곳보다는 안전하다. 이상주의자에게 너무 큰 기대를 걸어서는 안 되겠지만, 그들이 있는 사회와 그렇지 않은 사회는 하늘과 땅 차이다. 사랑이 속절없이 사라지는 것이라 해도, 반딧불이가 밤하늘에 빛을 뿌리며 날아다니는 이유를 생각하면, 서로 사랑했던 그 시절조차 부정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영원히 변치 않는 것은 세상에 없다고 해도, 모래 한 알에도 무한한 우주가 들어 있다면 찰나와 같은 순간에도 영원한 시간을 담을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스무 살이 되기 전에는 믿지 않았던 것 가운데 이제는 믿게 된 것도 있을까?

물론 있다. 하지만 대부분 너무나 평범해서 전혀 새로울 것이 없는 것들이다. 예전에는 ‘성격이 운명을 결정한다’는 말을 믿지 않았지만, 이제는 믿는다. 예전에는 ‘삶과 죽음은 하나다’라는 말을 믿지 않았지만, 이제는 믿는다. 예전에는 증명할 수 없는 것을 믿지 않았고, 여전히 믿을 준비가 되지 않았지만, 이제는 도저히 증명할 수 없는 어떤 것들의 느낌을 알게 되었다.


흔들리는 로마의 새벽 다른 유럽 땅에서 역시나 잠들지 못하는 친구가 메시지를 보냈다.


[우리에겐 지켜야 할 사람들이 있고, 사랑할 시간은 여전히 충분하다.라는 글을 봤어. 우리 더 힘 내보자. 우린 지켜야 할 사람들이 있잖아 ]


시차가 존재하는 각자의 새벽,

우린 지켜야 할 사람들과 사랑할 충분한 시간을 기억하자며 서로를 다독인다.


written by iand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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