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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마 김작가 Apr 21. 2020

정상적인 일상을 마주하기 망설이는 마음

이동제한이 해제된 후의 현실은?

시작은 작은 벌레였다. 휴교령이  내려진 3월의 어느 날, 해가 지고 화장실에 들어서자 변기 주변으로 두세 마리의 벌레가 붙어 있었다. 보이지 않았을 땐 상관없던 이 벌레가 한번 눈에 띄니 감당이 안되게 거슬리기 시작했다. 검색을 해보니 이 작고 거슬리는 벌레의 이름은 나방파리였다.  최악이다. 파리는 싫고 나방은 질색인데 이 작은 벌레가 거슬리기만 한 것이 아니라 더럽고 징그럽기까지 한 거다.


하수구에서 올라온다기에 끓인 물을 붓고 소금도 넣어보고 식초도 뿌려보고 약도 처 보았지만 줄어든다 싶다가도 어디선가 다시 나타나 뻔뻔하게 변기 옆에 붙어 있었다. 하필 집에만 종일 있어야만 하는 예민한 시기에 이런 벌레가 나타나다니!! 신경쇠약에 걸린 여자처럼 이유 없이 화장실을 들락날락하며 벌레를 감시하던 중 생각했다.


이 벌레만 없다면,
이 격리 생활 중에도 내 마음은 평화로 울텐데!

뭐,
그래도 바퀴벌레가 아닌 게 어디야?


이동제한령이 발표되고 두 번의 연장을 거듭하고 5월 4일까지의 최종 연장이 발표된   4월의 어느 날이었다. 새벽에 잠에서 깼다. 아이들을 재우다 잠들어 오전 늦게 일어나는 일이 일상화되었는데 맑은 정신으로 맞이하는 새벽은 오랜만이었다. 거실로 나가 넷플릭스를 켰다. 새벽에 어울리는 영화 고르기에 집중하던 그때 소파 옆으로 무언가 지나갔다. 반사적으로 바닥을 내리쳤다. 발랑 뒤집혀 죽어 있는 이 것이 내가 떠올리는 그것은 아니겠지? 잠든 남편을 깨웠다.

“이게 바퀴벌레야!!!????”
“그럴 리가 있어?”


그는 반문하며 한 손으론 바퀴벌레를 검색하고 있었다. 그의 휴대폰 화면엔 내가 죽인 생명과 똑같이 생긴 애가 떠 있었다. 그 순간 생각했다.


나방파리도 나름 견딜 만 한데..
바퀴벌레만 아니면 평화로울 수 있는데....


결국 잠들지 못했다. 침대를 박차고 일어났다. 주방 욕실 거실 창고 모조리 다 들어내고 박박 문질러 닦기 시작했다.


넘사 스러워서!!

나방파리라니!!

바퀴벌레라니!!


코로나 바이러스를 위해 구입한 고무장갑과 마스크로 중무장을 하고 청소를 하는데 욕지거리가 올라왔다. 60년대 지어진, 반 백 살 짜리 아파트에선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그러나 정말... 아..... 정말이지 자연의 섭리에 반하고 싶다.


어, 아는데 바퀴와 나방들과 굳이 살 필요는 없잖아?!


대열을 이탈했던 모든 가구들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 그런데 집이... 집이... 너무 보송보송 해진 거다. 뽀독뽀독 상쾌해진 집을 바라보며 이쯤이면 바퀴벌레를 발견한 것이 청소의 희열을 알게 해 주려는 큰 그림인가 싶었다. 중무장을 한 채로 집을 나섰다. 몇 주만의 귀한 외출의 사유가 바퀴벌레 약이라니.....


그런데 생각지 못한 웃음이 터졌다. 약이 든 봉지를 흔들며 집으로 돌아오는 나의 발걸음엔 박멸할 벌레들 생각으로 흥분이 가득했던 거다. 강제 격리의 시간 중 가장 두근거리던 순간이었다.


나 지금 떨고있니? 이 외중에 바퀴벌레를 박멸할 생각으로 흥분한거니?!


구석구석 약을 뿌리고 먹으면 전멸을 넘어 멸종한다는 정성을 다해 빵과 붕산으로 제조한 바퀴벌레 밥(이라 적고, 살상용이라고 읽는다.)을 그들이 사랑할만한 장소들에(아주 신중히 고심하여 선별했다. 내가 지금 바퀴벌레의 입장에서 생각할 여유가 없는데.... 이럴 일인가...)  놓아두었다. 내친김에 하수구에도 마구마구 약을 뿌리고 방전된 몸이 침대에 널브러졌을 땐 이미 오후가 훌쩍 넘어있었다.


내가 붕산으로 제조한 빵을 맛보는 순간  너네들 다 뒈졌어!!!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우리 집에 사는 벌레들에 대해 남에게 말하긴 부끄럽지만 또 아무에게도 안 하기엔  견디기 힘든 거다.

“야야!! 나 뭔 일이 있었는지 알아? 새벽에 바퀴벌레가 나왔잖아. 사람이 웃긴 게 그러니까 에휴, 나방만 나올 때가 좋았는데 하고 있는 거야.

“바퀴벌레? 그거 우리 집에도 종종 나와. 우리 집이 시골집에 심지어 주택이잖아. 시골집에서 그건 그냥 수많은 벌레 중 하나일 뿐이야. 보기에 혐오스러워 그렇지 배드 버그처럼 물리면 문제가 생기고 그런 것도 아니야. 여름휴가 때 집 오래 비우고 그러면 한 번씩 나오더라고. 약 놓아두면 바로 사라져. 내가 약 알려줄게.”


“너네 집은 시골이라 그렇지 여기는 도시라고!”


“에헤이! 바퀴벌레야 말로 도시의 상징 아니니? 뭔가 아파트에 더 많을 것 같지 않아? “


“그래도 우리 집에만 나오는 게 아니라고 하니 기분이 좋아졌어. 새벽부터 지금까지 괴로워하던 마음이 바로 사라지네.”


“하하 나방파리, 바퀴벌레 그다음엔 쥔데.... 뭐, 그건 내가 나중에 자세히 이야기해 줄게.

 (친구네 차고에선 쥐도 몇 번 보였다고 한다)


전화를 끊고 그토록 바라던 마음의 평화가 왔다.


너무 행복하다!  

적어도 쥐는 나타나지 않았다!!

감사하다!!

벌레들에 대응할 약이 이 지구 상에 존재한다!

해법이 존재하는 문제는 더 이상 위협적이지 않다.

바퀴벌레 약을 뿌리니 놀랍게도 나방파리도 함께 사라졌다. 작은 벌레의 등장이 괴로웠는데 더 큰 벌레가 등장하니 작은 벌레는 잊혔다. 심지어 쥐 이야기를 친구에게서 듣는 순간 큰 벌레는 해결 가능한 문제로 분류되었다.

아이러니다.

어제의 괴로움이 오늘의 역경으로 잊히고

내일의 공포가 오늘을 견디게 하다니 말이다.


작은 벌레의 등장과 함께 이탈리아의 휴교가 시작되고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당황할 새도 없이 이동제한령이 내려졌다. 이쯤 되니 휴교는 고민거리도 아니었다. 강제적 외출제한이 일상을 정지시켜버렸다. 한 달이 지나 바퀴벌레 등장 며칠 후 , 5월  초에는 외출제한을 완화하고 대부분의 상점들이 영업을 재개할 거라는 이야기가 들렸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소식이었지만 정상적인 일상을 마주함에 앞서 망설이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언젠가 뒤 돌아보면 집에만 머물러야 했던 지금을 즐겁게 추억할 수 있을 거야. ‘라고 말하곤 했다.


그러나 정말 두려운 것은 지금이 정말 가장 행복한 순간일 수도 모른다는 것이다.

멈춰 있는 지금이 말이다.

일상만 멈춘 것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우리가 당면해야 할 문제들도 정지해 있기 때문이다.

격리가 해제되고 거리로 나서는 순간 막연히 그려보기만 했지 와 닿지 않던 현실을 마주해야만 한다. 이탈리아의 무너진 경제,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에 예민해진 사람들, 회복이 불가능해 보이는 여행업계, 앞으로 우리가 버텨내야만 하는 불안한 미래까지.

얼음이 녹고, 굳어 있던 몸을 어렵게 움직이고 고개를 들어 세상을 돌아보니 계절은 겨울에서 여름으로 변했고 봄은 만나지도 못했는데 사라졌다. 냉동인간이 잠에서 깨어나 너무나 달라진 세상에 어리둥절하듯 우왕좌왕한다. 작은 벌레가 우리가 감당해야 하는 역경의 크기인 줄 알았는데 더 큰 벌레가 나타났다. 그런데 누군가 보이지 않는 생쥐도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머리를 어지럽히는 상상에 허우적거리며 오지도 않은 5월 앞에서 잔뜩 움츠려 들었다.

그때 목소리가 들려왔다.

남편은 최근 요가 시작했다. 유튜브 요가로 매일 아침저녁 두 번씩 수련한다.

영상 속 요가 강사가 나른한 목소리로 말했다.



“무리하지 않습니다.”
“힘들면 그만합니다.”
“가능한 만큼의 움직임만 가져갑니다.”


언제가 남편이 말했다.


“모든 문제에 좋게만 생각하고 막연히 미래를 낙관하는 것을 긍정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지금 우리가 할 수 없는 것 바꿀 수 없는 것이 아니라 할 수 있는 일 바꿀 수 있는 것에 집중하고 그 안에서 행복을 찾을 줄 아는 것이 긍정 아닐까? “


잊고 있던 기도문을 떠올렸다.


주님,

제가 오늘 할 수 있는 일은 최선을 다하게 해주시고

할 수 없는 일은 체념할 줄 아는 용기를 주시고

이 둘을 구분하는 지혜를 주소서.

San Francesco


일상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는 그 날,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체념할 수 있는 용기를 달라고 마음을 다해 기도했다.

경제대공황, 바이러스의 재유행, 불확실한 미래 속에서도 내가 오늘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게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남편의 요가가 끝났다.

온몸의 기운을 빼고 바닥에 힘을 빼고 누워있다.

영상 속의 강사가 말한다.


“잠들지 않습니다.”



어떠한 순간에도 눈을 감지는 않겠다고, 잠들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있어서 절대 외면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기도를 이어갔다.

한 달을 훌쩍 넘긴 강제적인 격리 생활도 우려보다 달콤했다. 거슬렸던 벌레들도 해결 가능했다.


어쩌면 5월도 불안보다 아름답게 그려질지 모른다. 떠올려보라. 고민하던 일들이 막상 닥치면 언제나 상상의 크기보다 작았다.


그리고 결국은 감당해냈다.  


호흡을 가다듬는다. 꼬리에 꼬리를 물던 불안으로 향하던 마음의 흐름은 어느새 방향을 틀어 빛을 향해 흘러가고 있었다.


written by iand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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